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안에서의 비혼과 결혼
by Tim Keller2019-01-15

일본과 서유럽,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출산률이 인구대체수준(총인구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출생률) 이하로 급감하였다. 만약 이러한 현상이 그대로 지속된다면, 아마도 저출산으로 인한 해당 국가들의 경제적, 사회적 타격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많은 연구들은 신앙의 색채가 강한 나라일수록 높은 출산률을 보이고, 반대로 세속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출산 기피현상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원인으로 주로 지목되는 요인은 학력 수준의 상승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학력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개인은 출산과 양육의 시기를 점점 뒤로 미루게 되고, 이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출산률이 떨어진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고학력자일지라도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자녀를 많이 낳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저출산의 주된 이유를 학력으로 보는 사회경제적 관점은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한 설득력을 발휘할 수 없다. 아마 그 누구라도 이 복잡한 사회 현상에 대해 완전한 이유를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봄으로써 기독교 가정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비종교인이 가정을 이루는 데에 흥미를 잃게 된 원인에 대해서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희생 정신의 감소이다. 지난 30년 동안, 세속주의는 개인화를 가속화시킴으로써 가족에 대한 희생을 회피하도록 주도했다. 2003년 벤구리온대학교(Ben Gurion University)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는 아무 종교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종교 공동체에 속한 이들보다 낮은 출산율을 기록했다( “Darwin’s God”, New York Times, 2007년 3월호). 그 원인에 대한 가장 눈에 띄는 분석은 비종교인,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들의 자기중심적 성향의 증가이다. 예를 들면, 시너고그(유대교에서 집회와 예배의 장소로 쓰는 회당)에 참여하지 않는 남성들은 그곳에 주기적으로 참석하며 신앙을 이어가는 남성들보다 가족과 공동체에 훨씬 덜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유럽의 경우 정부가 나서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경제 지원 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지만, 많은 남녀들은 자녀를 위한 재정적 뒷받침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가 본인의 저서인 ‘마음의 습관’(Habits of the Heart)에서 잘 분석하였듯이, 세속주의 문화에서는 나의 자아가 곧 내 삶을 지배하는 주인이다. 그러므로 삶의 방향과 목적 역시 나의 만족을 기준으로 좌우된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가정을 이루는 행위는 곧 자기 자신과 행복의 상실로 여겨지고는 한다. 


비종교인이 가정을 이루는 데에 흥미를 잃게 된 두번째 이유는 희망의 감소이다. 주변의 많은 지인들이 언급하기를,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 비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더욱 비관적인 모습을 보인다. 오늘날의 우리는 민주주의와 번영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전세계적인 불의와 빈곤을 경험한다. 또한 산업화가 부른 생태계적 재앙, 그리고 기술의 진보에 따른 삶의 혼돈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이토록 절망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아이를 양육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조금 다른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 궁극의 정의가 이루어지고, 천국이 열리며,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는 그날에 대한 강력한 믿음, 즉 우리는 미래에 대한 절대적인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훨씬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세속주의는 개인을 우상으로 여김으로써 가정을 거부하지만, 뿌리 깊은 전통 종교는 반대로 가정 그 자체를 우상처럼 섬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가 가정을 이루는 데에 반드시 공헌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기독교는 여타의 역사적인 종교와는 다르게 최초로 비혼의 삶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예수님 자신과 바울이 바로 독신의 삶을 살았다. 이에 대하여 듀크대학교(Duke University)의 신학자인 스탠리 하워스(Stanley Hauerwa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가 유대교(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통적 종교)와 뚜렷하게 다른 부분은 성도들에게 ‘비혼’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A Community of Character, 174페이지). 역사 속에서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와 문화는 가정과 양육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왔다. 따라서 사람들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없이는 개인의 영예도 없고, 계승자(자녀) 없이는 이 땅에서의 삶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성에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가난한 미망인을 제도적으로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재혼의 궁지에 몰려야 했던 해당 여성들은 그 당시의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초대 교회가 이와 같은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기독교 복음’과 장차 열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결혼에 대한 신격화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비혼은 초대 교회 안에서 정당성을 얻었다. 그 정당성의 뿌리는 초대 교회가 메시아의 재림을 기다리게 된 첫 공동체로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진리에 눈을 뜬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비혼을 선택함으로써 완성하는 희생은 (단지) ‘섹스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승자에 대한 포기이다. 그 시절에 이보다 더 급진적인 행위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계승자를 포기한다는 것은 개인의 미래가 더 이상 가족에 의해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진리, 재림을 기다리는 시대에는 나의 미래가 오로지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교회에 의해서만 약속받을 수 있다는 새로운 진리를 공개적으로 따르는 행보였다”(Hauerwas, 190페이지). “(여전히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이 시대에) 비혼과 결혼은 둘 다 교회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제도이고 ...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삶의 방식이다. 또한 이 둘은 완전하게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왜냐하면 비혼에 대한 존중은 교회의 성장이 후세가 아닌 오직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확신하는 행위인 반면, 결혼과 출산은 재림 전까지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워가시는 그 시간이 앞으로 길고도 지난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그 일에 앞장설 다음 세대를 선물받고 또 길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희망을 자녀에게 두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녀란 하나님이 이 세상과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희망의 증표이다” (Hauerwas, 191페이지).


복음 중심의 공동체는 가정에 대한 성경적인 통찰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그 통찰의 열매로서의 가정은 자유를 억압하는 존재(세속주의의 시각)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상(전통 종교의 시각)도 아니다. 기독교 복음 안에서 바라보는 가정은 기존의 사회적,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가정과는 완전하게 다른 개념이다. 예를 들어 보수적인 문화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복음은 독신으로 하여금 그 수치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정체성은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고, 우리가 확신하는 미래의 소망은 바로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양육 역시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양육의 범주가 반드시 생물학적 기반 위로 좁혀져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복음 안에서 비혼에 대한 가치를 얻는다. 반면, 기독교 복음은 진보적인 문화권에서 점점 그 빛을 잃어가는 결혼과 부모의 희생에도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주권과 능력을 내려놓은 예수님의 희생 사역을 통해 우리가 새생명을 얻었음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크리스천 부모로서 그분의 본을 따라 개인의 자유와 힘을 희생할 때에, 우리의 아이들도 비로소 생명과 자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주님이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과 비교한다면, 우리가 자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희생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렇게 복음 안에서 결혼과 양육에 대한 힘을 얻는다.


복음은 종교도 아니고 비종교도 아니다. 복음은 그런 것과는 완전하게 다른 개념이다. 생명력 있는 진정한 복음은 세속적 문화나 전통적 관습과도 상관없고, 보수나 진보의 어느 한 쪽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진정한 복음은 우리가 이제까지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것임을 기억하라.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문: Three Ways with Families

번역: 정새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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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im Keller

팀 켈러(1950-2023)는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MDiv)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수학했으며, 뉴욕 맨하탄 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초대 목사로 섬겼다. City to City와 Faith & Work, The Gospel Coalition을 설립하여 교회 개척, 복음 갱신, 복음 연합에 큰 역할을 했으며,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와 ‘팀 켈러의 센터처치’ 등 다수의 책과 수많은 컨퍼런스 강연과 설교를 통하여 복음적 변증가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