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
by Scott Hubbard2019-04-02

하나님이 주신 아름답고 순수한 좋은 선물이 점차 행복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조건이 되어 갈 때, 그 선물은 우리의 신앙에 무엇보다도 위협이 된다.


존 파이퍼는 “가장 치명적인 욕구는 사악한 독이 아니라 세상의 단순한 즐거움이다. 왜냐하면 이 즐거움이 하나님을 대신할 때, 그 우상은 거의 인식하기 어렵고 치유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물론, “세상의 단순한 즐거움”은 좋은 것이다. 만족스러운 직업, 건강한 신체, 최고의 친구, 행복한 결혼 생활,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좋은 것들은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온다. 그리고, 그 모든 좋은 것들은 하늘과 궁창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약 1:17; 시 19:1).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신다]”(딤전 6:17)라고 바울이 말했을 때, 그 말은 정말로 ‘즐기라’는 의미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다를 선물로 주셔서 수영을 즐기게 하신다.


하지만 세상의 쾌락은 죄인에게는 전혀 안전하지 않다.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집에서 풍성한 잔치에 취하여 거기가 하나님의 집인지를 잊어버린다. 우리는 먹고 또 먹으며 점차 주인을 잊게 된다. 우리의 눈은 하늘에서 땅으로 낮아진다. 영적 감각이 무뎌진다. “[다른]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기 시작한다]”(막 4:19).


이러한 순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셨듯이, 우리를 다루기 위해서도 우리를 광야로 내보내신다. 광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려는 혹독한 자비의 표현이다.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애굽 전역에 그분의 팔을 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하신 이래로 40년이 지났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뒤에 두고 요단강 앞에 서 있었다. 광야의 만나 대신 가나안의 우유와 꿀을 맞보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모세는 그들에게 만나에 대한 가르침을 강조한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떡은 이 땅의 단순한 쾌락 중 하나이며,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기 위하여]”(시 104:15)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도록 하나님은 양식을 주셨다가 다시 거두어 가셨다. 심오하고 풍성한 참 생명은 떡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다른 선물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생명력은 금보다 더 좋고, 꿀보다 더 달며, 가나안의 가장 좋은 곡식보다 더 영양가가 높다(시 19:10).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양손에 양식을 가득 들고 서서 “내가 풍부에 처할 줄 안다”라고 말하려면, 먼저 광야를 통과해야 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나는 비천에 처할 줄 안다”(빌 4:12)라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그들은 사막 주변을 돌아보며, 공급해 주시고 또 가져가시는 분에게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법을 배워야 했다.


광야는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종종 선물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것을 바르게 다루는 법을 가르치신다. 적어도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


첫째, 광야는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의 모든 아름다운 산과 숲에 그들의 마음을 빼앗긴 반면, 현재 우리는 우리 내면에 우상을 숨겨 두어 자라나게 한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에 빼앗기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속이면서 하나님께 겉치레로만 순종하기 매우 쉽다. 거의 알아볼 수 없고 거의 치료할 수 없도록 은밀하게 결혼, 친구, 직업 등에 우리의 마음을 온통 빼앗기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두 손을 들고 “할렐루야! 내가 가진 것은 그리스도뿐입니다!”라고 찬양할 수 있다.

 

황량한 하늘 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모래 위에 그냥 앉아있을 수밖에 없는 광야에서 우리의 우상은 자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깨진 친구 관계, 장기간의 독신 생활, 공허로 가득한 직장 생활의 잔해 속에 있을 때, 우리의 내면에서 무엇이 나올까? 사라 그로브즈(Sara Groves)가 표현했듯이, 어떤 이들은 애굽을 그리워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이전의 삶을 이상화하고 그리워하며, 그 삶이 하나님 없이 살던 시간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현재의 삶을 몹시 슬퍼한다(민 11:4-6). 또 다른 이들은 그 고통을 가볍게 하려는 시도로 성적 죄를 짓거나 다른 쾌락을 향하여 달려간다(민 25:1).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셨던 선물을 다시 거두어 가신 하나님을 원망한다(출 15:24).


암은 때가 되지 않으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 자리하고 있던 부위를 드러내고 나면 다른 숨을 곳을 찾는다.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의 우상을 평평한 대지에 놓으시고, 우리가 그것을 보고 증오하여 사막의 무덤에 파묻게 하신다.


광야는 영혼의 갈급함을 발견하게 한다


둘째, 광야는 살아 있는 신앙에 유익한 자질인 절실함을 키워준다. 우리가 계속 편안한 상태에 있으면, 우리 대부분은 이리저리 방황한다. 더 자고 싶어지며, 성경을 읽고 기도할 시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마치 우리는 죄가 더 이상 문 앞에 쭈그려 앉아 있지 않고 사탄이 어슬렁거리기를 멈춘 것처럼 산다. 우리는 잃어서는 안 되는 우리의 영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하지만 삶의 황무지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절실함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 속에 있도록 놔두지 않는다. 하나님을 찾도록 우리 영혼을 뒤흔든다. 다윗처럼 말씀 앞에 나아오게 한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시 13:3). 오직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올려드리지 않고는 한 시간도 그냥 보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결국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시는 위대한 분과 교제를 나누게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며, 고통받는 자의 외침을 들으신다는 사실을 실제적으로 경험하신 분이다. 하나님 없는 약속된 땅에 비해, 하나님으로 채워진 광야가 천국임을 알고 계신 예수님과 우리는 교제를 나누게 된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진정한 목적에 맞게 사용하도록 더 잘 준비될 것이다. 그 선물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기쁨이 되게 하며, 그것으로 그분을 대치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광야에서 단련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물을 오용하지 않으면서 즐긴다. 그에 소망을 두지 않으면서 기뻐한다. 그 안에서 하나님을 잊지 않으며 하나님의 복을 구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가장 원하는 선물을 하나님이 결코 주지 않으실지라도, 즉 광야가 평생 가더라도, 영원히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광야에서 기념비가 되도록 애쓸 것인데, 그것은 풍요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겨진 기념비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3).


광야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만일 당신이 건조한 황무지에 있다면, 우유와 꿀을 끊고, 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애통해하고 슬퍼하고 눈물을 흘려라. 그리고 그 길이 우리를 광야로 통과하게 하더라도, 주님의 능력 아래에서 투덜거리지 말라.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시 25:10). 여호와의 인자와 진리가 당신을 여기로 인도했으며, 결코 당신을 떠나지도 저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굶주리게 하려고 광야로 데려가시지 않는다. 그분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주기 위해 당신을 광야로 데리고 가신다. 다른 풍요의 땅에서 당신의 삶, 소망, 기쁨을 찾지 말라. 오직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 안에서 찾으라. 그리스도만이 당신의 삶, 쾌락, 우유와 꿀, 그리고 당신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이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God Awakens Us in the Wilderness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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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cott Hubbard

스콧 허바드는 Desiring God의 에디터, All Peoples Church의 목사이다. Bethlehem College & Seminary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