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부활은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가?
by Matthew Barrett2019-01-02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중요성 면에서 부차적인 교리로 여겨진다. 부활의 의미는 해마다 부활절이 오기 전까지는 무시되고 잊혀진다. 그 경향은 우리가 복음을 나누는 방식에서도 보여진다. 크리스천들이 복음에 대하여 나눌 때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거기서 그냥 끝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십자가에 달리심에서 ‘회개하고 믿으라’로 곧바로 가버린다. 이는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 22-24절과 4장 26절에서 말하는 예와는 다르다. 십자가는 구원의 핵심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성취하려는 것은 부활절 아침의 빈 무덤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니케아 신조를 빌려서 말하면)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정확하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우리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다      


부활 이야기를 읽고 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기에 내가 거듭났다!”고 말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면, 우리는 거듭남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거듭남은 오직 예수님이 다시 사셨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가르쳐 준다. 우리의 거듭남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이고 단독적인 행위로, 우리의 돌 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바꾸는 것이다.


베드로에 따르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벧전 1:3) 하셨다.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살리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 사망에서 영적 생명으로 살리셨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지만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리고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6; 참고로 골 3:1)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있게 하실 수 있다.


우리의 칭의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음을 믿는 사람들은 의롭다고 여겨진다. 로마서 4장 23-25절에서 바울이 말하듯이,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의롭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심으로 우리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확증하셨다. 하나님은 아들의 사역이 완성되었다고 선언하셨다. 우리 죄 값이 지불되었고 아무 죄도 남지 않았다.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은 그의 저서 ‘조직 신학’(Systematic Theology)에서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죄 값이 지불되었기에 너에게 어떤 죄도 찾을 수 없고 내 눈에 의롭게 보인다’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구원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한번 신뢰하면 우리에게도 그것이 적용된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마지막 증거가 되었다.”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도 이 문제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죄 값이 모두 지불되었는지에 대하여 아직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부활은 하나님이 흡족하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부활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완성되었다. 중보자로서 그리스도는 의롭다고 여겨진다”(Miscellanies, Vol. 13, 227).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지 않았다면 “죄인들을 위한 너의 속죄 사역에 흡족하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여전히 죄로 인해 죽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죄로 인하여 여전히 죽어 있다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고 의롭지 못하며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가망이 없다.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다시 시신 것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우리의 형벌이 감당되지 않았고, 우리의 죄는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된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다”(The Assurance of Our Salvation, 492).        


우리의 성화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계속 죄 가운데 있지 않다.  바울이 질문하듯이,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그 가운데 더 살겠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롬 6:3-4) 하신다. 그러나 바울은 계속해서 부활과 우리의 성화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5-11).  


바울의 마지막 두 문장은 특히 강력하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다. 그리스도가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스도가 다시 사신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산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육을 따라 살 것이 아니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우리의 죄로 가득하고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불신앙의 옛 자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며 성령의 능력으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무덤에 그대로 있으면 그 무엇도 가능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죄의 권세를 이긴 우리의 승리이다.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는 확신이 있고 성화된 삶을 살 능력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우리가 성화된 삶을 살 수 있다는 우리의 확신을 더욱 강조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1-4).   


구속 역사의 정점


리처드 개핀(Richard Gaffin)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울의 구원론에서 핵심 요소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신자 개인이 구속 역사의 풍성함을 구체적이고 고유하게 경험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Resurrection and Redemption, 135).


진정으로 그의 말에 동의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구속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놓치면, 싱클레어 퍼거슨(Sinclair Ferguson)이 살펴보고 있듯이, 우리는 복음을 오해하고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과 우리의 구원을 연결시키지 못하게 된다(Resurrection and Redemption, 6). 칼빈이 설명하듯이,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 전체와 그와 관련된 모든 부분들을 이해하는" 크리스천에게 이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된다(기독교강요 2권 16장 19절).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The Neglected Resurrection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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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atthew Barrett

매튜 바렛은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기독교 신학 교수, Credo의 편집장, Credo Podcast의 진행자이다. Center for Classical Theology의 디렉터이며, The Reformation as RenewalSimply Trinity의 저자이다. 현재 Baker Academic에서 조직 신학을 저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