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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이 아닌, 부흥 운동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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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Michael Lawrence  /  작성일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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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Campaign Creators on Unsplash

어떻게 교회를 키울 수 있을까?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고, 거의 모든 기독교인이 관심을 갖는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을 던지는 동기가 선하다고 생각하고 싶다. 즉 남성과 여성, 어린이를 막론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신실한 열망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결국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부흥 운동의 역사


제2차 대각성 운동이 크게 성공한 이후인 1800년대 초반부터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는 교회를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부흥 운동(Revivalism)의 '기술'에 주목했다. 부흥 운동과 부흥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매사추세츠 서부의 청교도 성직자였던 솔로몬 스토다드(Solomon Stoddard)는 부흥을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식으로 그의 백성 가운데 신앙을 부활시키는 특별한 사역"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부흥이 가진 초자연적이고 놀라운 측면과 그것이 교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회심과 성도의 제자화, 양적이며 또 영적인 성장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신성한 부흥의 결과이다. 그의 손자이자 제2차 대각성 운동의 주역, 그리고 뛰어난 신학 변론가였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신앙적 열망을 느끼는 횟수 또는 강도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분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기고자 하는 마음의 변화로 증명된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증명하는 일은 성령의 열매이지, 결코 흥분이나 열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부흥 운동은 "구원의 확신, 회개와 거듭남"을 끌어낸다고 간주되는 일련의 기술 및 방법의 집합체이다. 역사학자 이안 머레이(Iain Murray)가 지적했듯이, 정작 대각성 운동 당시의 부흥 설교자들은 "부흥을 일으키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소위 말하는 '부흥 운동 주도자들'은 심지어 부흥의 결과를 보장한다는 시스템까지 만들어 유행시키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이 어느 정도까지 확장되었는가 하면, 부흥은 제2차 대각성 운동 이후 이제 그 성공이 예고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역공학(reverse engineering)', 즉 구조를 분석해서 장치 또는 시스템의 기술적인 원리를 발견하는 방식으로 부흥에 접근하게 되었다.


제2차 대각성 운동의 캠프 미팅과 결신자 초청, 그리고 구도자석(찰스 피니[Charles Finney]가 고안한 방법으로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예배 후의 안수 기도를 위해 미리 앞에 와서 앉을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에서부터 감정적이며 힘 있기로 유명한 D. L. 무디(Moody)의 설교와 아이라 생키(Ira Sankey)의 감동적인 찬양의 절묘한 결합,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의 연속적인 부흥회까지, 부흥 운동의 방식은 변화하는 문화에 맞춰 빠르게 변화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핵심적인 기술은 예전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응을 고조시키기 위한 대규모의 환경,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고의적인 감정 자극, 그리고 끌어낸 반응을 회심의 고백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짜여진 기도 또는 일련의 행동까지 모두 그대로이다. 이와 같은 기술의 사용 이면에는 개인의 반응을 설교자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전제와 더불어 회심을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 대상으로 격하시킨 우리의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제2차 대각성 운동이나 무디, 빌리 그레이엄 등의 사역에서 진짜 회심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왔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유일한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결코 기술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킨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국 회심이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심으로써 죄의 자각, 지속되는 회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이 일어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이며 주권적인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지 않고 회개와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죄 가운데 죽은 채로 있을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의 역사 안에 인간의 기술이 들어설 자리는 애초에 있을 수 없다. 즉, 하나님의 손을 강제로 움직여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인간의 기술이란 있을 수 없다. 칼빈주의자가 된다는 건, 이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칼빈주의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이러한 진리가 바울(엡 2:1-10)뿐 아니라 예수님(요 6:44-45; 10:27-30)도 동일하게 가지셨던 바로 그 신학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비록 부흥 운동의 기술이 복음 전도자의 임시 ‘부흥회’에서 지역 교회의 주일 예배로까지 옮겨간 것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부흥 운동이 심지어 구원에 대한 개혁주의적 또는 칼빈주의적 이해를 고백하는 교회에서도 일어났다는 사실은 눈여겨봐야 할 현상이다. 혹시 부흥 운동의 기술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결국, 그 기술이 원하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나? 군중을 끌어모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들과 감정적인 연결을 맺어 그 순간에 고백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모으고 연결하고 이끌어 낼 수만 있다면 기존의 신학적 확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으니 좋지 않은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부흥 운동의 효과


