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불을 밝히다
by R. C. Sproul2018-12-19

나는 부흥의 시작을 외치는 교회 홍보 문구를 볼 때마다 당황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런 교회들은 으레 부흥의 시기를 스스로 제시한다. 그러나 나는 누가, 어떠한 기준으로 부흥에 대한 시간표를 정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참된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으로서 성령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때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부흥은 성령이 마른 뼈들 속에 들어와(겔 37장), 그분의 능력을 행사함으로 새 생명을 일으키실 때 가능하다. 하나님이 그 백성의 영적 생명을 소생시키지 않으신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이런 성격의 부흥은 그 어떤 인간의 프로그램으로도 관리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그 어떤 사람도 종교개혁의 스케줄을 스스로 정한 일은 없다. 웨일스의 부흥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예정표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각성도 사람의 시간표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교회 역사의 이런 장엄한 사건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 안에서만 일어났다. 즉, 하나님이 죽어 가는 교회에게 그분의 능력을 베풀어 주셨을 때에만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부흥과 개혁의 차이를 잘 파악해야 한다. 단어 자체가 암시하는 것처럼 부흥은 생명을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복음 전파가 교회의 핵심 목표가 될 때 선교와 전도 활동은 종종 부흥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적 생명의 부흥이 반드시 개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혁은 교회와 사회가 유지되는 틀이 바뀌는 것을 가리키는데, 부흥이 개혁으로 발전하려면 복음이 사회의 문화를 바꾸기 시작해야 한다. 부흥은 다수의 새로운 크리스천을 낳을 것이나, 이 새로운 사람들이 문화의 변화를 이끌고 결국 개혁에까지 이르려면, 그들이 먼저 신앙적으로 성장해야만 한다.

 

개혁이 좋은 쪽으로의 변화를 이끈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겠지만, 우리는 모든 변화가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때때로 사람들은 침체 상태에 있거나 진전이 없다고 느낄 때에 변화를 추구하지만, 그 변화가 진전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독약을 마신다면 몸에 곧 변화가 찾아오겠지만, 그것은 더 좋은 쪽으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다. 이처럼 방향성의 위험이 뒤따름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많은 경우 우리를 좋은 길로 이끈다.

 

오늘날 우리는 기존 칼빈주의 5대 교리에 집중하는 ‘신칼빈주의’의 태동을 목격하고 있다(여기서 지적하는 ‘New Calvinism’은 2006년 미국 켄터키주 루이스빌에서 개최된 목회자 컨퍼런스의 신학적 입장에 대해 콜린 한센[Collin Hansen]이 명명한 표현으로서 19세기 네덜란드에서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에 의해 주도된 ‘신칼빈주의’ 운동과는 구별된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움직임에 교계는 물론 심지어 세속 매체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칼빈주의를 5대 교리에 국한시켜 이해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이 5대 교리를 개혁파 신학의 전체 구조로 나아가기 위한 길 또는 다리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찰스 스펄전은 칼빈주의를 전체 성경신학을 표현하는 닉네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스펄전을 비롯한 과거의 많은 신학 거장들은 개혁파 신학의 핵심이 이 5대 교리(곧 17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칼빈주의의 교리 체계에 반대했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정립된 교리)로만 축소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개혁파 신학은 서로 분리된 여러 개념들을 그저 한데 모아 놓은 혼란스러운 신학이 아니다. 오히려 개혁파 신학은 조직신학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자체가 곧 그분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따라서 만약 사람의 눈에 더욱 일관되어 보이도록 성경에 다른 무언가를 첨가하고 또 지나친 획일화를 추구한다면, 이는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일이 된다. 이러한 방식은 신뢰할 수 있는 조직신학으로 향하는 목표가 아니다. 참된 조직신학은 성경을 거시적인 관점으로 분석하여, 전체 흐름에 내포된 신학적 구조를 밝혀낸다. 따라서 조직신학은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 이외의 다른 어떤 외부적인 생각도 덧붙이지 않으며, 오직 성경이 선포하는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일관된 방식으로 풀이하는 학문이다.

