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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과 우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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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J. A. Medders  /  작성일 201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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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Myriams-Fotos on Pixabay

“하나님이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시는데 왜 기도해야 하지?” 아마도 은혜의 교리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런 질문이 불쑥 던져지면 말을 이어 가기가 힘들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냥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니까 기도한다”라는 식으로 대답하며 그 질문을 지나쳐도 될까? 물론 그러한 대답은 신학적으로 옳지만,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정말 그렇게 믿으며 기도하고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학적인 주장만큼이나 강력하게 그 주권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최상위의 원인으로 전제하는) 칼빈주의 신앙을 단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필요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대속의 범위보다도 기도에 관해 더 많은 설명을 남겼다. 왜 그랬을까? 케빈 밴후저(Kevin Vanhoozer)의 말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지 않다면, 사실상 하나님이 없다고 간주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참된 칼빈주의자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이야기하며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고 마음을 다해 간청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그대로 말이다.


참된 칼빈주의자는 자신이 누구의 제자인지를 기억하며 기도한다


어떤 신학 체계나 입장 또는 전통을 내세우기 전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충성과 신앙은 십자가 형틀에서 두 팔을 벌리고 매달리신 분, 수의에 쌓여 무덤에 장사되신 분, 그리하여 다시 살아나기 전까지 차가운 자리에 눕혀 계셔야 했던 그분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다. 바로 그 주님이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하시며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으므로 우리는 모두 다 기도해야 한다(마 6:5-11).


참된 칼빈주의자라면 다음과 같은 불신앙의 덫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은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역사의 궁극적인 결과와 수단과 방법을 정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믿음을 따라 행동한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요청하고 간구하는 기도를 통하여 순종하는 과정도 바로 그분이 세우신 계획의 일부로 여겨져야 한다. 이때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사실에 따라 행하고 있느냐이다.


우리가 참석하는 교회에서 열리는 기도 모임을 생각해 보길 바란다. 우리 각자는 그 기도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칼빈주의로 대변되는 우리의 신앙관은 기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기도가 없는 칼빈주의자는 그저 겉모습만 갖춘 극단적 칼빈주의자(hyper-Calvinists)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권적이시므로 전도와 선교와 기도가 중요하지 않다고 취급하는 극단적 칼빈주의를 신학적으로는 부정하면서 실제로는 기도하지 않음으로써 그 입장을 실천적으로 논증하며 살아갈 수 있다. 참된 칼빈주의자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자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보좌에서 만사를 다스리시며 자녀들의 간구를 듣기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매순간 기도하는 자이다. 한 마디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이다(살전 5:17).


참된 칼빈주의자는 하나님께 죄인들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한다


참된 칼빈주의자는 그가 속한 도시, 가정, 직장, 교회에서 더 나아가 미전도 종족에 이르기까지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기도한다. 하나님이 복음 안에서 나타나는 그 저항할 수 없는 찬란한 영광으로 죄인들을 부르신다는 ‘불가항력적 은혜’의 교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마음속에 기도의 불을 지펴 타오르게 만든다.


우리에게 믿음과 회개를 허락하시는 유일한 분은 삼위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얼굴을 가린 수건이 제거되게 해 달라고(고후 3:18), 눈에 덮인 비늘이 벗겨지게 해 달라고(행 9:18), 또 죄인을 주님 자신께로 이끌어 달라고(요 6:44) 간청하는 것이다. 불가항력적 은혜는 구도자(죄인)의 선택으로 구원의 여부가 결정되는 실용적인 교회관을 반대하기 위해서만 사용되는 교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죄인이 새롭게 변화되는 과정에서 그 은혜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보아야 한다.


그와 같이 칼빈주의자는 하나님께로 사람들이 돌아오는 참된 부흥을 준비하며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간구하고 그 응답이 있을 때까지 문을 두드리는 자이다.


참된 칼빈주의자는 지역 교회와 세계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예수님의 피가 십자가에서 흘러내려 골고다의 흙을 적셨을 때, 그분을 위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은 구속을 받았다. 이 백성은 곧 교회로서 세계 전역에 있다. 예수님은 이 교회가 더욱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당신이 함께 대화하며 성찬을 나누는 교회의 구성원들은 예수님한테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분은 자신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 13:34). 교회는 이 땅에서 역기능적인 모습을 혹 드러낼지라도 예수님에게 매우 귀한 존재이기에 우리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교회의 연합과 확장과 사명을 위해 기도하셨다. 만일 우리가 구속 사역이 각 개인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 각자가 속한 교회에 대해서도 특별한 애정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장로와 집사와 리더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바란다. 교회가 건강하고 그 신실함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라.


그리고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박해 중에 있는 교회 또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교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중국 정부에 의해 추방당할 위기에 있는 형제자매들은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은 그들을 우리와 하나로 묶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주일에 참석하여 눈으로 보게 되는 교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교회, 특별히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박해받는 신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모든 교회, 이를테면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즐거워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칼빈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신의 교회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참된 칼빈주의자는 거룩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전적 타락의 교리는 우리가 완전히 그리스도에게 의존되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의 삶에서 맺히는 모든 열매는 그분과의 연합에서 비롯되는 결실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는 우리의 성장은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성장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 자주 잊어버린다.


참된 칼빈주의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에게 자신의 존재가 의탁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의로우신 그분의 의를 매일 의지한다. 예수님은 타락한 존재로 태어나지 않은 유일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타락을 십자가에서 해결하셨기에, 우리는 그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게 될 수 있으며,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특정한 죄와 싸우고 있는 중이라면,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라. 다른 사람에 대한 악한 감정을 죽이고 싶은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바라보라. 단순히 ‘예수님이 나를 도우실 수 있다’라는 사실만을 상기시키지 말고, 아는 대로 행하라. 침대 옆에 무릎을 꿇거나, 부복하여 엎드리거나, 아니면 노트에 기록하면서라도 기도하라. ‘예수님, 저를 도와주세요. 주님이 없으면 저는 거룩하게 성장할 수 없습니다. 제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줄을 압니다. 그러니 제가 구원의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장은 오직 예수님의 도움으로만 가능하다.


칼빈주의는 우리의 기도를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기도 생활을 되살릴 뿐 아니라 지속시킨다. 칼빈이 말했듯이, “하나님의 자비를 맛보면 기도의 문이 열리게 된다.” 참된 칼빈주의는 우리가 죄인이지만 동시에 성도이므로,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크게 외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외쳐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바로 그 아버지가 만사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이다.




출처: www.9marks.org

원제: Real Calvinists Pray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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