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를 끝내기 위해 오신 예수님
by Sam Allberry2018-12-24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다. ‘E.T.’, ‘레이더스’, 그리고 ‘죠스’는 아주 유명한 그의 대표작들이다. 이 영화들을 보며 어린아이들은 꿈을 꾸고 공포도 느꼈다. 그런데 스필버그는 탁월한 재능 때문인지, 그의 작품들을 평범하게 끝마치기 어려워했다. 이를테면 그의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 너무 깔끔하게 결말이 맺어지거나, 관객들의 믿음이 필요한 엔딩 장면으로 문제가 자주 해결되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마이너리티 리포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그리고 ‘A.I.’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복음서 이야기에 대한 멋지고 행복한 결론으로 본다. 마치 스필버그가 배신과 부인, 또 죽음이라는 어두운 배경에 결말을 위해 어떤 장치를 만드는 것과 같다. 그의 영화에서처럼 붉게 타오르는 일몰이 배경으로 자리한 엔딩 장면으로 부활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에 이어지는 ‘속편’이 아니다. 부활은 복음서 이야기를 끝내기보다 완성시키는 요소이다. 사실, 부활 없이는 이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연대기적 문제가 아니라 장엄한 신학적인 문제이다. 부활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부활은 우리를 구원한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부활이 없이는, 구원도 없다


바울은 부활의 필요성을 놀라운 방식으로 설명한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그는 부활을 칭의와 연결시킨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구원이 절반 이루어지고, 또 부활하심으로써 나머지 절반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은 존재라고 말한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의롭게 됨도 없다고 말하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만일 예수님이 죽은 상태라면, 우리가 지은 죄의 빚은 여전히 처리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우리는 죄의 영역 아래 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부활의 생명이 없었다면, 우리의 새로운 삶도 없다. 예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분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부활의 의미를 그처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무엇일까? 성경의 광대한 이야기가 보여 주는 사실이 있다. 곧 죽음이 갖는 특별한 의미 때문에 그분의 부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할 때에만, 예수님의 부활이 가지는 의미도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


죄는 죽음을 낳는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창 2:17). 하나님은 생명이셨고, 그분에게서 돌아서는 일은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죄는 죽음이라는 삯을 받거나(롬 6:23), 또는 그 죽음을 출산한다(약 1:15). 다시 말해, 죽음은 죄의 결과이며, 죄가 받아야 할 대가이다.


왜 우리가 죽음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종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죽음을 출생과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일어나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 중에 하나라고 여긴다. 그러나 죽음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죽음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고, 아무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가 가진 죽음에 대한 불안은 인지하고 것 이상으로 우리가 많은 내용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죄도 그렇지만) 죽음은 원래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경험하도록 계획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죽음은 죄를 통해 들어온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경험은 죄의 실재를 보여 준다.


완료된 거래


우리가 죽음의 의미를 파악하면, 부활의 의미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사건은 하나님 아버지가 임의적으로 행하신 일이 아니었다. 단지 그분이 여전히 살아 계실 수 있는 위대한 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기적도 아니었다. 그보다도 부활 자체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곧 죽음이 죄의 열매이고 증거인 것처럼, 부활도 구원의 열매이고 증거가 된다. 예수님의 새로운 생명은 죄와 죽음의 순환이 마침내 깨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고, 죄는 정복당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고, 오직 부활만이 우리의 죄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죽음은 더 이상 우리의 목적지가 아니라 완전하고 영원한 삶으로 가는 관문이 된 것이다.


십자가는 여행 배낭 같은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몇 개 챙겨 넣으시고 우리가 알아서 꺼내 쓰라고 주신 그런 배낭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거래가 끝났다. 즉, 성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실 때, 성부는 그 거래에 서명하신 것이다.




출처 :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 Death is Dead, Christ Has Conquered

번역 : 김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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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am Allberry

샘 올베리는 Ravi Zacharias International Ministries의 국제 강사로 섬기며 미국 TGC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Is God Anti-Gay?'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