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를 위해 떠나야 하는 네 가지 이유
by Andrew Knight2019-04-18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에 관하여 들어보았는가? 그 선교사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하려고 집, 가족, 모든 익숙한 것을 떠났다. 그는 새 문화를 이해하려 했고, 여러 방식으로 복음을 상황화 했다. 그는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사랑했다. 그는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을 추구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곳의 사람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그가 구하러 온 사람들의 손에서 순교를 당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그의 선교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그의 죽음은 그의 메시지를 더 멀리 퍼지게 했다. 그에 관한 책이 저술되었다. 그에 관한 증거들이 공유되었다. 그의 명성은 여러 민족과 국가와 대륙에 알려졌다. 


그의 선교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지 마지막 장면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가장 큰 선교 단체를 세상에 출범시켰다. 그의 유언은 오늘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귀에도 여전히 울린다. “가서 제자를 삼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위대한 선교사였다. 왜냐하면 그분은 온 백성들을 구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복음과 함께 온 세계에 전하기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일이 그분의 사명이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대리자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잠시 이 땅을 떠나셨고, 다시 오실 때까지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남기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마지막 명령을 받들어야 한다. 우리가 선교를 위해 예수님의 뒤를 따라야 하는 4 가지 이유가 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파송하기 위하여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교 사역을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반복해서 보내시지 않는다. 애초부터 그분의 계획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선교를 위해 보내려는 것이었다. 그분의 목적은 성령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에 그분의 아들의 신실함과 열정을 심어서, 그리스도 단체들 안에서 아들의 선교적 삶이 계속 반복적으로 번져가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 때,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분이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 4:19)고 했을 때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파송하는 일과 사람을 낚는 일을 진지하게 여기셨다. 그분의 뜻은 전혀 뜬구름 같은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크리스천의 마음에 명백하고 권위 있게 지금도 울리고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제자 삼는 자로 만들려고 하신다.

 

성화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순종의 삶이라면, 선교는 그리스도가 행하신 사역을 따라 행하는 삶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성화는 선교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야 하며, 이에 우리의 삶을 다하기를 소망해야 한다. 당신이 어떤 모양과 형태 및 방식으로든 어디든지 믿지 않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 한, 당신은 성장하거나 신실해지거나 성화될 수 없다. 선교지는 아닐 수 있지만 당신은 분명히 어디든지 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아마도 하나님이 우리를 해외로 가라고 부르시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일 어느 쪽도 아니라면 어디일까.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부터 물려받은 한 가지 사명을 나눠가지고 있다. 


2. 복음의 능력이 사람들을 구원하기 때문이다


복음의 구원하는 능력은 선교에 대한 나의 이해를 여러 차례 완전히 변화시켰다. 내가 바울처럼 나를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로 볼수록, 복음의 능력은 더욱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 내 죄가 흉측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다른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새롭고 더 깊은 소망을 내게 주었다. 이제 하늘에 소망을 두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수님이 나도 구원하셨다면, 누구든지 구원하실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들은 자신이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였음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구원받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렇게 큰 소망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려는 이유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죽은 자를 살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비교해 보면, 홍해를 가름과 애굽의 모든 재앙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무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만드실 수 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심으로 죄악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이미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능력은 위대하여 전 세계에서 복음을 통해 매일 수많은 사역을 하심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복음은 무한히 구원하시는 자비의 능력이다. 복음은 이를 위한 것이다. 복음이 하는 일이 그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이 복음을 통해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믿는가? 복음을 전할 용기가 없다면, 거울 속을 다시 들여다 보라. 하나님이 복음 사역으로 이미 구원하신 사람을 발견할 것이다.


3. 우리가 복음을 전하도록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복음의 좋은 소식 자체는 명백히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잃어버린 사람들이 복음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확실히 어떤 사람들은 사탄에 의해 복음의 진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고후 4:4).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복음을 믿을 수 있겠는가(롬 10:14)? 따라서 어떤 면에서 우리가 문제다. 우리가 아직 그들에게 복음을 들고 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것이 나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도록)”(고후 5:15) 내 마음에 변화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나는 오직 나만을 위해 살고, 나 만을 생각하며, 나만을 위해 행할 것이다. 그것은 소름끼치는 일이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의 옛사람을 싫어하게 한다.


복음은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여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게 한다. 물론, 나는 이런 저런 정서적 고통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이제 지옥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해결함 받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매일 많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을뿐 아니라 영원한 형벌의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 지옥은 그들의 미래다. 복음이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선교하러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복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했으니 우리는 반드시 가야하며,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세상 끝까지 가야한다.


4. 너무 적은 사람들이 선교를 위해 떠나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에게 화판이나 색칠하기 그림책을 주려고 하는가?”


이 비유는 여러해 동안 내가 지상명령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시험했다. 내가 하나님께 속했는가 아니면 그분이 내게 속했는가? “제가 당신의 길에 동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내 사인을 넣은 빈 화판을 들고 하나님께 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미리 결정한 계획표를 가지고 하나님께 갈 것인가? 나는 그동안 하나님이 그림의 색만 결정하게 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께 윤곽이 그려진 그림을 드리고 하나님이 그 윤관 안에만 색을 칠하게 해왔다.


우리는 세계 선교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다(2% 미만이 복음적 크리스천이다).


유럽의 33%, 러시아의 50%, 중국의 80%, 그리고 동남아시아 일부의 90%가 복음 미접촉지역이며, 대부분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개인이나 단체와도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복음 사역자가 없다).


2,200 종족들이 그들 자신의 언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위기는 복음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나가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 복음은 부족하지 않지만 우리가 그것을 전파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추수할 것은 많다”(마 9:37)고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다. 그분은 구원하시려고 한다. 그분은 모든 종족으로 백성을 삼으신다(계 5:9-10, 행 18:9-10). 하지만 나가서 대변할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사역을 시작하셨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계속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추수할 것은 많지만 추수하러 나갈 사람이 너무 적다. 예수님은 소망이 절실하게 필요한 불쌍한 사람들을 보시고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 9:37-38)고 하셨다. 복음을 들고 추수하러 가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이는 추수의 주인이시다. 그분이 우리에 앞서 나가시고 가장 중요한 사역인 마음 사역을 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단지 가서 전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신다. 당신의 삶은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일 수 있다. 당신이 추수하러 떠날 자일 수 있다.

 

나는 2015년 7월에 선교를 위해 떠났다. 나는 지금 세속화된 후기 기독교 시대 유럽에서 살며 선교하고 있다. 아무도 나에게 가라고 하지 않았지만, 기도를 통해 나는 추수하러 떠나는 자가 되었다. 집을 떠나서 해외에서 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열방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시작하지 말라. 만일 기도하고 있다면, 당신도 곧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선교사들은 그분의 믿음의 선물과 용기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속에서 살아가는 놀라운 기쁨을 경험해보았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해외로 나가라고 부르시지는 않지만, 선교를 떠나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으며, 그 백성에게 가는 길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고유한 은혜가 있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Four Reasons Why We Leave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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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Andrew Knight

엔드류 나이트는 아이다호주 보이스에 위치한 Table Rock Church에서 캠퍼스 사역을 맡고 있으며, 15년간 전도, 제자훈련, 그리고 단기선교를 이끌었다. 대표저서로 'Window to the World'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