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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죄가 그분을 거기 매달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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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Greg Morse  /  작성일 2019-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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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Christoph Schmid on Unsplash

고난 주간의 금요일이면,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슬픈 날을 기념한다. 바로 그분의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렸던 그날이다. 곧 가시나무를 만드신 이의 머리에 커다란 가시 면류관이 쓰여진 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이의 입에서 고통의 신음이 터져 나온 날, 병사들이 그 몸을 때리고, 채찍질하고, 고문한 날이다.


그날 예루살렘 밖으로 난 길을 힘들게 걸어갈 때마다, 어깨에 짊어진 십자가는 상처투성이가 된 그분의 등을 짓눌렀고, 군중은 그 모습에 몸서리를 쳤다. 저 옛날에, 모세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던 하나님의 얼굴은 이제 사람의 몰골로 보기도 어려울 만치 상하였다(사 52:14). 온몸이 피로 얼룩진 그 끔찍한 광경을 보지 못하도록 여인들은 아이들의 눈을 얼른 가렸다. 그리고 남자들은 그 십자가를 진 죄수를 향해 악담을 퍼부었다. 병사들은 계속해서 매질을 했다. 이에 천사들도 두려워 떨었으리라.


이 날의 수난을 미리 내다보았던 모든 예언은 그렇게 성취되고 있었다. 그분은 그렇게 정죄와 고통을 받으며 죽음을 향해 걸어가셨다. 대적들이 나타나 그분을 쳤을 때, 함께 있던 제자들은 다 도망쳤다. 그중 하나는 그분을 팔아 넘기며 배신의 입맞춤을 남겼다. 밤새도록 사람들이 때리고, 침 뱉고, 모욕하는 일이 그칠 줄 몰랐다. 아침이 되었을 때, 또 다시 그 등에는 채찍질이, 뺨에는 수염을 뽑는 조롱이 행해졌다.


그렇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그분은 갈보리 언덕을 향해 걸어갔다.


그 끔찍한 광경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처음 보았던 때가 떠오른다. 그 영화에서 로마 병사가 내려치는 채찍에 달린 발톱이 예수님의 등에 박혀 살점을 뜯어낼 때마다, 마치 “칼이 (마리아의) 마음을 찌르듯”(눅 2:35) 내 마음도 찌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는 그분의 피가 낭자했다. 비명이 들려왔다. 고통의 울부짖음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본 후로, 나는 아무 감정도 없이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분이 고난 받는 장면은 나의 통념을 깼다. 그 광경은 매우 잔혹하며 끔찍했기에, 영화는 아이들이 볼 수 없는 등급으로 상영되었다.


평소에는 눈물을 잘 흘리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로마 법정의 온 뜰을 피로 적시며 고문 당하시는 장면을 볼 때 흐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사들이 그분의 손과 발에 못질을 하려고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내 가슴도 조각나는 듯했다. 그런 광경은 마음이 굳어버린 사람이 아닌 이상, 감정 없이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더 비통한 장면이 있었을까?


나는 그분이 겪은 상처가 어떠했을지를 다 추측할 수도 없었다. 또 내가 슬퍼하며 울어야 할 만큼 그분의 고통에 대해 눈물을 다 흘리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처럼 견디기 힘든 수난의 사건을 (일년에 한 번) 고난 주간의 금요일이면 기념하곤 하는 우리에게 그분은 어떻게 반응하실까? 2천 년 전 그날,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우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을 위해 울라.”


침묵이 감도는 장면


갈보리 언덕 위에서 벌어진 그 끔찍한 광경을 볼 때, 가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요소는 그 사건이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다는 점이다(히 12:2). 그분은 다름 아닌 공개 처형을 받는 수모를 겪으셨다. 보통 이 처형을 받는 죄수는 온몸이 벗겨졌다. 이에 시편 저자는 이렇게 예언한 바가 있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시 22:7-8). 그분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수치를 당하신 것이다.