각 교회마다 예배나 부흥회의 분위기, 찬양 선별 및 브랜딩은 각각 다르다. 그러나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의 수정교회에서부터 당신의 동네에 있는 대형 교회에 이르기까지, 부흥을 일으키고자 하는 방법은 교파에 관계없이 점점 더 동일해지고 있다. 즉 ‘모으고, 연결하고, 이끌어 내라’는 흐름에 수많은 교회가 집중하고 있다. 교회 성장에 대한 이 실용주의적 접근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큰 교회를 담임하는 칼빈주의자 목사에게 물어보라. 아마 "당신이 제대로 못하는 전도보다 내가 잘하는 매력적인 전도가 낫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만 찾으면 누구라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다", "교회 성장을 위해 필요한 건 단순하다. 좋은 음악, 어린이 프로그램, 그리고 충분한 주차 공간이면 된다"와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아무리 칼빈주의자이고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신실하게 믿더라도, 이러한 발언은 해당 목회자들이 교회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을 선호하고 또 교회는 그저 사랑받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신학자 데이비드 웰스(David Wells)는 현대화에 함몰된 현대 복음주의를 비판한 그의 첫 번째 책 '신학 실종'(No Place for Truth)을 출판했다. 그 책의 부제는 '복음주의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이다. 그는 제2차 대각성 운동 때부터 복음주의자들이 사역에 있어 이미 현대화의 도구인 마케팅, 기술, 제도화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결론지었다. 쉽게 말해, 목표는 고상했지만 그 동기는 실용적이었다. 오늘날은 모든 성공이 숫자로 측정되는 만큼 현대화의 도구는 더 잘 소비된다. 그렇게 부흥 운동이 시장 방식에 의해 정리되고 완성됨에 따라 "교회를 다니지 않던(unchurched)" 사람들이 몰려오고 교회는 성장한다. 웰즈는 이런 성공에 눈이 멀어버린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대적이고 산업적인 도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오늘날의 부흥 전략은 교회 안에 하나님의 왕국이 아니라 현대화를 지향 및 소비하는 문화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교회는 현대 문화를 향유하고 추구하는 종교 소비자들로 넘치게 된다.


평범한 은혜의 수단을 신뢰하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교회를 성장시킬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교회의 정의를 무엇이라고 내리는지, 사람이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만약 예수님을 매력적으로 제시할 때 비로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장소가 교회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에게 부흥 운동에서 쓰는 현대적 도구들은 성공으로 가는 티켓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죄로 인해 죽은, 그래서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초자연적 역사를 통해서만 다시 태어난 자들의 모임이 교회라고 생각한다면, 부흥 운동은 결코 당신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부흥을 원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술이 아닌 성령의 참된 역사로 일어나는 부흥을 원한다. 태초부터 이 희망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은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뤄져 왔다. 오순절 첫 복음 전파에서 종교 개혁을 통한 복음 선포의 회복까지, 또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했던 바로 그 복음에 이르기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 언제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자여, 이제 부흥 운동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키우기 위해 쓰셨던 바로 그 평범한 은혜의 수단으로 교회를 성장시키자. 그 수단은 바로 올바른 복음 설교, 올바른 성례, 그리고 올바른 권징이다. 그리고 그 옛날의 사도들처럼 말씀과 기도 사역에 헌신하자(행 6:4). 현대적 도구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생각을 중단하라. 그것은 결코 사도들의 방법이 아니었다.


문화적으로 적절한 음악, 편리한 주차 공간, 매력적인 간판, 그리고 간소한 등록 절차는 잘못된 구성 요소가 아니다. 이런 부분들도 당연히 우리가 신경써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런 도구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역사로 세워지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오롯이 말씀과 하나되는 영적인 예배를 이끌거나, 설교를 통해 그들의 마음에 참된 진리를 심어주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성령만이 그 일을 하신다. 인간적인 기술이 아닌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그 역사하심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출처: www.9marks.org

원제: Hey Calvinist, Enough of Your Revivalism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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