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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서 발견하는 예수 그리스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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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Glen Scrivener  /  작성일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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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oble Mitchell on Unsplash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나는 젊은 목회자들과 어떤 주제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한 모임을 인도했다. 그 모임에서 어느 목회자가 우리의 토론을 위해 사사기 14장에 관한 해석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 해석의 결론으로 “자기 백성을 영원히 구원하러 오실 또 다른 구원자”가 있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서 어떤 부연 설명이라든가 ‘예수’라는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런 내용을 결론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발표 후 토론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런 내용으로 결론을 내리셨나요?” 그러자 곧바로 다른 목회자가 내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답변을 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니까요.”


모든 목회자들이 그 말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 모임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왜’ 우리의 해석이 예수님께로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그런 해석법은 하나의 규칙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나는 이런 현상을 기독교인들이 모인 장소에서 흔히 보게 된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크리스천 성경(Christian Scripture)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읽어야 하는지는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저 구약성경은 예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익숙한 장치와 같이 여겨질 뿐이다. 왜 그런 것일까?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의 핵심으로 보도록 도와주는 해석 렌즈를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렌즈를 통해 살펴보면, 구약성경은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계속하여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약속하며, 그분의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구약성경


홍수와 방주, 유월절과 홍해, 광야와 약속의 땅, 유배와 귀환, 전쟁과 평화, 나라와 왕, 선지자와 제사장, 성전, 희생제사와 의식, 삶과 죽음에서 나타나는 지혜, 슬픔과 기쁨의 노래, 의인의 고통과 순교자의 피 등, 구약성경의 모든 요소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구약성경의 전체 이야기와 그 각각의 부분들은 마치 프랙털(fractal)과 같이 부분이 전체를 보여 주는 구조를 갖는다. 따라서 그 이야기의 세부적인 부분에서 뒤로 물러나면 결국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이 큰 사이즈로 드러나게 된다(고린도전서 10장 1-11절에서 구약성경을 읽는 방식이 그 예이다). 그런데 바울은 구약성경에 있는 복음의 예표들을 설명하며 (고린도전서 10장 4절과 9절에서 그러하듯이) 그리스도가 단지 예표되는 수준을 넘어 구약의 신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약속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셨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를 약속하는 구약성경


구약 시대 백성들은 마치 전체 모자이크의 조각들처럼, 그들도 알지 못하는 복음의 예표를 하나씩 증언하며 무심결에 그리스도라는 그림을 만들어 가는 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도 역시 그 예표들의 성취를 바라본 자들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약속들을 통해 그럴 수 있었다. 예수님과 바울, 베드로도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구약성경에서 그 성취를 보았다(눅 24:25-27; 행 26:22-23; 벧전 1:10-12). 각각의 약속들은 구약성경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선포한다는 사실을 특징적으로 표현하는데, 그 약속들을 통해 주어진 메시지는 모세와 다른 선지자들이 직접 ‘쓰고’, ‘말하고’, ‘예언하고’, ‘예견한’ 내용들이었다. 따라서 그렇게 주어진 구약성경 자체가 요구하는 참된 신앙은 결국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즉 ‘메시아를 대망하는 신앙’(messianic faith)이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구약의 신자들에게도 붙들고 의지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존재를 드러내는 구약성경


구약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약속한다는 사실을 넘어 그분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사실은 가장 간과되기 쉬운 특징에 속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신약 저자들이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존재에 관해 명백히 언급하는 내용은 매우 인상적이다.


- “내가 있느니라”라고 하신 것처럼 아브라함이 보고 기뻐했던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요8:56-58).

- 고난 받는 모세에게 동기를 부여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히 11:26).

- 애굽에서 그 백성을 구원하여 내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유 5).

- 광야에서 따라 다니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고전 10:4).

- 이사야가 성전 환상에서 보았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다(요 12:40-41).


이렇듯 그리스도는 단지 구약성경에서 예표되고 약속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분은 그 이야기 속에 함께하셨다. 하나님 자신과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의 본질적인 성격은 첫 언약에서부터 새 언약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언제나 삼위일체의 존재 양식으로 사역해 오신 것이다. 즉 성부로부터 시작해서 성자를 통하여 성령의 의해 완성되는 사역을 하신다는 의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사역이 시작된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성탄의 시점에 이르러서야 중보자의 사역이 필요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요 1:1-14).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신앙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참된 신앙이란 단지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을 의탁하거나 개별적인 약속을 신뢰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 신앙은 바로 약속하시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칼빈이 자주 언급했듯이,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는 “복음을 입고” 오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옷을 걸치듯 입고 계신 그 복음의 약속들을 기억해야 하지만, 그 약속들만 따로 떼어내서 설교해서는 안 된다. 구원받는 신앙의 중심부에 있어야 할 대상은 바로 그 성자의 ‘존재’이다.