그런데 조롱하는 소리만 예수님을 뒤따르지 않았다. 일단의 여인들이 그분을 쫓아가며, 그 죽어가시는 모습에 슬피 울었다. 오늘날 우리처럼, 그 여인들도 피를 흘리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바로 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신 예수님은, 계속되던 고문에 상하고 찢긴 얼굴을 그들에게 돌리시며, 자비로우면서도 충격적인 말씀을 남기신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그날 예수님은 자신에게 비방과 저주를 퍼붓던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큰 소리로 슬피 울며 동정한 자들을 돌아보시며 그들을 침묵하게 만드신 것이다. 그분은 더 이상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배웅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렇게 다른 이들의 슬픔을 거절하며, 어두운 새벽에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셨다.


나를 위해 울지 말라


그와 같이 2천 년 전 예수님은 여인들의 눈물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고, 또 (대중적인 생각과는 달리) 오늘날 우리의 눈물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당하신 고난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고민하게 만든다.


‘나를 위해 울지 말라’, 이는 과연 무슨 말씀일까?


‘나는 내 백성을 구원하고자 한다. 그러니 놀라지 말라. 나는 이 순간을 위해 기도했고, 이 잔을 허락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알고 있으니, 내가 내 잔을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 나의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있으므로(요 4:32, 34), 기꺼이 이 나무 형틀을 지고 가노라. 내 아버지의 뜻은 자비로워 이 백성을 위한 대속물로 나를 보내사 나의 생명을 바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너희를 위해 내 몸을 깨뜨리고 이 피를 쏟으리라(눅 22:19-20). 자기 친구를 위하여 생명을 내놓음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 너희가 받을 구원과 영원한 기쁨을 위해 당하는 이 고통을 바라보며 울지 말라(요 16:20-22).’


‘나를 위해 울지 말라’, 이는 과연 무슨 말씀일까?


‘나는 절망적인 희생자가 아니라, 내 뜻대로 수많은 천사를 부릴 수 있는 왕이므로(마 26:53), 한 마디에, 이 고난을 끝낼 수 있느니라. 한 마디에, 로마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느니라. 그리고 한 마디에, 모든 이들을 영원토록 심판할 수도 있느니라. 그러나 나는 세상을 심판함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노라(요 3:17).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나 군대라도 함부로 내게서 생명을 빼앗을 수 없음을 신뢰하라. 나는 내 생명을 스스로 내려놓고, 또 스스로 되찾으리라(요 10:11-18).’


‘나를 위해 울지 말라’, 이는 과연 무슨 말씀인가?


‘자, 이제 나는 승리하리라. 너희는 내 발꿈치가 상한 모습을 보고 슬퍼하지만, 믿음의 눈을 열어 뱀의 머리가 짓밟힌 광경을 보라(창 3:15). 나는 어린양처럼 걸어가나, 사자처럼 싸워 이기리라.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가 십자가에 있으리라(계 5:5-6). 나는 그 나무에 달린 후 온 우주를 다스릴 왕이니라. 바로 그 십자가를 통치의 지팡이로 삼으리라. 대적이 나를 들어 올릴 때, 나는 그를 던져 나의 발등상으로 두리라(시 110:1). 이렇게 승리의 입성을 하고 있으니, 왜 내가 영광 받을 시간에 너희는 우느냐(요 12:27-28).’


‘나를 위해 울지 말라’, 이는 과연 무슨 말씀인가?


‘내가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너희에게 말한(마 16:21; 17:22-23; 20:18-19) 그날이 다가오고 있느니라. 오늘은 비록 너희가 형언할 수 없는 어두움과 상상할 수 없는 아픔, 그리고 생각하지 못한 두려움이 가득할지라도, 나의 부활이 이루어지리라. 내 아버지가 잠시 나를 내주어, 저들은 나를 죽이고 제자들은 나를 떠나 도망쳤지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날이 다가오리라. 바로 그날의 기쁨이 내 앞에 있어 나로 하여금 이 고난을 견디게 하느니라(히 12:2). 곧 승리의 왕관이 나를 기다리며, 나를 영원히 기념하는 찬양이 내 앞에 있느니라. 피로 산 백성이 나를 기다리며, 영원한 영광이 나를 기다리노라. 그리고 내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기다리시니,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너희 자신을 위해 울라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여인들이 전혀 울지 못하게 하시기보다는 그 눈물의 대상을 바꾸셨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들의 죄 때문에 그들에게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메시아를 거절한 이스라엘이 그 진노를 받는 처지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눅 23:29-30).


