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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세 크리스천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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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Gavin Ortlund  /  작성일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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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현대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은 중세 교회의 가치를 잘 모른다. 솔직히 말해, 정말로 잘 모르는 듯하다. 우리가 가끔 교부들을 살펴보기도 하지만, 주로 최근(개신교)의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많다. 여러 복음주의자들이 조나단 에드워드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를 연구하는 복음주의자들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휘튼 대학의 교수이며 오푸스(Opus: The Art of Work) 설립자인 크리스 암스트롱(Chris Armstrong)은 “신앙에 있어서 중세 크리스천들과 우리의 차이는 그 시대 크리스천들의 독특함에 있다기 보다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철학적이고 문화적인 전제들과 더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의 새 저서 '현대 크리스천들을 위한 중세의 지혜: C. S. 루이스와 함께 잊혀진 시대의 신앙 발견하기'(Medieval Wisdom for Modern Christians: Finding Authentic Faith in a Forgotten Age with C. S. Lewis)는 중세 교회를 좀 더 잘 평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교회의 다양한 문제점과 결점을 바로 잡기 위하여 중세 교회의 지혜를 사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C. S. 루이스를 중세 교회의 세계로 들어가는 진입로로 사용하고 있다.  


중세 기독교 평가하기


암스트롱은 전통에 대한 중세의 관점, 중세 신학과 윤리학, 중세의 병원 창설, 마음과 정서에 대한 중세의 관점 그리고 자연 신학과 성육신에 대한 중세의 관점을 탐구하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거나 악령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고 여겼다와 같은 중세 세계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오해들을 하나씩 해체한다. 그는 중세 크리스천들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배울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전염병이 있을 때 병자들을 돕는 그들의 용기에서, 그들의 신앙적 글들에서, 그들의 금욕적 실천에서, 그들의 예술에서, 그리고 영적 성장에 대한 그들의 통전적 접근에서 우리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영역들 중에서도 중세 사람들이 이해한 성육신 교리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암스트롱이 주장하듯이,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핵심 진리는 중세 기독교의 핵심이다. 이것은 중세 크리스천들을 더 체화되고 통전적인 '지상의' 기독교로 이끌었다. 중세 기독교는 믿음과 이성, 머리와 가슴, 육체성과 영성, 말씀과 성례, 수도원적 묵상과 학술적 추론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다루었다. 암스트롱은 “이 책 전체는 우리가 성육신 교리를 놓치고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제안한다.   


이 책 전반에 걸쳐 루이스는 중세의 다양한 신앙과 실천을 소개하는 가이드로 봉사하고 있다. 2장은 루이스가 그의 직감적 상상력으로, 그 자신의 신학으로 중세를 철저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장들은 루이스가 특정한 주제들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논의하면서 시작한다. 암스트롱은 루이스의 저술들뿐 아니라 중세 신학과 문헌들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루이스는 저자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이 책이 전체적으로 폭넓게 제기하는 여러 논점들을 독자들이 더 명확하게 공감할 수 있게 한다.


현대 기독교 비평에 중세 기독교 사용하기


암스트롱은 중세 기독교 탐구를 단순히 학술적 활동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현대 개신교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사용하기를 원한다. '현대 크리스천들을 위한 중세의 지혜'는 중세 시대를 방어하는 동시에 우리 시대를 공정하게 엄격히 비평한다.   


암스트롱은 현대 기독교를 ‘즉시주의’(immediatism)라고 부르며 꼬집는다. '즉시주의'라는 단어는 근본적으로 현대 사상의 세 가지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1) 새로움 추구(‘연대기적 속물근성’) (2) 즉각적인 결과 갈망(‘압박된 실용주의’) (3) 본 그대로 이해하는 식의 앎에 대한 단순한 견해(그는 이것을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상식적 현실주의와 연관시키면서 ‘상식적 인식론’이라 부른다). 그러나 암스트롱은 현대 ‘즉시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다른 차원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그는 예배에 다양한 형태의 매체를 사용하는 점에 대하여 현대 크리스천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면, 예전적 표현들, 성직자의 중보와 리더십, 성례에 대한 확고한 견해, 예배에 예술을 활용하는 것 등에 관하여 편견이 있다는 말이다.


