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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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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Amy DiMarcangelo  /  작성일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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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elissa Askew on Unsplash

누구나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를 좋아한다. 관심사도 비슷하고, 대화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신학적 방향성이 일치하여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이러한 친구는 오래 함께할 만한 소중한 선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단지 만남의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그 우정을 통하여 결코 거룩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다. 친구는 교회와 마찬가지로 친밀함 이상의 것을 추구하도록 부름 받은 공동체이다. 


만약 당신이 복음의 은혜에 온전히 사로잡혀 있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친구와의 우정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통로가 되도록 이끌 수 있다. 진실한 우정과 사랑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품은 관용과 구원의 은혜 및 화해의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그렇게 행할 때에 비크리스천 친구들은 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변화의 능력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러한 친구 관계, 즉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한 우정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1. 관대한 사랑을 베풀라

 

우리는 보통 비슷한 성격과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하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만 교제를 이룬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관대한 사랑을 증거할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반대의 경우를 상상해 보라. 십대 소년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 모임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그 모임의 다른 아이들이 그 에게 먼저 다가가서 따뜻하게 환영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한 부부가 자신들과 여러 마찰을 빚어 온 다른 부부에게 친구로서 따뜻한 호의를 베풀기 시작한다면 그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까? 또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서로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화합의 예배 드릴 수 있다면 그들 사이에 어떠한 만남이 이어질까? 이런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께 부름 받은 목적을 이루어 가는, 즉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함이 아니다. 주님은 다른 족속과 다른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을 백성으로 삼는 일에 우리를 쓰기 위하여 나와 당신을 구원하셨다(벧전 2:9-10). 공동체가 하나의 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요인은 비슷한 교육 수준이나 정치적 입장, 혹은 성격이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그분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그 은혜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갈 3:28). 나와 당신은 그리스도의 소유이며, 우리는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기 위해 부름 받은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요일 4:7). 물론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관대한 사랑을 보여줄 때, 그들은 예수님이 베푸시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고 또한 이를 통해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2. 구원의 은혜를 전하라


교회 안에서 누리는 크리스천 친구들과의 우정은 영적 보호벽과 같다. 우리는 매일 세상의 여러 유혹을 마주하면서도 자신이 범하는 죄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무감각을 흔들기 위하여 경건한 친구를 보내시고 또한 사용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고 거룩한 삶을 이루는 과정에서 서로 돌보고 격려하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홀로 그 싸움을 감당하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돌봄을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친구가 뼈아픈 조언을 할 때,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잠 27:6)이라는 말씀을 기억하자. 실제로 수년 동안 많은 친구들이 내게 이런 "아픈 책망"을 선사해 주었다. 친구들은 나의 이기적인 성향을 알게 하였고, 나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던 내 안의 ‘자기 의’를 혹독하게 꾸짖어 주었으며, 늘 불평하고 비판적이었던 나의 마음을 바로잡아 주었다. 어쩌면 이러한 나의 모습을 굳이 지적하기보다는 그저 지나치는 편이 쉬웠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내가 어떤 문제에 물들어 있는지를 정확하게 얘기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게도 그 조언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대신 분노를 보이곤 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포기하지 않는 "충직"을 통하여 성령님은 나의 연약함을 조금씩 치료해 주셨다. 그분은 친구들의 입을 통하여 나의 차갑고 날카로운 부분을 드러내고 이를 점차 고치셨으며, 그러한 도우심 안에서 나는 서서히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성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다.


갈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종종 ‘사랑 안에서 진실하게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즉 우리는 죄와 투쟁하는 친구에게 진실을 전하며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구원의 사랑을 보여 주기보다는, 갈등으로 인한 불편한 상황 자체를 피하려고 한다. 나 역시 친구에게 진실을 언급하기에 앞서 그의 반응이 두려운 나머지 말하기를 주저한 적이 있다. 교회를 향한 헌신과 사랑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던 친구에게 바람직한 조언을 하고 싶었지만, 그가 내게 화낼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여러 달 동안 그 상황을 못 본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친구의 영적 안녕보다는 내 개인의 관심사에 더 몰두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내가 더 이상 그 상태에 머물지 못하도록 도우셨다. 나는 주님의 이끄심에 힘입어, 먼저 그의 영적 침체를 모른 척 침묵한 나의 죄를 고백했다. 그리고 내가 우려하는 부분을 그 친구에게 진솔하게 전했다.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 그 친구는 겸손하고 차분한 태도로 나의 얘기를 경청해 주었고 우리는 깊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죄는 진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나와 당신을 옭아맨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 안에서 서로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주변의 친구들에게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진정한 구원의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하며, 또한 서로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 


3. 화목케 하는 능력을 보이라


우정이 깊어질수록 갈등을 겪을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예를 들어 가까운 친구가 영적 투쟁 중에 있더라도, 내가 감각이 무디어진 상태에서는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이를 간과할 수도 있다. 혹은 이를 알고서 진솔한 대화는 시도해 보지만, 그로 인해 친구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아랑곳없이 나의 의만 앞세우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또한 관계의 갈등 앞에서 적극적으로 화해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입을 다물고 씁쓸한 마음만 품는 경우도 많다.


주님은 우리를 평화의 중재자가 되도록 부르셨고, 성령님은 우리에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부어주신다. 평화를 이루는 유일한 길은 죄와 직면하여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는 과장하고 자신의 잘못은 축소시키는 자기 합리화, 그리고 자신은 바르다고 생각하는 교만과 늘 싸워야만 한다. 만약 내가 영적으로 올바르게 서 있는 상태라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과 동일하게 우리도 친구를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며 또한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하기 위하여 자신의 교만에 대항해야 한다(엡 4:32).

 

허다한 죄를 덮는 일(벧전 4:8)에는 희생이 뒤따른다. 만약 어떤 친구가 내가 뱉은 험한 말을 용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그는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친구의 비난을 용서하려면 인내의 고통을 치러야 한다. 물론 이러한 희생을 감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돌아가신 것처럼, 그분은 우리가 친구와의 화평을 위하여 자아를 죽이고 희생하도록 나와 당신을 격려하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친구를 사랑하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고 한 몸이 되게 하시며, 서로를 화해시키시는 분이다. 그분은 사랑에는 희생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다. 예수님이 나와 당신을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함을 기억하라. 이 사랑은 내가 누군가의 가족과 친구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며 또한 이 땅에서 우리가 성취해야 할 소명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예수님은 다락방 설교를 통하여 그분의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이러한 삶을 살아갈 것을 동일하게 요구하신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The Unique Witness of Unlikely Friendships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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