‘너희 자신을 위해 울라’, 그렇다면 이는 과연 무슨 말씀인가?


‘나는 나의 잔을 받을 수 있어도, 너희는 그럴 수 없으리라. 로마는 네 자녀들을 네 눈 앞에서 죽이리라. 너희가 오늘 동조한 그 짐승(로마 제국)이 내일은 너희를 둘러싸서 엄습하리라. 그날 너희의 고통이 극심하리니 그 두려운 날을 위하여 너희의 눈물을 비축하라.’


‘너희 자신을 위해 울라’, 이는 과연 무슨 말씀인가?


‘나의 고통은 죽음과 함께 끝나지만, 너희의 고통은 그렇지 않으리라. 너희 중 많은 이들이 산들을 향하여 우리를 감추어 달라고 하겠으나, 로마의 심판이 아닌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자는 없으리라. 사냥개처럼 추적해 오는 그분의 공의는 죽음에서 멈출 수 없노라. 그분은 산 자와 죽은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행 10:42). 그러니 복수는 그분의 것이니라. 그분이 원수를 갚으시리라(히 10:30).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히 10:31).’


‘너희 자신을 위해 울라’, 이는 과연 무슨 말씀인가?


‘그렇기에 너희 자신을 위해 울라. 예루살렘의 딸들아, 죄로 인해서는 울지 않으면서 나를 위해 우는 일은 헛된 일이니라. 많은 이들이 나의 고통을 보며 울지만, 그 고통을 가져온 죄에 대해서는 슬퍼하지 않노라. 너희는 내 백성을 위해 내가 그들의 죄를 끌어안고 그들이 받아야 할 진노를 받는 두려운 광경을 보고 있으니, 이는 내 백성이 나의 의를 얻게 하기 위한 일이니라(고후 5:21). 만일 너희가 운다면, 내 손과 발에 못을 더 깊이 박아 넣게 만든 너희의 탐욕과, 이마에 가시관을 찔러 넣게 만든 너희의 거짓과, 내 몸에 상처를 날카롭게 낸 너희의 비겁함과, 결국 나로 하여금 갈보리 언덕에 오르게 만든 너희의 교만함에 대해 울어야 하리라.’


나의 죄가 그렇게 했다


나는 4년 동안 해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았다. 볼 때마다 감동이 있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시절에 나는 진정으로 거듭난 크리스천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내 자신이 그 영화를 보며 울기 때문에 스스로를 괜찮은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그 눈물이 나의 집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지면 내 죄에 대한 심판이 넘어가기라도 하듯이 착각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고통을 보며 우는 일에는 거듭난 마음이 꼭 필요하지 않았다(이 세상에는 그저 슬픈 일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비신자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내가 거의 슬퍼하지 않았던 죄에 대해 비통하게 가슴을 치며 우는 일에는 거듭난 마음이 필요했다(약 4:8-10).


예수님이 당하신 공개 처형을 2천 년 전에 목격한 자들은 그들의 죄가 십자가에 함께 못박혔음을 보지 못했다.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사 53:8). 바로 거기에서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들은 순진한 구경꾼과 같이 단지 그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십자가 사건의 의미와 눈부신 영광을 보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울고 또 울었지만,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진정으로 ‘그 뜻이 다 이루어지기까지, 내 죄가 그분을 거기 매달았네’라고 고백할 수 없다면, 그 수난을 바라보며 우리가 쏟는 눈물은 헛될 뿐이다.


그렇다. 참으로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서 울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동정심으로 울어서는 안 된다. 믿음을 가지고 울어야 한다. 그럴 때 흘리는 눈물은, 부활절이 지난 후에도 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 눈물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나의 죄를 슬퍼할 때 흘리는 눈물이다. 그 눈물은, 나를 위한 싸움에서 승리한 왕을 찬양할 때 흘리는 눈물이다. 그리고 그 눈물은, 나를 위한 그 죽음을 영원히 기념하며 흘리는 눈물이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It Was My Sin That Held Him There: Weeping At the Foot of the Cross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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