암스트롱은 현대의 ‘즉시주의’와 비교하여 중세의 ‘성례중시주의’를 강조한다. 성례중시주의는 “외적으로 보이는 것은 내적이고 영적인 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우주에 대한 현대의 견해가 척박하고 기계적인 것과는 달리 중세 사람들은 생명과 물질 세계에 통전적으로 접근했다고 보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창조 전반에 주입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음식과 성과 감정조차도 영적 존재인 우리를 구성하는 요소들로 평가될 수 있다는 말이다.


현대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중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인간성에 내포된 중요한 의미를 간과해 왔다. 우리의 일, 문화 형성, 고난,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존엄성 등이 중요하게 주목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균형적으로 ‘비평’하기


중세 신학에 관심이 있고 최근에 성 안셈(St. Anselm, 1033–1109)에 대한 학위논문을 마친 복음주의자로서, 나는 현대 크리스천들이 중세 교회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암스트롱의 입장에 공감한다. 이 경우는 특히 훌륭하게 기술하는 능력이 있는 저자에게서 나온 것이어야 했다. '현대 크리스천들을 위한 중세의 지혜'는 전달력이 있고 통찰적이며 인상적인 책이다. 현대 크리스천들이 중세 교회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들을 여러 방식으로 훌륭하게 구성하고 있다. 

 

중세 신학을 연구하면서 나는 균형적인 ‘비평’이 어떤 것인가를 놓고 여러 번 씨름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하여 분별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평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때로 균형적으로 접근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방치되었다고 여겨진 것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기 쉬울 수 있다. 또한 바르게 잡아야겠다고 하면서 너무 지나치게 부풀려서 말하기가 쉽다. 한쪽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너무 상반된 쪽으로 가기가 쉽다. 학문의 세계는 특히 이러한 경향이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장이다. 그래서 중세 기독교에서 배울 이유가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우리는 형편없고 그들은 훌륭하니까 그들이 우리를 바르게 잡을 수 있다”와 같은 생각마져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암스트롱의 저서는 이러한 면에 민감성을 보인다. 그는 과거에 빠지거나 과거를 현재를 먹이는 ‘카페 양식’으로 적용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독자들은 특히 개신교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중세 교회가 많은 결점이 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종교개혁의 타당성이 어떤 면에서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암스트롱이 복음주의의 사상이나 경건과 다른 중세의 지혜들을 비교연구하여 서술할 때 여러 지점에서 내게도 의문이 들었다. 그 예로 암스트롱은 성자들에게 기도하는 부분, 연옥, 화체설을 언급하는데, 주로 이 교리들을 지지하면서 이것이 희화되는 것을 반대하는 듯 보였다. 그가 그 교리들을 믿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했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이 십자가에 달리심을 재편성했다고 비평한다. 그는 또한 중세 사람들의 마리아 숭배 신앙은 “구원 역사에서 핵심인 성육신에 대한 최초의 신앙”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로마 가톨릭의 열정적인 마리아 숭배 신앙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러한 영역에서 암스트롱은 개신교 독자들이 로마 가톨릭 신학을 따르지 않으면서 중세 교회의 지혜를 따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더 확실하게 분별하도록 도왔어야 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종교개혁이 중세 기독교보다 실제로 더 진보된 영역이 어디인지가 불명확해졌다.


겸허함과 관대함으로 중세 신학자들을 연구한 암스트롱의 의도는 훌륭하다. 하지만 좀 너무 관대한 것처럼 보이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그는 노리치의 줄리앙(Julian of Norwich)이 그리스도의 여성성을 표현한 점을 “정서적 신앙의 자연적 발현”이라고 방어하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줄리앙의 원죄 교리에 대한 그의 비평은 너무 빈약했다고 본다. 암스트롱은 “줄리앙은 죄를 현실적이지 않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정말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면서 빈약한 비평을 내놓고 있다. 중세 지혜가 도움이 된다고 분별없이 무조건 받아들이기 보다는 괴이한 부분을 식별해 낼 수 있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과거로 말하기


'현대 크리스천을 위한 중세의 지혜'는 전반적으로 믿을 만하며 주장이 잘 제기되었다. 개신교의 방향성이 중세 역사에 대한 ‘비평적 평가’가 목적이라면 이 책은 ‘평가’ 부분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비평’ 부분에는 좀 약하거나 모호할 것이다.   


우리는 중세 선진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교훈을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또한 그 외의 여러 시대의 교회 역사에 비추어 그것들을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결국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말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You Can Learn from Medieval Christians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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