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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엘리엇 아내의 고백: 고통은 결코 헛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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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Elisabeth Elliot  /  작성일 201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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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ring God

겉으로 보기에 상충되는 고통과 사랑이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는 오직 십자가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거기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고통의 의미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두 가지 다른 지평에서 해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완전히 역설처럼 보이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역시 두 종류의 다른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눈에 보이는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통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해석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고통


산상수훈을 예로 들자면, 예수님은 산 위에 올라가 설교하실 때 매우 역설적인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셨다(마 5:3-12). 그 설교는 다음과 같이 이상하게 들리는 말씀이었다.


슬픔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 무엇도 자신의 권리로 내세우지 않는 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박해로 고통 당하는 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사람들에게 비방과 부당한 대우와 온갖 종류의 중상을 당하는 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러므로 기뻐하라. 매우 크게 기뻐하라.


이런 가르침이 과연 말이 되는가?


그러나 만일 눈에 보이는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는 두 가지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르게 들릴 것이다. 바울은 그 둘 사이의 차이를 알았기에 다음과 같은 놀라운 선언을 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골 1:24). 이치에 안 맞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다. 자넷 어스킨 스튜어트(Janet Erskine Stuart)는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기쁨은 고통의 부재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이다.”


이 하나님의 임재가 시편 23편의 시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발견한 비밀이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여기서 시인은 “이 세상에는 악이 없기에 나는 해를 두려워하지 않겠노라”라고 순진하게 말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우리는 악하고, 망가지고, 뒤틀리고, 타락하고, 왜곡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시인은 무엇이라고 고백했는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내가 경험한 고통


1956년에 에콰도르 정글 속에서 소형 라디오를 통해 겨우 전달되던 소식, 남편 짐 엘리엇(Jim Elliot)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내 마음속에 이사야의 한 구절이 떠오르게 하셨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사 43:2). 그러나 이에 대해 나는 믿음으로 반응할 수 없었다. “주님은 늘 저와 함께 하시죠. 그런데 지금 제가 원하는 대상은 짐입니다. 제 남편 말입니다.” 우리는 5년 반 동안의 기다림 끝에 결혼한 지 27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5일 후에, 짐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분명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임재하셨겠지만, 짐은 부재했던 것이다. 이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분의 임재는 내가 과부가 되었다는 끔찍한 현실을 바꾸어 놓지 않았다. 나는 짐과 결혼한 일이 기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후로 죽을 때까지 과부로 있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재혼을 하리라고는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처럼 내가 과부가 된 고통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짐의 부재는 나를 밀어붙여서 결국 나의 유일한 소망이자 피난처인 그분께로 향하게 만들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인생의 다른 여정으로는 결코 알 수 없었을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고통은 하나님이 하나님(God is God)이시라는 절대적인 진리를 가르쳐주는 수단이며 이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불가능하다.’ 물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지금도 하나님께 따져 묻고 싶은 내용이 많다. “주님,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척추 파열을 가진 아기들은 어떻게 합니까? 산모가 코카인이나 헤로인이나 알코올에 중독되어 끔찍한 장애와 고통을 안고 태어난 아기들은 어떻게 하냐는 말입니다. 또 린드버그 납치사건에서 살해당한 아기(the Lindbergh baby)나 중국 선교사로서 참수당했던 스탬 부부(the Stams)는요? 이 모든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고통의 신비


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심지어는 내 자신이 던지는 물음이라고 해도 아무런 답변을 할 수가 없다. 단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고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알았던 한 사람의 고백 외에는 내가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롬 8:18-19).


(이 본문의 맥락에 따르면) 결국 피조물이 탄식하며 고통을 겪는 이유는 그들 자신의 선택—가령 아이들이나 동물들의 잘못—때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하도록 작정하신 이 때문이다(롬 8:20). 그런데 어쩌면 거기에 소망이 있다. 그리고 그 소망은 나에게 측량할 수 없는 위로를 가져다주는데, 바로 우주 전체가 마침내는 사망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드러내는 자유와 영광에 이르게 되리라는 전망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고통 많은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그 사랑의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우리의 추론으로 알 수 있을까? 또는 신의 존재를 필사적으로 찾다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우상이나 만들어 내는 인간이 스스로 알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랑의 하나님은 오직 창세 전부터 계신 영원한 말씀으로서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통해서만 알려진다. 우리가 지금 겪는 고통의 의미를 다 알지 못하는 이유도 장차 드러날 그분의 계획이 심히 깊고 비밀스럽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이 주신 말씀만으로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뿐이다. 바로 현재의 고통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Elisabeth Elliot: ‘Your Suffering Is Never for Nothing’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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