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은 성애의 아름다움
by Philip Ryken2019-04-12

많은 크리스천은 성생활과 관련해서 성경이 말하는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데 대해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모르는 것은 하나님이 성생활과 관련해서 이러저러한 명령을 내리신 이유이다. 그리고 그 명령을 통해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축복하고 싶어하시는지에 대해서도, 또한 그 명령 속에 숨은 아름다움에 관해서도 모르고 있다.


인간의 성애(sexuality)에 관해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계획을 잘 이해할수록 우리는 사소한 성적 만족, 결국은 영적 구속으로 이어지는 그런 종류의 만족에 머물지 않게 된다.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에 압도되어 자신의 성애를 예수 그리스도 앞에 굴복시키고, 그 결과 영적인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


영광스런 이야기의 일부


결혼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성생활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또 결혼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계획의 일부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 결혼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분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결혼을 만드셨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되는 것과 관련한 명확한 지침을 내린 후, 지금 자신이 쓴 글이 단순히 인간 사이의 결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2). 결혼이라는 선물은 굳이 예수님과 결혼하지 않고도 예수님과의 개인적, 공동체적, 그리고 언약적인 관계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하여 주어졌다.


아름다운 신부와의 블라인드 데이트


우리는 이 주제를 에베소서 5장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창세기 속 블라인드 데이트이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첫 번째 여자 하와를 첫 번째 남자 아담에게 소개하고 그들에게 하나의 육체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등장한다(창 2:24).

 

이 이야기는 모든 결혼을 마무리하는 요한계시록의 결혼식에서 끝이 난다. 그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계 21:2)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계 19:8)을 입은 가장 아름다운 신부로 묘사되고, 최고의 결혼 피로연이 진행된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예수)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우리들)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계 19:7). 이 성경의 이야기는 우리가 이처럼 아름답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과 하와의 블라인드 데이트와 이 결혼식의 사이, 그러니까 창세기와 요한계시록 사이에서 성경은 결혼이라는 맥락에 비추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정한다. 예를 들어 선지자 이사야는 '창조주'가 곧 우리의 '남편'(이사야 54:5)이라고 말한다. 또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너무 독점적이어서 크리스천은 그와 영적으로 '약혼'했다고도 표현한다(고후 11:2).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때, 이는 다름 아닌 영적 간음이라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저질렀던 죄가 그 정확한 예이다(렘 3:20; 겔 16:30). 그러나 영적 간음을 저질렀더라도 우리는 곧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또 찬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우리는 얼마든지 다시 하나님의 순결한 신부가 되기 때문이다(렘 31:4). 이런 사실은 칭의가 얼마나 완전한지를 보여준다. 흠 잡을 데 없이 하얀 웨딩 드레스처럼 우리는 다시 순수하고 깨끗해질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성경은 우리 영혼이 주님과 무슨 관계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결혼이라는 사례를 보여 준다. 인간 관계에서 남편과 아내가 나누는 사랑의 언약만큼 강한 결속은 없다. 따라서 성경은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은유적으로 결혼을 사용하고 있다. 아가서의 사랑 노래도 이러한 목적의 한 부분이다.


언약을 확고하게


성생활은 결혼의 유대를 확고하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므로 성적 친밀감은 ‘언약을 확고하게 하는 것’, 즉 거룩한 헌신에 필요한 육체적인 결합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성생활에는 인류의 확장이라는 다른 목적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적 연합의 상징으로서의 결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신다. 이에 따라 하나님은 그와 그 백성 사이의 성스러운 맹세를 더 확고하게 하기 위한 영적 방편으로 성적 친밀감을 고안하셨는데 이는 바로 남편과 아내가 하나 되는 방법, 즉 육체가 말 그대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적 행위를 항상 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사도 바울도 남편과 아내에게 성 생활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그들의 기도 생활을 함께 언급했고(고전 7:5), 또 음란에 대한 경고를 성령에 관한 교리와 연결시켜(고전 6:15-17) 성 행위가 가진 신비함을 명확하게 규정했다. 성 행위-우리가 성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행위 또는 하지 않는 행위–야말로 가장 영적인 영역이다. 


