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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이전의 복음중심적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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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Gavin Ortlund  /  작성일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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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Laura Fuhrman on Unsplash

최근 복음주의자들이 로마 가톨릭이나 동방 정교회로 개종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젊은 세대나 훈련을 받지 않은 자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중에는 신학을 공부한 목사와 교수, 그리고 복음주의신학회(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회장까지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 현상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다. 개인의 경우는 각기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종종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로마 가톨릭이나 동방 정교회가 제공하는 깊이 때문이다. 침례교인이었던 어떤 사람은 ‘나는 왜 가톨릭 신자인가’(Why I’m Catholic)라는 웹사이트에서 자신이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일을 교회사의 관점에서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설명했다. 한때 장로교인이었던 어떤 이는 ‘교제로의 소명’(Called to Communion)에서 자신이 로마 가톨릭 신자가 된 일을 ‘정통 기독교’로 입문하는 과정으로 표현했다. 또 영국 성공회의 신자였던 한 사람은 ‘정교회로의 여정’(Journey to Orthodoxy)에서 동방 정교회의 예배 형식을 통해 사도들의 전통을 계승하는 일이 얼마나 복된지를 묘사했다.


개신교 진영 내부에서도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교파(가령 중도파에 해당하는 영국 성공회)로 이동하거나 예배와 영성에 있어 더욱 전통적인 형식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나보다 젊은 개신교 친구들도 대부분이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The Imitation of Christ)를 신앙 서적으로 애독하지만, 존 엘드리지(John Eldredge)의 책은 보려 하지 않는다. 찬송가 작사가 늘어나는가 하면, 많은 복음주의자들도 전통적인 형식을 강조하는 예배 달력(the liturgical calendar)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무엇보다도 포스트모던 세대들의 정처 없는 삶과 불안감이 주된 요소라고 생각한다. 현세대의 한 가운데에는 깊은 허무감, 고립감, 단절에 따른 불안감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고전적이고 장엄한 것에 대해, 초월적이고 전통적인 것에 대해, 그리고 안정적이고 견고한 것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을 품는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복음주의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올해 스물 아홉 살인 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겪는 방향 상실, 다시 말해, 인생을 해석하기 어려워하는 이 시대의 방황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기 위해 복음주의를 포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역사적 뿌리에 대한 목마름은 개신교와 복음주의에서도 충분히 만족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가톨릭(Catholic) 신자가 되지 않고도 공교회적(catholic) 신자가 될 수 있고, 또한 정교회(Orthodox) 신자가 되지 않고도 정통적인(orthodox) 신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한 복음중심적 사역’(gospel-centered ministry for the next generation)을 추진할 때, ‘복음적인’ 신앙과 ‘역사적인’ 신앙, 혹은 ‘복음중심적’ 사역과 ‘역사중심적’ 사역을 함께 추구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복음중심성(gospel-centeredness)은 그 자체가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주의자들과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사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이 사도 요한과 마틴 루터 사이의 교회 역사를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는가? 그 가운데 많은 이들은 마치 교회사의 중요한 내용들이 1세기에서 갑자기 16세기로 건너뛰며 전개된 것처럼, 그 중간의 역사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우리는 어거스틴(특히 그의 ‘고백록’)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리고 일찍이 기독론과 삼위일체론을 둘러싼 주요한 논쟁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일부 용감한 순교자들이 그 논쟁들 배후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끔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의 설교나 클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의 시를 감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우리의 전통이 지난 2 천 년에 걸친 견고한 역사라기보다, (몇몇 선구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의) 약 5백 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에 친숙하지 않은 시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9세기에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언어가 아니라 실재하는) 복음중심성이 그 당시에도 존재했을까? 오늘날 우리가 지지하는 목회 방식은 교회사 전체와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까?


오늘날 개신교인들이 이런 질문들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경향은 초기 종교개혁자들이나 개신교 진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사실 종교개혁자들은 자신들이 교회의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지 재창조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참된 복음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일이 결코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루터나 투레틴처럼) 심지어 로마 가톨릭 신학에 대해 가장 공격적이었던 비판가들조차 하나님은 거대한 부패와 타락의 시대에도 항상 자신의 백성들을 지키셨음을 주장했다.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이 반종교개혁(the Counter-Reformation) 신조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어거스틴과 교부들에게 호소했을 때, 칼빈은 “누가 어거스틴과 교부들에 대해 신경이나 쓰는가?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종교개혁 신학과 교부 신학 사이의 연속성을 수립하기 위해 교부들을 열심히 연구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모토는 성경이 최고의 권위임을 의미하지, 다른 것들이 무가치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족 앨범


