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고통으로 마음이 상한 자의 고백
by Russ Ramsey2019-04-19

몇 년 전에 심각한 병을 갖게 되었다. 바로 심장에 있는 승모판이 감염되어 심부전 초기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때 나는 의료진이 제시한 방안을 따르면서도 혹 회복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집을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그 후 2년 동안 겪게 된 모든 과정을 노트에 기록했다. 진단에서부터 심장 절개 수술과 회복과 재활을 거쳐 재입원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해 두었다.


인생에서 겪게 되는 이런 종류의 경험은, 그 전에는 질문하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물음을 불러일으킨다. 나 역시 수술을 한 후로 몇 달 간 씨름했던 한 가지 물음이 있었다. 바로 내가 느끼고 있던 분노에 관한 물음이었다. 화가 나는 일은 고통받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 분노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서 나타나기도 하고, 또는 본능적으로 거부해 온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항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내 자신의 분노와 씨름하면서 노트에 이렇게 기록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지 내 몸 안에서만이 아니라, 내 생각과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주목하는 것이다. 지금 내 안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분노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이는 고통에 대한 이유를 찾고자 하는 인간 본성에 일치하는 반응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원인(cause)이라면 몰라도, 이유(reason)가 늘 있을까? 글쎄, 나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고 확신하진 않는다. 우리는 슬픔의 여러 단계, 가령 고통을 부정하다가 이내 분노하고, 스스로를 설득하다가 다시 우울해 하며, 마침내는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이클을 겪는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의 진상을 따져보려고 하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과제에 직면한다. 그런데 나 역시도, 내 마음속에 있는 분노를 다루려면 그 과제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을 상하게 한 자


나는 그렇게 내 마음을 상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여전히 지속되는 이 고통을 나한테 주신 이유야 내가 다 모르지만,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그분의 손에서 비롯되었으며 결국은 나의 유익을 위해 허락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루실 때 그 마음을 깨뜨리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우리를 벼랑 끝으로 인도해 보이지 않는 지경으로 밀어 넣으실 때가 있다. 또 우리가 높이 쌓아 올린 탑을 무너뜨리기도 하신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던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하신다. 그래서 한때는 분명 옳게 여겨졌던 일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그처럼 나를 좌절시키는 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조금이라도 그분에게서 독립할 수 있다고 여기며 계획하는 모든 시도를 맹렬히 반대하시는 분이다. 오히려 그 뜨거운 사랑으로 나로 하여금 그분 자신을 더욱 의지하는 자세를 취하게 만드신다. 그리하여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그분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악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신다.


물론 나도 좌절하는 일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아무 어려움 없이 그저 좋은 일만 일어날 수 있을까? ‘얼른 회복하여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내면의 음성은 이렇게 상한 몸으로 살아갈 때만 경험할 수 있는 은혜를 알지 못하는 목소리이다.


그렇다면, 왜 내가 경험하는 이 상태를 은혜라고 부를까? 이유인즉, 내가 누리던 안정감이 혹 계속되었다면, 나는 내 인생의 다음 단계에 대해 고민해 보기도 전에 현재의 편한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향해 남은 여정을 계획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 그런 여정은 예측할 수 없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간혹 인생의 폭풍이 지나가며 우리가 붙들고 있는 지식을 흩어 놓고 밑바닥까지 낮추지 않는 이상, 진정한 성장과 변화에 대해 고민하는 일은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만일 내 스스로 이 여정을 계획했다면, 나는 내 자신이 처음부터 바라고 있던 경험만을 기대하며 이 여정을 제한시키고 말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놀라움이나 궁금함, 또는 신뢰함도 자리할 수 없다. 단지 현재 내 자신이 가정하는 미래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는 일만 내게 필요한 전부가 된다. 그 길은 믿음의 여정이 아니라 통제의 여정이기에, 결국은 헛고생으로 마치는 길이 된다. 믿음은 내가 볼 수 있는 대상 너머에 선한 세계가 있으며, 이는 하나님 자신이 드러내지 않으시면 추구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세계임을 신뢰하는 자세이다. 나는 그 영광스러운 세계를 보기 원한다.


그처럼 나는 하나님이 펼치시는 여정을 걷기 원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통제하는 여정을 멈춰야 했다. 오히려 상한 마음이 필요했다. 고통 속에 처할 필요가 있었다. 왜 그럴까? 나는 내 인생을 결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악의를 가지고 자녀를 낮추시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안에 있는 열망을 일깨우려고 그렇게 하신다. 마치 허기진 고통이 독수리로 하여금 날개를 펴고 비상하려는 열망을 일깨우듯이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 세상을 달리 보게 하기 위해 고통을 주신다. 또 우리가 가던 길을 멈추고 새로운 길을 걷도록 하기 위해 고통을 주신다. 결국 그분이 우리에게 약함을 허락하시는 목적은 우리 자신의 강함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혹독한 자비


하나님의 신적 지혜는 지상에 있는 피조물이 헤아릴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는 인생의 폭풍이 지나간 후에 일어난 변화를 살펴보지만 그조차 다 이해할 수 없다. 다만 그 변화가 갱신의 길을 걷도록 우리를 이끌 뿐이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 자신이 그 길 위에 있음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 길을 걷고 있을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내 심장에 있는 박테리아조차, 어쩌면 하나님이 그 자녀에게 허락하신, 즉 그분 자신의 지혜와 사랑이 깃든 은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은혜가 바로 C. S. 루이스가 하나님의 ‘혹독한 자비’(severe mercy)라고 표현했던 그런 선물일지도 모른다. 자기 만족감으로 채워진 나의 인생을 쳐서 이 마음을 그분에게로 돌리려는 사랑의 행위 말이다.


정말 나의 고통이 하나님을 향한 내 안의 갈망을 일깨우려는 혹독한 자비라고 한다면, 이는 그분의 손길에서 주어진 지혜로운 선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선물에 뒤따르는 분노로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오직 그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알아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내가 깨닫게 되는 바가 있다. 곧 내가 처음부터 가지게 된 분노의 불꽃은 내 마음이 깨어나며 이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다고 외치는 소리와 같았다는 것이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퉁명스럽게 굴듯이 말이다.


결국 내가 경험하는 이 분노는 이전에 내가 알았던 인생과 갑자기 단절된 데서 찾아오는 새로운 느낌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적인 자기 본능과 같다고 할까? 마치 갈기가 다 깎여 버린 사자가 여전히 크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몸부림치는 반응과 같다. 이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내 안의 분노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나는 이 분노에 주목해야 하고, 그에 관해 질문해야 하며, 그 감정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는 사과해야 한다. 그렇게 나의 분노는 마음속에 있는 상처를 드러내고 있는데, 나는 이 상처가 언제 즘이면 아물지 잘 모른다.


비록 이 분노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곧 나의 분노는 다름 아닌 고통에 대한 항변이라는 것이다. 아픔으로부터 자유로운 인생을 향한 신음이다. 괴롬과 죽음이 그치게 될 날을 향한 쓰라린 열망인 것이다.


나는 반드시 그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물론 그때까지는 이 감정이 사자처럼 일어나 나를 삼켜버리지 않도록 늘 예의 주시하고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The God Who Broke My Heart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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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uss Ramsey

러스 렘지는 테네시주 네슈빌에 위치한 Christ Presbyterian Church의 목사로 Taylor University and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MDiv, ThM)를 졸업했다. 저서로 The Retelling the Story Series와 Struck: One Christian’s Reflections on Encountering Death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