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에 들린 하나님의 말씀
by R. C. Sproul2019-03-26

수년 전에 할머니는 자신이 어린 소녀였던 1880년대에 하던 여러 가지 게임을 내게 알려 주셨다. 그중 하나가 할머니와 감리교 신자였던 할머니 친구, 그리고 로마 가톨릭 친구들이 함께 즐기던 게임이었다. 가톨릭 미사에 대한 장난스런 농담과 함께 할머니는 “토미와 조니가 강을 따라 도미노 게임을 하러 갔다”라고 말하곤 했다. 도미네(역주: 주님을 뜻하는 라틴어)라는, 가톨릭 미사에 아주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빗대어 도미노라는 단어를 쓰던 놀이였다. 당시 가톨릭 미사에서는 라틴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미사에 참석하는 아이들도 거기서 쓰는 단어를 알 턱이 없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술사가 어떤 마술을 부릴 때면 꼭 쓰는 주문에 대해 알고 있다. “아브라카다브라”, “프레스토 창고” 등과 같은 주문을 외우면서 마술을 하는데, 특히 유명한 주문은 “호커스 포커스”이다. 오늘날에도 이 주문은 마술을 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말 그대로 가장 유명한 마술사의 주문인데, 이 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이 말은 로마 가톨릭 미사에서 쓰는 말을 잘못 이해해서 차용한 것이다. 이 말은 원래 고대 라틴어로 암송되는, 다음과 같이 반복되는 구절이었다. “혹 에스트 코퍼스 메움.” 이 말은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라틴어 구절인데, “이것은 나의 몸이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성찬식에서 먹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빵과 와인이 가진 기적의 요소를 담은 이 구절이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들의 귀에는 우스꽝스럽게도, “호커스 포커스”로 들린 것이다. 이런 예상치 못한 파생은 사람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로 미사를 인도할 때 생기는 당연한 결과이다.


모든 미사를 오직 고대 라틴어로만 진행해야 한다는 중세 시대 교회의 신념은 확고했다. 라틴어는 오로지 교육받은 사람, 그것도 주로 성직자들만 이해하는 언어였고, 일반 신자에게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9세기에 이르러서야, 미사의 언어를 라틴어에 국한함으로써 일반 신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외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성경 말씀은 말 그대로 교회 목회자에게 한정되었고, 그럼으로써 말씀은 언어에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 신자들의 손에까지 결코 이를 수 없었다. 성경을 읽고 스스로 해석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구나 이해하는 언어로 성경을 읽는 일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무려 수세기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이 이단 시비와 박해의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16세기 종교개혁을 앞두고 영어를 쓰는 사람들 중에서 틴데일과 위클리프가 교회 검열에 걸렸는데, 이들이 감히 성경을 라틴어 외의 언어로 번역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1521년, 마틴 루터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면전에서 자신이 쓴 글을 철회하기를 거부하고 전체 의회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그를 정죄하기 위해 소집되었던 보름스 의회는 극적으로 종료되었다. “성경의 증거와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 나의 유죄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말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 아멘.” 루터의 단호한 대답에 의회는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지만, 루터의 친구들은 납치를 가장해서 루터를 보름스에서 빼돌렸고, 아이제나흐 근처에 있는 발트부르크 성에 비밀리에 피신시켰다. 거기서 사제로 변장한 루터는 일 년에 걸쳐 평생의 사명인, 신약성경을 원문 그리스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완성했다. 성경을 보통 사람들이 쓰는 언어로 번역한 작업이야말로, 루터가 교회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공헌 중 하나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러나 그 결과가 반드시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학자인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는 고대 언어에 정통하기로 유명했는데, 그의 지론은 “본질로 돌아가자(ad fontes)”였다. 그런 그였기에 루터가 성경을 누구나 다 아는 모국어로 번역한 일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수준의 문헌학자라는 점에서 루터를 존경했지만, 에라스무스는 루터가 감히 교회에 반대하면서까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것을 질타했다. 만약에 성경이 공용어로 번역되어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건 “온갖 죄악의 범람을 막고 있던 문을 열어버리는 셈”이 될 것이라며 에라스무스는 루터에게 충고했다.


에라스무스는 자신의 언어로 된 성경을 쥐어주게 되면 마치 찰흙으로 코 모양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말씀을 마구 왜곡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그건 누구라도 자기 뜻에 맞게 말씀을 마구 해석해도 된다는 면허증을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루터도 이 점에 동의했다. 미숙한 사람이 자기 말로 된 성경을 읽게 되면 많은 악행이 일어날 것이라고, 자신의 이단 사상을 정당화하는 데까지 말씀을 악용할 여지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루터는 성경의 명확함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즉 구원에 대한 핵심 메시지가 너무도 분명해서 어린아이라도 제대로 읽으면 단숨에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경이 전달하는 구원의 메시지가 너무도 중요하기에 누구나 스스로 읽고 구원의 기회를 잡는 것은 가치가 있으며, 비록 거기에 부작용이 있을 수는 있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루터는 확신했다. 그는 에라스무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온갖 죄악의 범람을 막고 있던 문이 꼭 열려야 한다면, 열리는 것이다.”


성경을 공용어로 번역하게 되면서, 사적인 해석에 관한 기본 원리가 생겼다. 16세기 중엽에 트리엔트 공의회 제4차 회의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는 사적인 해석 원칙을 정죄했다.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 이후로 성경은 수천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에라스무스의 예언적 우려는 사실상 현실화되었는데,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수많은 교단은 다 스스로를 성경적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구원의 복음은 전 세계로 알려졌다. 사적인 해석이 사적인 왜곡을 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스스로 성경을 해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그 무엇보다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엄중한 책임 의식,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he Word of God in the Hands of Man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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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 C. Sproul

R. C. 스프로울 박사는 Ligonier Ministries를 설립했으며, 플로리다 주 샌포드 시에 위치한 Saint Andrew’s Chapel의 창립목사로, Roformation Bible College의 초대총장으로 봉직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의 거룩성’(The Holiness of God)을 비롯하여 백여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