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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와 확신의 관계를 혼동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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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Andrew Wilson  /  작성일 201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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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Raquel Martínez on Unsplash

바울의 가르침은 수수께끼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최종적인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성령의 은혜로 인해 우리가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보호될 것이라는 '확신'도 드러낸다. 이 상반된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하라는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확실한 약속을 좋아한다.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고는 싫어한다. 두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경고를 좋아한다. 죄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확실한 약속은 싫어한다.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확실한 약속과 경고, 둘 중 한 가지에 치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존 칼빈과 같이 두 가지 모두에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바울이 이 주제에 대해 혼란을 주게끔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말을 정중히 무시해도 좋다고 주장한다.


경고와 확신의 조화


경고는 실제적이다. 만약 성도들이 죄에 빠져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확신도 실제적이다.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은 성도들을 끝까지 지키실 것이다. 경고는 확신을 보증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수단이다. 바울의 확신에 따르면, 참된 성도는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죄를 회개하여, 결국에는 구원에 이를 것이다. 즉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경고에 반응하도록 일하실 것이다.


경고를 통하여 확실한 구원에 이르는 은혜가 그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는 것이다.


이 요점이 내 박사학위 연구의 결론이다. 그 중 결론 부분은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경고와 확신의 관계’(The Warning-Assurance Relationship in 1 Corinthians)라는 제목으로 최근에 출판되었다. 이 연구는 상세한 주석들과 더불어 칼빈주의자들과 웨슬리-알미니안주의자들을 함께 다루며 얻어낸 결과이다. 여기서 나는 목사이자 설교자로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그 관계를 이해하는 일이 목회 사역에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경고와 확신에 대한 관점은 최소한 네 가지 차원에서 목회와 설교에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1.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확신을 가지도록 돕는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어떤 실수를 저지르든지 간에, 그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실 것이다. 간혹 목회는 실망스럽거나 심지어 환멸감을 느끼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때때로 우리(목회자)는 스스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상기하며, 우리가 목양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을까 염려한다. 하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고린도 교인들처럼 성만찬 자리에서 술 취하고, 우상 숭배와 성매매를 일삼고, 서로 고소하며, 더 나아가 부활을 부인할 뿐 아니라, 근친상간까지 인정하고 자랑함으로써 환멸감과 좌절감을 주는 사람들을 섬겨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중략)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8-9). 이 말씀은 우리에게 엄청난 위안을 준다.


2. 성경의 경고를 비중 있게 설교하도록 돕는다


많은 개혁 교회 목사들은 책망하거나 경고하는 말씀을 선포할 때 청중들의 반응을 우려한다. 그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마치 설교자를 은혜나 구원의 확실성을 불신하는 사람으로 생각할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로마서 8장보다 히브리서 6장을 설교할 때, 그리고 히브리서 6장보다 베드로후서 2장을 설교할 때 그런 염려에 더 빠지게 된다.


그러나 바울의 경고가 크리스천의 인내를 보증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우리는 성경의 진리가 완전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경고를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택이 있으므로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말도 안 되듯이, 하나님이 보호하시므로 성경의 경고는 필요 없다는 생각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교훈에 대해 존 파이퍼가 ‘형제들이여, 우리는 전문직업인이 아닙니다’(Brothers, We Are Not Professionals)에서 다음과 같이 옮긴 표현을 좋아한다. “형제들이여, 성도들을 구원하십시오.”


3. 교회 안에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올바로 대하도록 돕는다


나는 교회에서 한 여성과 대화한 내용을 잊지 못한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질렀는지와 상관없이, 또 회개를 했는지 안 했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은 완벽히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생각에 빠진 채 안주하는 삶을 살고 있었고, 심지어 공격적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녀에게 히브리서 10장 26-31절 말씀을 가지고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지 못할 거라고 확실히 말해 주었다. 이처럼 성경적인 경고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회개를 하든지, 아니면 회개를 하지 않든지, 반드시 진지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경고와 확신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면, 우리는 후자를 약화시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전자를 강조할 수 있게 된다.


4.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내하는 능력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돕는다


바울이 달음질하며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고백했듯이(고전 9:24-27), 우리는 삶 가운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의 기업을 보장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닌 성령의 사역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과 인간의 노력은 모든 크리스천의 삶 가운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우리는 내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사역을 이끌어 갈 수 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설령 시험을 거부하기 위해 씨름하고 있을 때나 혹은 그런 상황에 처한 다른 누군가를 상담할 때, 우리에게 큰 격려를 준다.


이런 차원에서 고린도전서와 바울, 그리고 성경에서 엿볼 수 있는 경고와 확신의 관계를 이해하면, 우리는 목회와 설교 사역에 도움이 되는 실제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이 강조하는 메시지 간의 균형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신학적인 유익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의 결과로, 하나님에 대한 순종은 목회자에게 주어진 명령이지만 그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은 전적인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 4:7).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The Relationship between Warnings and Assurance-Don't Fumble It
번역: 김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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