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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망가진 이 세상에서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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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Paul Tripp  /  작성일 20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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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ason Briscoe on Unsplash

내가 조앤(Joan)을 만나기 수년 전에, 그녀는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성공해서 부유한 크리스천 사업가인 헨리(Henry)를 만나 결혼했다. 그들은 교외에 여유롭게 맨션을 짓고, 훌륭한 크리스천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몇몇 흥미진진한 사역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수년이 훌쩍 지나, 조앤은 건강한 자녀를 셋이나 낳았다. 전반적으로 조앤에게 부족한 것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조앤은 헨리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일단 그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아니며 거리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더욱이 그는 항상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기질이 있어 보였다. 조앤은 헨리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일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급속하게 확장되는 그의 사업 때문에 그가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조앤이 옳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둘의 부부 관계가 불편하고 느슨해졌다. 그들은 단지 스케줄이나 재정적인 문제가 생길 때에만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의 부재감이 점점 더해 갔다. 조앤은 둘 사이의 소원한 관계에 대해 말하려고 했지만, 그는 항상 대화를 회피했다.

 

절박감을 느낀 조앤은 결혼 생활을 위해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헨리에게 다시 접근하기 전에 제대로 된 조언을 받기를 원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나를 만났다.

 

조앤은 상처 입고, 좌절하고, 완전히 지쳐서, 주말 동안 가장 가까운 친구 두 명과 함께 멀리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올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18개월 동안, 헨리도 빠져나갈 출구를 철저히 계획하고 있었다. 모든 자산을 그의 동업자의 이름으로 전환하면서, 회사에서 손을 뗐다. 그는 빠져나가기를 원했을 뿐 아니라, 조앤을 정서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궁지에 빠뜨리기를 원했다. 조앤이 운전해서 나간 지 30분도 되지 않아, 트럭들이 집에 도착했다.

 

조앤이 일요일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서 맨 먼저 발견한 것은 집이 완전히 어둡다는 것이었다. 두려움이 목까지 차 올랐다. 안에 들어가서 문 옆의 라이트 스위치를 찾았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벽과 텅 빈 거실과 커튼도 없는 창문에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히스테리 상태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집안 곳곳을 뛰어다녔지만, 모든 방은 텅 비어 있었고, 자신의 발자국 소리만 메아리칠 뿐이었다.

 

그녀는 부엌의 차가운 대리석 조리대 위에서 한 장의 쪽지를 발견했다. 그 쪽지에는, 헨리가 절대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만약 조앤이 그를 괴롭히지 않는다면 아이들을 보러 오도록 허락하겠지만, 그녀는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조앤이 월요일 오후에 나에게 처음 한 말은 “저는 모든 소망을 다 잃어버렸어요”였다. 오랫동안, 조앤의 소망은 위험한 소망이었다. 그것은 한 남자에 대한 소망, 물질적인 대상들에 대한 소망, 집에 대한 소망, 가정에 대한 소망,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소망이었다. 사람들, 사회적 위치, 또는 재산 등을 귀하게 여기는 것 자체는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시적인 것들은 결코 소망의 원천으로 계획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무일푼이 되고 말았다. 헨리는 여전히 그들 부부가 다니던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조앤의 가장 친한 친구들 중 여럿에게 그녀를 비난하는 말을 했다. 그녀는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몰랐고, 그 아이들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법정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조앤은 이 깨어진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아픈 삶의 현실을 직면하고 있었으며, 달아날 출구가 없었다. 그녀가 매일의 지원을 얻기 위해 의존했던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쉬워 보이는 매우 낙심되는 시기였다. 상황이 어떻게 그토록 엉망이 되어버렸는가?

 

조앤과 당신,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무너져버린 집과 같다. 모든 방들이 다 죄로 인해 더러워지고 손상되었다. 그 가운데 어떠한 부분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처럼 순수한 영광 같은 것으로 빛나지 않는다. 죄는 이 세상을 애석하고 끔찍한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당신은 매일 육체적, 정서적, 영적, 관계적인 깨어짐으로 고투하는 우리 각자의 삶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국소 마취 상태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서 사는지 잊어버렸다. 우리는 현재의 삶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망가진 집이며, 이것이 우리를 온갖 종류의 문제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이 손상된 시력은 대체로 세상과 관련하여 성경이 제시하는 그림을 받아들이지 못한 우리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성경은 영적 헌신의 신비한 삶을 수록한 고차원적인 두꺼운 책이 아니다. 성경은 일상 생활의 깨어짐으로부터 분리되는 더 없이 행복한 상태를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이 세상에 대한 책이다. 성경은 불행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진실한 책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세상을 실제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 큰 화면으로, 세밀한 내용까지 나오는 고화질의 화면으로 직면한다. 성경은 참되고 정확한 내용을 배제하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의 상황에 대한 성경의 솔직함은 철저하게 진단하는 관찰을 통해 나온다. 좋은 진단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말해 주며, 성경은 매 페이지마다 인간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 6장 5절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씀한다. 로마서 3장 10-18절에서도 거의 같은 말씀을 한다. 이 본문들 각각은 원래 의도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당신과 내가 직면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성경은 그 진단적인 관찰에서 정직할 뿐 아니라, 타락한 세상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스토리를 보여 주는 데에도 정직하다. 당신은 창세기 4장에서 형제를 잔혹하게 살해한 충격적인 기사를 접할 수 있고, 열왕기와 역대기에서는 표리부동한 이스라엘의 암담한 우상숭배, 그리고 성과 권력과 돈에 얽힌 권모술수를 접할 수 있다. 신약성경은 정치적인 동기로 영아들을 살해한 헤롯의 이야기와 메시아에 대한 십자가 처형으로 이어진 비뚤어진 정의를 보여 준다.

