구약성경은 부활 소망을 가르치는가?
by Mitch Chase2018-11-28

사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 요한계시록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무찌르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라는 복된 소망을 선포한다는 점이다(고전 15:26). 어쩌면 부활 소망이 온전히 신약성경에만 속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망’의 줄기를 잡아당겨 보면, 그 뿌리가 구약 속에 깊이 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기 백성에게 부활 소망을 허락하셨다.


모든 사람이 구약성경에도 부활 소망이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모세오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인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반박하셨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를 읽지 않았느냐”(마 22:29, 31). 우리는 예수님과 동일한 방식으로 구약성경을 읽어야 한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하나님을 바라보셨다.


육신의 부활


미래에 일어날 육신의 부활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다루는 본문은 다니엘 12장 2절이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과 바울은 이 본문의 가르침에 동의한다(요 5:29; 행 24:15).


부활 소망에 대해 말한 선지자는 다니엘 뿐만이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육체적 부활에 대하여 예언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기뻐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사 26:19).


이사야 선지자는 ‘죽은 사람들은 티끌에 누워 잠자는 사람들이요, 부활은 그들을 깨울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땅이 생명을 낳는다는 표현으로 부활을 묘사한다. 무덤은 자궁이요, 죽은 자는 언젠가 새롭게 된 육신의 생명을 입고 나타날 것임을 드러낸다.


미래에 있을 육신의 부활은 말로 선언할 ‘진리’일 뿐 아니라 노래할 ‘소망’이기도 하다. 시편의 저자는 지혜 있는 자와 무지한 자가 모두 죽을 것이지만(시 49:10),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시 49:10)라고 노래한다.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는 일은 곧 전인을 죽음에서 데려오는 일이다(시 16:10; 행 2:24-29). 나아가 저자에게 시편 71편의 부활은 위로이다. 저자는 과거에 겪은 고난과 미래에 있을 구원을 생각하며 선언한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시 71:20). 하나님은 우리를 땅에서 일으키심으로써 다시 살리실 것이다.


이러한 진술들에 담긴 부활 소망은 마치 정원 토양에 심긴 씨앗에서 자라는 꽃과 같다. 실제로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고려해 보면, 부활 소망은 낯선 개념이 아니다. 창세기 2장에는 육체가 없던 아담과 하와가 주님에게 몸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처음부터 성경은 하나님이 흙으로 남자를 만드시고, 남자로 여자를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2:7, 21-22). 그렇게 지어진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반역한 아담이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하지” 못하도록 하와와 함께 동산에서 내쫓으셨다(창 3:22).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 나무는 아담이 갖지 못한 영생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담이 동산에서 쫓겨남으로 인해 이 나무에 다가갈 수 없게 되었고, 결국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를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 나무로 인도하기 위해 마지막 아담이 오셨다. 그분은 나무에 달려 죽으시고(갈 3:13), 3일만에 생명 나무의 열매를 드셨다. 그리고 그분이 다시 돌아오실 그 때, 죽은 자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우리 역시 그 열매를 먹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다른 종류의 부활들


간혹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물리적 상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경은 타락한 세상에 거하는 우리 삶의 면면을 통해 죽음을 묘사한다. 이 면면은 재난, 기근, 질병, 상실, 불임, 유배 등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종류의 죽음들에 대해서도 부활을 허락하신다. 먼저 ‘유배’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아난 마른 뼈의 환상을 보았다(겔 37:7-10).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의 땅으로 돌아오는 사건을 상징했다(겔 37:12). 이스라엘의 바벨론 유배는 일종의 죽음을 의미했고, 그들의 귀환은 부활을 상징한다.


‘불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모두 각각 불임인 아내를 두었다. 자녀가 없던 라헬은 야곱에게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창 30:1)라고 호소했다. 이는 불임이 혈통(가문)의 죽음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임의 반대는 무엇인가? 죽음이 생명의 역사로 뒤바뀌는 일이다(롬 4:19). 따라서 하나님께서 족장들의 아내들이 겪은 불임을 해결하실 때마다 죽은 자궁과 혈통에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또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죽기 전에 구원하심으로써 생명부터 죽음까지 다스리는 그분의 능력을 보이셨다. 예를 들어,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은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희생제물로 바치기 위해 묶고, 이제 곧 칼날이 그의 몸을 관통하기 직전이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순간 이삭을 대신할 정결한 제물을 주심으로써 그의 죽음을 막으셨다(창 22:4-13). 실제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삭이 죽음에서 살아났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했다(히 11:19).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이 틀을 바탕으로 구약성경 전체에 걸쳐 부활 신앙을 그려낸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홍수에서, 요셉은 구덩이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에서,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유대인들은 하만의 계략에서, 요나는 거대한 물고기에서 구원을 받았다. 이처럼 재난으로부터 구원받는 구약성경의 이야기들은 죽음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보여 준다.


부활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한다


구약성경에 부활에 대한 전제와 이해가 없었다고 생각해 보자.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이 약속을 성취하지 않으셨다고 오해하며 눈을 감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족장과 그의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지만(창 12:7; 13:15),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히 11:13).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약속의 말씀을 지키실 것인가? 바로 부활을 통하여 그들을 죽음에서 살리심으로써 지키실 수 있다. 부활하게 될 아브라함은 이 세상의 상속자로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뿐 아니라 그 이상을 받을 것이다(롬 4:13). 그러므로 죽음은 하나님을 약속 불이행자로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란 사실을 부활이 증명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모든 크리스천은 부활 소망의 불변성을 신뢰하고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내세에 대한 약속들은 절대 흔들리거나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셨지만 아직 성취되지 않은 소망이 남아 있다. 우리의 내면은 날마다 새롭게 변화하는 반면, 우리의 외면은 날마다 늙고 낡아진다(고후 4:16). 그러나 부활을 맞이하는 그날, 썩을 육신은 마침내 썩지 않을 몸을 입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다(고후 4:16). 우리는 예수님이 죽음의 무덤을 탈출하셨으므로, 미래의 우리 역시 죽음이 아닌 영생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Does the Old Testament Teach Resurrection Hope?

번역: 하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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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itch Chase

미치 체이스는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Kosmosdale Baptist Church의 부목사이며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위치한 Boyce College의 겸임교수이다. 대표 저서로 'Behold Our Sovereign God'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