과연 처음부터 그랬을까?


지금까지는 모두 신약성경에서 인용한 본문들만 언급했다. 물론 이 본문들만 가지고도 구약성경이 그리스도를 선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런 주장이 오직 신약성경에서부터 뒤로(backward) 돌아가서 구약성경을 읽을 때만 성립하는 기독교적 해석이라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성경의 순서대로, 즉 창세기에서부터 앞으로(forward) 나아가며 성경을 읽을 때도 그와 동일한 그리스도 중심성(Christ-centeredness)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글에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구약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약속하며, 또한 그분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가 그 세 가지 방식으로 한꺼번에 그려지기도 한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을 세 군데 본문을 선택해서 보여 주려고 한다. 그리고 이 샘플들을 통해 당신이 성경 전체를 그와 같은 렌즈를 통해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에덴동산을 거니시는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3장)


예표된 그리스도: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죄로 인한 수치심 때문에 나무 사이로 숨는다. 그러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그들의 몸을 가린다. 그들은 잘못을 감추고 거짓된 변명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스스로 다뤄 보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해결책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신다. 그분은 나뭇잎이 아니라 가죽으로 된 옷을 지어 그들에게 입히신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허물을 가릴 가죽옷을 위해 하나님이 어떤 무죄한 동물을 희생시키셨는지 알 수 없지만, 이사야와 바울은 대속 개념으로 이런 일을 설명한다. 곧 그들은 우리의 허물을 다른 외부적인 의(an alien righteousness)가 가린다는 개념을 전제한다. 우리는 이를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사 61:10; 갈 3:27).


약속된 그리스도: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졌을 때, 아담과 하와만이 아니라 다른 피조물도 함께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내용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서 ‘여자의 씨’(the seed of the woman)를 약속하신다. 여자는 스스로 ‘씨’를 갖지 않기 때문에, 이런 표현은 여자가 기적적으로 누군가를 출생하는 사건을 암시한다(창 3:15). 이 여자의 씨는 비록 그 발꿈치가 상하는 희생을 치르겠지만 악한 자의 머리를 깨뜨리게 될 것이라고 선언된다. 여기서 우리는 그 ‘씨’를 통해 이루어질 기적의 출생과 승리의 고통에 대한 약속을 받는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갈라디아서 주석’(Commentary on Galatians)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주어진 그리스도에 관한 첫 번째 약속으로 소급된다. 구약 시대에 선조들이 가진 신앙이나 신약 시대에 우리가 가진 신앙은 모두 하나로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동일한 신앙이다. [중략] 시간이 흐른다고 참된 신앙의 대상이 바뀌거나 성령의 사역이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참된 신자들은 과거에 살았든, 현재에 살고 있든, 아니면 미래에 살든 상관없이, 그리스도에 대한 동일한 마음과 정서와 신앙을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그리스도: 여기서 우리는 흔히 간과되는 그리스도의 존재를 알아차려야 한다. 곧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던 하나님은 누구였는지를 물어야 한다(창 3:8). 이 문제와 관련해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청교도들이 지지했던 가장 보편적인 견해를 그의 ‘구속사’(History of the Work of Redemption)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나님이 모든 시대에 걸쳐 그 백성과 교회를 위해 행하신 거룩한 역사와 그분이 자신을 그들에게 계시하신 방식을 살펴볼 때, 우리는 특별히 삼위일체 가운데 제2위(the second person of the Trinity)를 염두에 두고 이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즉 인간의 타락 이후로 하나님이 자신을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내신 장면을 살펴볼 때는 통상적으로 삼위일체 가운데 제2위를 염두에 두고 이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이 설명이 구약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다 해결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이 처녀 마리아를 통해 성육신이 되기 이전에는 육신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존재를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등장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골로새서 1장 15절과 요한복음 1장 18절을 염두에 둔 에드워즈가 여기서 주장하는 내용은 언제나 성자의 중보를 통해서만 성부가 계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구약성경에서 단지 예표되고 약속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신다고 이해해야 한다(하편에서 계속).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Where Is Jesus in the Old Testament?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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