                                                                                                

개혁파 신학은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다. 즉, 개혁파 신학은 인간에 중점을 두지 않으며, 개혁주의 전체에 걸쳐서도 하나님의 교리가 핵심을 차지한다. 사실, 하나님을 이해하는 일이 다른 모든 교리를 알아가는 근간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권을 바로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분의 선택적 구원 교리에 대해서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개혁파 신학은 반-가톨릭 신학이 아니다. 사실 개혁파 신학의 뿌리가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과 행보에 저항했던 종교개혁에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정의는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가톨릭(catholic)이라는 용어는 공교회 곧 보편적인 기독교(catholic Christianity)를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이는 교회 역사의 초창기 1천 년 동안 정립된 에큐메니칼 신조(ecumenical creeds)를 그 본질로 삼는다. 에큐메니칼 신조는 특히 4세기의 니케아 공의회와 5세기의 칼케돈 공의회와 같은 초대교회의 공의회에서 채택된 신조들을 포함한다. 따라서 에큐메니컬 신조는 삼위일체나 예수님의 속죄와 같은 정통 기독교의 모든 교파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교리를 담고 있다. 칼빈주의의 핵심 사상 역시 모든 크리스천이 따르는 교리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는 이전 것과 완전히 구별된 새로운 신학이 아니며, 기독교의 모든 교회가 따르는 공통의 신학적 기초를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칭의에 대한 개혁파 신학의 견해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견해와는 다르다. 다시 말하자면 개혁파 신학은 과거의 종교개혁이 그러하였듯이 칭의의 중심에 복음이 자리한다. 개혁파 신학은 마틴 루터(Martin Luterh)나 권위 있는 종교 개혁자들의 은혜적 교리 위에 굳건히 서서, ‘sola Scriptura’(오직 성경)의 정신과 마찬가지로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를 강조한다. 오직 성경과 오직 믿음은 비록 칼빈주의 5대 교리에 명백하게 공표되어 있지 않지만 개혁파 신학의 근간을 이루는 교리들이다.

 

이상의 모든 설명은 개혁파 신학이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훨씬 넘어서는 총체적인 세계관임을 말해 준다. 개혁파 신학은 언약적이고, 성례적이며, 세상의 문화를 변화시킨다. 개혁파 신학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에 종속되어 있고, 성경의 가르침 전체를 보게 하는 포괄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따라서 진정한 개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단순히 칼빈주의의 부활이 아니다. 참된 개혁은 우리 안에서 복음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부활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리고 복음이 명백하고 충만하게 선포될 때, 하나님이 펼치시는 구속의 능력을 통해 우리는 교회와 세상에서 놀라운 부흥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오로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만 구원의 능력을 행사하신다. 

 

우리가 개혁을 원한다면, 다른 누가 아닌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제 그만 어둠에서 복음을 끌어내어, 모든 개혁의 고백이 포스트 테네브라스 룩스(post tenebras lux), 즉 “어둠 후에 빛이 있다”가 되도록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루터는 “모든 입이 신약성경의 참된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라고 소리 높였다. 


더불어 루터는 복음을 명백하고 담대하게 선포하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세상과의 갈등을 마주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경고했다. 또한, 본능적으로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약함이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숨기고, 복음을 희석시키며, 또 복음을 모호하게 만드는 유혹에 이끌리게도 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우리는 복음의 메시지에 내재된 세상과의 마찰을 결코 제거할 수 없다. 왜냐하면 타락을 추구하는 이 세상에게 복음은 그 자체로 장애물이자 하나의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기억하라. 복음은 반드시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로 개혁을 원한다면, 인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힘써야만 한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Fueling Reformation

번역: 김귀탁 (매일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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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 C. Sproul

R. C. 스프로울 박사는 Ligonier Ministries를 설립했으며, 플로리다 주 샌포드 시에 위치한 Saint Andrew’s Chapel의 창립목사로, Roformation Bible College의 초대총장으로 봉직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의 거룩성’(The Holiness of God)을 비롯하여 백여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