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우상이 될 때
by Daniel Darling2018-12-13

일이란 창조주께서 당신의 형상을 지닌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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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휴일에 집에서 쉬거나 누군가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시간에 나는 새벽부터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두툼한 옷을 여러 겹 입고서 곧 아버지와 집을 나섰다. 건설업에 종사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아직 십대임에도 배관 수리 기술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 


휴일이나 방학 때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고객 집을 방문해 구리 수도관, 플라스틱 배수관, 강철 가스관 같은 걸 설치했다. 나는 건설 분야의 다른 기술에는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않았지만, 배관 작업만큼은 꽤 야무지게 해냈다. 그 일을 하면서 용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내게는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가치 있는 것은 성실과 하나님의 부르심, 이 둘의 관계를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배관 수리를 그만두어야 하는 날이 올 때까지도 나는 이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이후 직장을 갖고 나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신학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성실한 모습은 나의 삶에 강력한 교훈이 되었다. 아버지는 말수가 별로 없으셨다. 하지만 하시는 일에서 보인 뛰어난 역량과 성실한 성품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리스도인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일을 능숙하게 익히려면 내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긴 기간 동안 이 일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내 ‘조금 더’에 대한 내 나름의 계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울 만큼 일을 철저하게 하셨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의 완성도에 이르려면 며칠 더 배우는 것으로는 아무 성과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쟁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아버지께 직접 배웠지만 나는 결국 따져 물었다. “벽 안에 있는 파이프는 아무도 볼 수 없는데 왜 그렇게 줄을 맞춰 곧게 세우세요? 그렇게까지 균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그때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얘야, 남들은 못 보더라도 내가 지금 보고 있잖니.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선물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은 인간의 존재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은 곧 일은 선하다는 점이다. 이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가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일곱째 날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마치시니”(창 2:2).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그러므로 일이란 창조주께서 당신의 형상을 지닌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선물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창 2:5).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는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이 없이는,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일하고, 땅을 갈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돌보는 사람 없이는 미완성이다. [창세기의 이러한 기록은] 마치 모세가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사람이 가꾸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또 돌아갈 수도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는 이 땅을 숭배하라고 지음 받은 것도 착취하라고 지음 받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우리는 가장 좋은 의미에서의 ‘환경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땅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이 이 땅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가꾸라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은 단지 인간 삶의 부산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일은 우리를 인간되게 하는 필수 요소다. 우리는 이 땅을 다스리도록, 곧 혁신하고 탐구하도록 지음 받았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열심히 일함으로써 그리고 이 세상을 돌봄으로써 하나님을 닮는다. 


저주받은 노동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다른 모든 선물들처럼 우리의 노동은 그 죄(the fall)로 말미암아 부패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다음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자.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창 3:17-19)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 가꾸어야 할 곳으로 완벽한 조화 가운데 창조된 이 세상이 이제 썩어짐의 종이 되어 신음하고(롬 8:22), 저주의 고통을 겪고 있다. 땅이 반격한다. 일이 힘들고 지치게 하는 고역이요, 때로는 결실조차 없는 노역의 반복이다. 일하고, 먹고, 자고, 일하고, 먹고, 자고…. 그리고 죽는다.  


우리는 일에서 만족감을 얻고 싶어 한다. 이는 온당한 바람이다. 우리는 일에서 언제나 좌절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틀린 생각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그러나 타락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일을 하면서 만족도 좌절도 모두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복음은 우리의 노동에 새로운 목적을 부여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예술가, 장인, 뛰어난 행정가, 법률가, 완벽한 주부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복음이 우리로 하여금 노동의 창조적 가치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곧 우리의 노동이 인간 존엄성을 좀먹는 엉겅퀴와 가시에서 마침내 우리의 노동이 해방되는 나라를 바라보게 한다는 의미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원래 목적, 하나님을 닮아가는 목적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신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우리가 일하는 것은 구원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해야 할 선한 일이 있다.  


일이 우상이 될 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일을 가장 중요한 것, 곧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이 아니라 숭배와 경배의 대상으로 바꾸어 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경력이 정체성과 가치를 드러내는 이름표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대화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떠올려 보라. 교회에서 새 신자를 맞이할 때, 기차에서 옆자리 승객과 인사할 때, 혹은 새로운 이웃 가정을 만날 때, 아마 별생각 없이 이렇게 물을 것이다. “무슨 일 하세요?” 그리고 상대방의 대답에 따라 우리는 그 사람을 이러저러하게 판단하게 된다. 


나는 많은 시간을 내슈빌이나 워싱턴DC에서 보낸다. 이 두 도시에서는 직업에 대한 질문이 특히나 중요하다.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복을 받은 내슈빌에서는 종종 사람들의 창조적인 활동이 그들을 규정하는 기준이 된다. “작곡가입니다.” “아무개와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제품/기업/비영리단체에서 마케팅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워싱턴DC에서는 직업을 묻는 것은 곧 파워 게임(power game)이다. 명함을 교환하고 영향력 순으로 접촉 순서가 정해진다. “의회 세입세출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이 싱크탱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 하면 어떤 질문이 떠오르는지 생각해 보라.


• 내 직업은 중요한 직업인가?  

• 내 직업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인가?

•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사람들은 내 직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물론 이런 질문을 입 밖에 내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런 생각들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


일이 우상이 되어버렸을 때는 한걸음 물러서서 그 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강요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하던 일을 집으로 가져가고 있지는 않은가?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는 않은가? 이메일에 눈을 떼지 못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긴급 프로젝트에 매달려서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일이 우리 귀에 속삭인다. ‘너는 신과 같다. 쉴 필요 없다.’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 직업(vocations)에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쏟아 부은 것이 불필요한 희생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고서야 그동안 얼굴 없는 신을 숭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기도 한다.    


일은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이나 하나님 대용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지 우리의 급여나 직위, 직장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지 않았다. 이 좋은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이것들이 우리를 공허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이러하기에 매순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리가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의 효용성이나 우리의 영향력이나 우리의 급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형상을 지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터 잡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단지 직장인이 아니라 그와 함께 영원한 공동상속인이다.  


원제: Your Work Matters-But Don’t Deify It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김형용

일이 우상이 되어버렸을 때는 한걸음 물러서서 그 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강요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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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aniel Darling

다니엘 달링은 Southern Baptist Convention의 부회장으로 Real: Owning Your Christian Faith 와 iFaith: Connecting to God in the 21st Century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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