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사람을 회피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아니다
by Maria Baer2019-03-27

“내 행복을 빼앗아 가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먼 발치를 바라보며 깔끔한 정장을 입은 젊은 여성이 이야기한다. SNS상에서 수천 번 공유된 이 밈(meme,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동영상이나 이미지 등)이 추구하는 가치관은 이렇다. “당신은 늘 행복할 자격이 있으니 그렇게 되도록 하라.”


대하기 어려운 친구나 이웃, 동료를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인연을 끊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게다가 그렇게 하면, 어려운 사람을 차단한 ‘용감한’ 사람이란 평을 듣게 될 테니 일석이조이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그 사람이 단순히 특이하거나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이라면, 이 유명한 밈은 우리를 죄와 어리석음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인생에서 무시해 버려야 할 대상이 단순히 우리를 실망시키는 사람들이라면, 글쎄, 우리도 종종 남을 실망시키지 않는가? 만약 친구가 내 죄를 진지하게 끄집어내려고 하는데 내가 불편함이나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 관계 또한 단절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특히 크리스천에게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은 각 지체이다. 그러니 소모임이나 예배당에서 나를 짜증나게 하거나 우울하게 하고, 혹 특이하거나 집착하는, 아니면 아예 대놓고 얄밉게 행동하는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 이 밈이 말하는 대로 하면 될까? 언제나 그렇듯, 성경은 더 나은 길을 제시해 준다.


첫 번째 처방: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은 크리스천 간의 관계에서는 도망치기보다 인내하라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 4:2)라고 했으며,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빌 2:4)라는 말씀을 남겼다.


또한 그는 고린도 교회에도 사랑에 대해 말했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다고 하며(고전 13:7), 이기적인 사람들을 경계하였다. 사랑은 항상 시무룩한 친구와 질타를 잘 하는 가족, 비관적인 동료를 참는 것이다. 반복적인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 우울한 사람, 게으른 사람을 기다려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이 밈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셈이다.


또한 사랑은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사 58:10)라고 말씀하시며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내어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니 당신을 피곤하게 한다고 그 사람을 내버리지 말라.


두 번째 처방: 서로 용서하라


우리는 죄를 짓고, 죄는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 찰스 스펄전은 저서에서 “크리스천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하는 모진 말과 무심한 행동이 우리의 마음과 관계에 무거운 결과를 남긴다. 다행히 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방법을 알려 주셨다. 용서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며, 한 가지 확실한 전제를 두신다. 그 전제는 바로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고 해서 바로 돌아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용서에 관한 명령은 가히 충격적이다. 마태복음 18장에서 베드로는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냐고 예수님께 질문한다. 이에 예수님은 한 치의 원한도 품을 수 없게 하는 충격적인 대답을 하신다(마18:22). 하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용서보다 훨씬, 훨씬 더 많이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와 같이 서로를 대해야 한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갈등을 빚는 크리스천이 어떻게 될지에 관해서도 말씀하신다. 의견대립으로 시작된 불편한 갈등은 다른 사람까지 연루되는 더욱 불편한 상황으로 번지고, 결국 교회 전체에 영향을 주어 거의 참을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극에 달하게 된다.


예수님의 극단적인 처방은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노력해 보지 않고 단절해 버리는 행위가 크리스천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세 번째 처방: 서로 환대하라


힘든 사람은 피하라고 권하는 문화 속에 담긴 세계관은 크리스천에게 경종을 울린다. 이런 밈은 우리를 항상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만 남을 때까지 인간 관계를 조정해 나가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비현실적인 뿐더러 비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기 전에 먼저 그를 우리의 인간 관계 속으로 환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서로를 실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이를 절친으로 삼거나 그들에게 무비판적으로 동일한 영향력을 주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라고 명령하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6-47).


즉, 이 밈은 설 자리가 없다.


생각해 볼 문제들


폭력적인 관계와 같이 피하거나 거리를 두고, 심지어는 완전히 단절해야만 하는 관계도 있을 수 있다. 성경에는 “악한 자의 길”을 피하여 그 길을 밟지 않도록 하라는 명령도 여러 부분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어느 말씀을 따라야 할까? 피하고 싶은 관계에서는 잠언 말씀을 따르고 싶고, 유지하고 싶은 관계에서는 고린도전후서 말씀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결정에는 상당한 무게가 따른다. 결단을 내리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자.


나는 이 결정을 내릴 만큼 나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가? 이 관계에서 느끼고 있는 어려움에 나의 책임은 전혀 없는가?


그 사람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면서는 도저히 죄 짓는 것을 피할 수 없는가?


그 사람을 보살피는 마음으로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이 관계 속에서 내가 먼저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받으려고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삼위일체 하나님은 관계의 하나님이시다. 비록 옛 관습이 되어가곤 있지만, 타인과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크리스천이 추구해야 할 삶의 근간이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다. 반대로 행동하게끔 우리를 유혹하는 밈을 주의하라.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Avoiding Difficult People Is Not Christlike Love 

번역: 박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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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aria Baer

마리아 베어는 프리랜서 작가로 Ohio University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팟캐스트 I Was There When에서 호스트와 프로듀서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