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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베푸는 일이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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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Dave Dunham  /  작성일 2019-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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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lex Radelich on Unsplash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목회 사역이 두려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번은 그 예상을 깨고 두려움과 긴장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바로 커다란 몸집의 남성이 나를 찾아와 책상을 마주하고 내 앞에 앉아 있을 때 그러했다. 그는 자신이 분노 조절 장애가 있고 전과 기록도 있다고 말하며, 내게 상담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와 상담 중에 일어날 수도 있는 돌발적인 상황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 남성이 자신의 분노에 직면하게 하려면, 나는 그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 말을 해야 하는데, 그 말이 그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켜서 나를 공격하게 할까봐 두려웠다. 그 공격성 때문에 그 남자가 교도소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서 많은 피를 흘리게 되는 일이 생길까봐 몹시 두려웠다. 하지만 그 상처 입은 남성은 여전히 겁을 주며 씩씩거리고 있었지만, 도움을 요청하며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자비를 베푸는 사역에는 위험이 따른다


자비를 베푸는 교회가 되는 것은 매우 두려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교회는 이 진리를 알아야 한다. 모든 이들이 자비에 대해서 말하기는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비를 베풀 때 마주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자비에 대해 말하기는 쉬워도 이를 베풀어야 하는 현실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예를 들어 자비를 베푸는 행위에는 학대나 실망이 따를 수 있다. 내가 전에 섬겼던 교회는 ‘한부모 축체’(Single Parent's Fair)를 연례 행사로 열어 한부모와 그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그 행사에 초대되어 온 사람들 중 몇몇은 물품이 떨어지거나 의료 검진의 줄이 길어지면 화를 내고는 했다. 그 몇몇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음에도,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서슴지 않고 공격성을 드러냈다. 또 한번은 우리 교인 중의 한 젊은 여성은 지역 매춘부들을 돌보려 하다가 몹시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비를 표현하는 일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베푼 자비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를 표현하지만, 다른 소수의 사람들은 오히려 화를 내고 위협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얻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람들을 섬길 의지가 있는가? 그런 의지가 없다면, 당신의 교회는 아직 자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역은 외로운 일이다


오하이오주 남부 시골에 모여 사는 많은 사람들은 내가 섬기는 교회를 전혀 안전한 곳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도들 중에는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에 빠져 치료 중인 사람들과 전과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교회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한 여성이 내게 “나는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교회에 중독자들이 너무 많아서 무섭고 불안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우리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지지한다고 비난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마약 거래를 돕는 조직으로 오해하며 비난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우리의 사역을 복음 전파의 일환으로는 전혀 인정해 주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교회를 방문하지도, 또한 우리 교인들을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결국 그 지역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거의 사라졌다. 자비를 베푸는 일은 종종 외로움을 동반한다.

 

자비를 베푸는 사역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자비를 베푸는 교회는 단일 프로그램이나 행사에만 의존할 수 없다. 나는 코너스톤침례교회(Cornerstone Baptist Church)에서 함께 사역 중인 자원봉사자들을 좋아한다. 교회가 위치한 그 도시는 우리가 도와야 할 일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수도 없이 벌어지는 곳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 공동체가 자비를 베푸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언제 어디서나 필요가 생기면 달려가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비를 베푸는 방식은 다양하다. 법원에서 내린 시행명령에 따라 매일 오후 5시까지 학업 대신 일터로 향하는 청소년과 상담하는 일, 병으로 몇 주 동안이나 회복을 못하는 남성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일, 그리고 만약 전화를 받지 않으면 왜 그런가 살피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하는 일 등이 그 예이다. 때로는 우리가 그동안 돕고 있던 노숙자가 거의 죽어가며 누군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리 봉사자들은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그에게 향하기도 한다. 강간 피해자를 상담하는 일, 부모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 등은 절대로 봉사자의 일정에 맞추어 돌아가지 않는다. 자비를 베푸는 일이 사역자의 편리를 봐준 적은 한 번도 없다. 자비로운 교회가 되는 과정에는 몇몇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나누어 줄 음식 창고를 만드는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사역이 포함된다. 더 나아가 교회나 개인은 때때로 자비를 베풂으로써 발생하는 불편 자체를 감당하기 힘겨울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자비의 본질을 생각해 보면, 이를 베푸는 행위는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자비의 최고봉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 곧 자신의 생명을 내어 준 희생이고, 하나님이 아버지의 사랑에서 그 아들을 잠시 분리시킨 행위이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자비를 명하는 복음은 자비에 반드시 희생이 따른다는 사실을 모범으로 보여 준다. 교회가 자비를 베푸는 일에 대하여 우리가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려면 이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당신의 도움으로 매춘 생활을 접고 스스로 살아가게 된 여인이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그녀를 계속 섬길 수 있겠는가? 그동안 당신이 멘토링으로 섬겨 왔던 젊은이가 중독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님조차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를 계속 돌볼 수 있겠는가?


인내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여 주신 사랑에 의지하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라고 말한다. 성경은 사람들이 자비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거나 혹은 그것을 먼저 찾아 나섰기 때문에 자비를 얻은 것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자비를 베풀면서 실망을 느낄 때에는 이와 같은 복음의 진리로 힘을 얻어야 한다. 그러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낙심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자비를 베푸는 사역은 진정으로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불편함이 따르는 사역이다. 하지만 자비의 하나님을 안다면, 그 두려움은 진정되고, 외로운 마음은 위로받을 수 있으며, 불편함 가운데서도 주님이 주시는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Scary Mercy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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