주어진 그러나 함부로 취해서는 안 되는


성생활과 모든 성애(sexuality)의 본질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리고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바로 이 점이 하나님이 성 속에 심은 아름다움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한 마디로 그분이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그게 무엇이 되더라도 항상 사심 없는 마음과 희생으로 드러나야 한다. 다시 말해, 성에 대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것, 그리고 다른 이를 위한 것으로 이해하기 전까지 우리는 결코 성이 가진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한다.


불행히도 우리의 대부분은 베풀기보다는 받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성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빼앗는 방법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 여기서 빼앗는 것이란 상대의 동의없이 성적으로 접촉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음란물을 접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빼앗는 것이다. 음란 산업에 의해 착취당하는 여성과 남성, 애정과 순결이 사라진 나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는 내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내 미래의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빼앗는 것이다. 무언가를 빼앗을 때 초래하는 피해가 얼마나 크던가.


내려놓은 성애


성애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맡기고 또 모든 성행위를 하나님께 드린 후, 그 분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보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내어주는 길을 시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리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돌려주실 것이다. 


자신의 성애를 하나님 앞에 내려 놓을 때 우리는 영적 능력으로 드러나는 놀라운 아름다움과 순결함을 보게 된다. 바로 주 예수님의 생애에서 이 사실을 똑똑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모든 면에서 유혹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히 4:15). 그리고 그 유혹에는 아마 다양한 성적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에 육체와 피를 지녔던 예수님은 자신의 성애를 온전히 하나님께 복종시키셨다. 이것은 아버지의 뜻을 향한 완전한 섬김의 일부였다. 예수님은 지상 사역의 일환으로 결혼 대신 순결과 고결함을 소유한 독신의 부름을 받으셨다. 


우리는 예수님과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모든 여자는 완전하게 안전했다. 부자든 가난하든, 주부든 창녀든, 사마리아인이나 유대인이나 관계없이 모든 여성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왔고 그분 안에서 안전함을 누렸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성애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셨기에 그 분을 신뢰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을 위해 삶을 헌신하고자 하나님께 자신의 성애까지 바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도 있다. 내 사역의 멘토였던 윌리엄 스틸(William Still)도 그러한 사람이다. 스코틀랜드 애버딘 도심에서 한 교회를 무려 50년 이상 섬긴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교인들과 매우 친밀한 우정을 누렸다. 콩고의 의료 선교사인 헬렌 로저베어(Helen Roseveare), 세계 교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국의 설교자이자 학자인 존 스토트 (John Stott), 또 중국 남침례교 선교사인 로티 문(Lottie Moon)과 같은 사람들도 떠오른다. 예수님께 한결같은 마음으로 헌심함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연합이 가지는 영속하는 실재에 대한 살아있는 증인이 되었다.


자유와 아름다움


성애까지 내려놓는 섬김이 단지 독신일 때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빌리 그레이엄과 루스 부부, 짐 엘리엇과 엘리자베스 부부, 존 퍼킨스와 베라 매이 부부와 같이 일생 동안 주님께 헌신한 특별한 기독교 지도자들의 사역에는 다름 아닌 순결에 대한 헌신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이 스스로에게 속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상대에게 내어준 바 되었음(고전 7:4)을 약속하는 결혼 언약을 충실히 지키며, 자신들의 성애를 하나님께 맡긴 자들이다.


성적 순결에 대해 부정적인 것을 해서는 안되는 측면으로만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건 순결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근본적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물론 불경스러운 것을 향해서는 ‘No’ 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Yes’라고 말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다. 그리고 성적 순결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목적을 향해서 ‘Yes’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만을 위한 성관계를 가질수록 더 많은 속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성애를 바칠 때, 우리는 더 많은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더 많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된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The Beauty of Surrendered Sexuality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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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Philip Ryken

필립 라이큰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MDiv)와 University of Oxford(PhD)에서 공부했으며, Wheaton College의 총장과 미국 TGC의 이사로 섬기고 있다. Loving the Way Jesus Loves를 비롯하여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