 

성경의 진단이 우리 자신의 마음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속에는 성경이 우리에 대해 말하는 내용과 우리가 자신에 대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내용 사이에 전쟁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당신과 나는 각자 자신을 실제의 모습보다 더 지혜롭고 성화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지적할 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우리가 잘못 판단되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세상의 가장 정확한 진단 도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을 들여다 볼 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확한 본질을 본다. 이것은 나의 가장 큰 결핍이 환경적인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함을 의미한다. 나의 가장 큰 결핍은 타락의 깨어짐이 모든 상황, 모든 관계, 모든 환경을 파괴했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하지 않는다. 내가 이 타락한 세상에서 무엇을 직면하든지 상관없이, 삶에서 내가 겪는 최대의 문제는 나의 밖이 아닌 나의 안에 존재한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도덕적인 상태에서 발견된다. 내 안에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으며, 그것은 내가 갈망하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에 이런 저런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성경은 이 무너진 집의 가혹한 현실을 최소화하거나 축소하거나 부인하려는 시도를 거부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죄인인 자신의 정체성만을 인식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도 없다. 그 무게를 우리가 감당할 수도 없다. 그런데 당신은 죄인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당신은 은혜의 자녀이기도 하다. 이러한 두 가지 정체성은 건강한 긴장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오직 자신의 죄를 깊이 자각하는 사람만이 은혜에 대해 감격할 수 있고, 오직 은혜만이 당신의 죄와 이 세상의 깨어짐의 어마어마한 현실을 겸손하게 직면할 용기를 줄 수 있다.

 

성경 전체는 과분한 구속의 스토리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기사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 가운데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아들의 임재를 통하여, 이 타락한 세상의 쓰레기 한복판에 일방적으로 찾아오셨다. 그리고 우리의 본 모습(곧 죄인의 모습)으로부터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새로운 모습(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깊고 철저하게 변화시키신다. 오직 은혜만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일깨워서 죄로 망가진 이 세상에서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성경의 사건들을 볼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은혜로 인해 영원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그 결과, 안팎의 잔해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을 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영원에 귀 기울임으로써, 지금 바로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영원의 관점에서 인생을 보기 전까지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고, 이 삶에서 직면하는 현실의 진상을 파악할 수 없으며, 또는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영원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은 어떤 상황에서나 기독교적인 참된 소망을 가져다 주며, 소망은 통찰과 용기를 만들어 낸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손으로 하라고 명령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이라고 하는 분명한 실재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기, 이생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바울은 우리에게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라고 말한다(고전 15:25-26). 이것은 우리의 세상이 우연과 혼동의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세상은 구속주의 인격적인 통치 아래에 있는 세상이며, 그 구속주는 자신의 생명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줄 정도로 자애로우시고, 심지어 사망까지도 패퇴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하시다. 악은 지금 패배하는 과정에 있다. 사망은 궁극적으로 죽을 것이다. 심지어 당신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소망을 품을 이유가 있다. 그리스도의 통치를 통해, 정의와 긍휼은 이길 것이다.

 

그렇다면, 조앤의 경우는 어떠한가? 아니, 조앤의 남편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의 아이들은 부모의 결혼 파탄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조앤은 대부분의 친구들을 영원히 잃었고, 아마도 앞으로 다가올 수년 동안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도 무언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조앤은 예전에는 전혀 품지 못했던 소망을 가졌다. 그 소망은 그녀를 결코 수치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며, 그녀를 낙담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조앤은 영원에 대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소망을 보증하는 것이 그녀의 은행 통장이나 집 크기, 친구들, 남자의 사랑, 어머니로서의 일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다.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이 그녀에게 보증하는 영원에서 발견되어야 했다.

 

당신도 그 영원에, 바로 당신의 참된 소망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여기서 당신에게 주어진 약속들, 즉 당신의 통치자가 하신 모든 말씀들은 믿을 만하며 확실하다고 보증하는 약속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배신, 불의, 분노, 복수 등이 없는 영원한 날이 올 것이다. 더 이상 고통이 마음을 채우지 않고, 더 이상 눈물도 흐리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에, 조앤은, 그리고 당신과 나는, 마침내 회복된 집에 들어가며 우리의 동료 순례자들과 함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 7:10)라고 말할 것이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Hope in This Broken-Down World

번역: 김장복 (매일배움)

작가 Paul Tripp

폴 트립은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The Center for Pastoral Life and Care와 Paul Tripp Ministries의 대표로 목사, 작가, 국제 컨퍼런스 강사로 활동 중이다.  ‘치유와 회복의 동반자’(Instruments in the Redeemer’s Hands)와 ‘눈보다 더 희게’(Whiter Than Snow)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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