나는 개신교인으로서 종교개혁 신학이 복음을 수호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시에 건실한 개신교인으로서 중세 기독교의 좋은 가르침을 배우는 일 역시 가능하다고 믿는다. 교회는 성곽들과 성당, 수도사와 수도원, 활과 창,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시대 동안 완전히 침체되어 있다가, 루터의 95개조 논제와 함께 갑자기 재부상한 것이 아니다. 까에드몽(Caedmon)과 샤를마뉴(Charlemagne) 및 초서(Chaucer)의 바로 곁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견고하고 안정된 기독교의 줄기가 존재한다. 수많은 전진과 후퇴, 부패와 개혁의 역사 속에서도 예수님은 항상 교회를 세워 오셨기 때문에(마 16:18; 사 42:4), 우리는 중세 신학으로부터도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의 가르침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기독교 후기 시대, 곧 방향을 잃고 헤매는 문화적 상황 속에서 좋은 목회 자료로 쓰일 수 있다.


물론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프로테스탄트의 고유한 특성을 잃어버리는 위험한 일도 발생할 수 있다. 또 한편, 특정 교단의 가르침에만 고립되면 전체적인 기독교 전통과의 연결점을 상실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오늘날 개신교인들에게는 균형 있는 역사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불연속적인 부분을 인식하고 겹치는 부분들은 장려하면서, 최근의 5백 년과 그 이전의 1천 5백 년 양자에 모두 연결되어야 한다. 교부 시대의 어느 아프리카 신자가 한 말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나는 기독교인이며 기독교에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이질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말이 종교개혁 이전 교회사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를 정확히 집어 준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가 받은 유산과 정체성의 일부이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는 가족 사진들이 정리된 앨범이다. 가족 앨범에는 다양한 사진들이 존재한다.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친척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삼촌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혹 결점과 흠, 또는 다른 문제들이 있더라도 나의 가족은 여전히 나의 가족이다. 나 자신을 그로부터 끊어내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그들 없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종교개혁 이전의 역사에 대해 인식하려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마크 놀(Mark Noll)의 ‘전환점: 기독교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들’(Turning Points: Decisive Moments in the History of Christianity)이라는 책의 첫 여섯 장이 2차 자료로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세 개의 1차 자료들을 여기서 언급하고자 한다. 이 작품들은 모두 오늘날 개신교인들에게 널리 읽힐 만한 가치가 있는 고전적인 신학 자료들이다.


1. 보에티우스(Boethius)의 ‘철학의 위안’(The Consolation of Philosophy)


이 책은 교회사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거의 잊혀졌다. 이에 대해 C. S.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생각에 약 2백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발견하기란 어려웠다. 이 책에 맛을 들이는 것은 중세 시대에 동화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보에티우스가 524년 처형을 기다리는 동안 운문과 산문의 교차 형식으로 작성했는데, 여기서 그는 고통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주제들을 탐구하고 있다. 5권에서는 하나님의 예지와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의 고전적 난제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 논의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2. 그레고리 대제(Gregory the Great)의 ‘목회지침서’(The Book of Pastoral Book)


칼빈은 이 책의 저자인 그레고리 대제(약 540-604년)를 본받을 만한 마지막 교황이라고 불렀다. 이 책은 목회신학의 고전으로서 모든 목회자들이 일독할 필요가 있다. 그레고리 대제의 주장에 따르면, 목회는 내면적 특성과 외면적 특성, 즉 이론과 실천, 명상과 활동, 금욕과 행정, 초월적 거룩함과 세속적 지혜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요구한다. 이런 면에서 그의 글은 한 영역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강한 목회자들에게 유익한 일깨움을 준다. 이 책의 좋은 번역본은 초기 기독교 사상을 접하는 데 훌륭한 자료 역할을 하는 블라디미르신학교의 교부학 시리즈(Popular Patristics Series)에서 찾아볼 수 있다.


3. 안셈(Anselm)의 ‘프로슬로기온’(Proslogion)


안셈은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기 위해 ‘존재론적 증명’을 제안한 인물로 유명하다. 이 책에 담긴 풍부한 신학과 열정적인 기도는 본 작품을 매우 유익한 읽을거리로 만든다. 나의 박사 학위 연구는 24-25장에서 안셈이 말한 천국 교리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나의 기쁨과 놀라움이 바로 이 글을 쓰게 된 주요 동기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끝으로, 종교개혁 이전의 신학 작품들을 평가절하하는 이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잘 번역된 프로슬로기온을 찾아서 “들고 읽어라!”(tolle lege).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Searching for Gospel-Centered Theology Before the Reformation

번역: 주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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