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무덤을 둘러싼 역사적 정황
by Paul Rezkalla2019-01-30

십자가 처형을 받은 나사렛 예수의 무덤이 실제로는 빈 무덤으로 발견되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거짓말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빈 무덤의 역사성은 이처럼 기독교 신앙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빈 무덤을 둘러싼 역사적 정황을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1. 빈 무덤에 대한 믿음은 복음서나 바울 서신이 기록되기도 전에 존재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서 초대 교회가 고백했던 가장 이른 형태의 신조를 언급한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여기서 ‘받은 것을 전하였다’라는 공식적인 표현은 바울이 그 당시 교회가 공유했던 구전 전통(oral tradition)을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는 이 서신을 대략 50년대 중반에 기록했다. 따라서 이 신조의 내용은 그보다 더 일찍 형성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예수님이 기원후 30년 즈음에 죽으셨다면, 이 신조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십자가 처형 이후 25년 정도가 지났을 때는 완성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1장 18-20절은 바울이 이 신조를 30년대 어느 시점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로부터 받았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오늘날 바트 어만(Bart Ehrman), 제임스 던(James Dunn), 게르트 뤼데만(Gerd Lüdemann)과 같은 진보적인 학자들조차 이 신조의 형성 연대를 예수님의 죽음 이후 2년에서 5년 정도로 생각한다. 그중 뤼데만은 이렇게 말한다. “이 구전 전통의 내용은 십자가 처형이 있고 나서 2년 후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고, 3년 이상 넘어간 시점에 만들어 졌다고는 추정하기 어렵다.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서 언급된 예수의 출현에 관한 공식 내용은 대략 30년에서 33년 경에 그 기원을 둔다.”


즉 예수님이 죽으시고 3년도 채 지나기전에, 초대 교회는 이미 그분의 육체적 부활을 확증하는 신조를 구전으로 공유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는 당연히 예수님의 빈 무덤도 공인된 사실로서 그들이 인정하고 있었음을 전제한다.


2. 예수님의 육체는 예루살렘에서 장사되었다


우리는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한 후 장사되셨던 바로 그 도시에서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메시지를 선포하고 다녔다. 이 어부 출신의 제자들이 일으키던 운동을 진압하려면, 그냥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서 그 죽은 육체를 끄집어 내어 제자들이 거짓말쟁이임을 세상에 드러내면 되었을 것이다. 또는 로마인과 유대인이 모두 예수님을 추종하는 이 새로운 그룹의 사람들을 싫어했기 때문에, 무덤이 비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만일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 몸의 일부를 어떻게든 찾아내서 기독교 운동의 불씨를 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전개하는 운동을 약화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무덤에서 그 몸을 끄집어냈다든가, 아니면 무덤 속에서 결국 죽은 몸이 발견되었다든가 하는 따위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3. 예수님의 빈 무덤은 여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이 소제목이 함축하는 역사적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여자들은 그 성(性)의 특성상 경솔하면서도 뻔뻔하기 때문에, 여자들의 증언을 인정하면 안 된다. 또한 노예들은 그 영혼이 비천하기 때문에, 그들의 증언 역시 인정하면 안 된다. 이를테면, 그들은 모두 어떤 이익을 얻고자 하는 바람이나 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실을 말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요세푸스(Josephus)


“여자들이 제시하는 증거는 유효하지 않으며, 그들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일도 정당하지 않다. 예를 들어, 랍비가 강도라고 간주하는 사람이라도 여자가 제시하는 증거와 동일한 증거를 제시할 만한 자격을 가진다.” — 탈무드 중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


“율법이 여자한테 전달되기 전에 태워지는 편이 낫다.” — 탈무드 중 소타(Sotah)


모두 얼마나 거친 표현들인가! 당연히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 따위를 기념할 일도 없었다.


이처럼 여자들은 신뢰할 만한 증인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부족한 존재로 취급되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복음서 저자들은 빈 무덤과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첫 번째 증인으로서 여성을 거론했을까? 만일 그 저자들이 빈 무덤에 대해 기록한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실증하고 싶어했다면, 베드로나 요한이나 다른 유력한 제자들을 첫 번째 증인으로 언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 제자들 중에 누구를 선택했더라도 여자들보다는 그 결과가 나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복음서 저자들은 여자들을 첫 번째 증인으로 거론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아마도 빈 무덤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기록이 가진 당황스러운 요소(embarrassment)는 역사가들이 기록된 사건의 역사성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한 가지 기준이 된다. 만일 어떤 저자가 자기 글의 역사성이 의심 받을 수 있는 위험 부담을 끌어안으면서까지 당황스러운 요소를 삽입했다면, 그가 그 글의 내용을 지어냈을 가능성은 희박해 진다는 것이다. 즉 복음서 저자들이 빈 무덤의 증인으로서 구체적인 여자들을 거론하는 특징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요소로서 그 빈 무덤의 이야기가 꾸며졌다고 주장하기에는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4.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몸을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주장했다


마태복음 28장 11-15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만일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지 않았다면, 왜 굳이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그분의 몸을 훔쳐갔다는 소문을 퍼뜨렸겠는가? 또 만일 마태복음의 저자가 그 무덤이 실제로는 비어 있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면, 왜 그런 소문이 두루 퍼졌다는 이야기를 했겠는가?


2세기에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은 이 소문이 당시에도 여전히 돌아다닌다는 내용을 기록했다. 곧 ‘트리포와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문에 의하면] 제자들은 밤에 한 무덤을 찾아갔는데, 그 무덤은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서 풀려난 후 안치된 곳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그 몸을 빼내어 훔쳐갔고, 결국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고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속였다고 한다.”


우리는 만일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그분의 몸을 훔쳐갔다는 소문을 퍼뜨릴 필요도 없고, 또 그 소문이 퍼질 수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모든 정황을 미루어 살펴볼 때, 우리는 예수님의 무덤이 십자가 처형이 있고 3일째 되는 날 몇몇 여자들에 의해 빈 무덤으로 발견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제할 때에만 제대로 설명될 수 있는 위의 정황들과 얽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잠시 생각해 봐야 한다. 만일 복음서 저자들이 빈 무덤을 둘러싼 세부적인 정황들을 진실하게 기록했다면, 그 기록의 역사성이 드러내는 하나의 사실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4 Reasons to Believe in the Empty Tomb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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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Paul Rezkalla

폴 레즈칼라는 영국 버밍엄에 위치한 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철학으로 그리고 뉴욕에서는 신학으로 석사학위(MA)를 받고,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철학 박사 과정 중이다. 그는 탈라하세에 위치한 Four Oaks Community Church에 출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