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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왜 아파하며 어떻게 회복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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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Becky Pippert  /  작성일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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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tteo Modica on Unsplash

요즘 사람들은 죄의 개념을 우습게 여긴다. 우리가 겪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자존감 부족, 노이로제, 중독, 불안, 심리적 아픔 등의 결과만을 내놓는다. 물론 이런 현상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가진 고통의 뿌리를 파헤칠 만큼 세상의 진단이 그리 깊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죄가 낡아빠진 관념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도 거의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세상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반드시 바로 세워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전쟁과 인종 차별, 대량 학살과 테러, 그리고 인신매매와 아동 착취 등의 실상을 접하며 그 사실을 깨닫는다. 또 개인의 삶에서도 깨어진 관계, 분노, 중독 등을 통해 그 잘못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세상은 처음 낙원의 상태에서 이토록 망가진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최초의 반역


창세기 3장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과 하와가 창조주의 통치를 거절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곧 그들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결과, 인류의 역사 속으로 죄가 들어오고 이로써 사람의 인격에는 죄로 물들지 않은 영역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또한 창조시부터 사람에게 반영되었던 하나님의 형상도 그저 희미하게만 남아있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지으셨던 온전한 모습이 깨진 후로, 인간은 줄곧 죄에 붙들려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이 어떠한지는 창세기 4-11장에 잘 그려져 있다. 이러한 죄는 인류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아담과 하와처럼,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통치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따라서 재난과 기근 및 학살과 아픔 등 삶의 실재와 우리의 내면에서 직시하는 그 모든 문제들은, 다름 아닌 인류가 처음으로 하나님께 반역했던 그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중에 요한계시록이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계 20:2)이라고 밝히는 사악한 뱀이 처음부터 동산에 들어왔던 것이다. 성경은 이 사탄의 정체 및 그와 함께 하나님께 대적하고 인류를 죄 가운데로 유혹하는 영적 존재를 가르친다. 그러면서 온갖 형태의 악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또한 보여 주는데, 그중 무엇보다도 모든 죄의 중심에는 하나님께 대항하려는 인간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타락의 결과


언젠가 정신과 의사이자 비크리스천인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드러내는 전형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잠깐, 그런데 너는 크리스천이니까, 우리가 가진 진짜 문제는 모두가 다 죄인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하겠네?” 그래서 내가 성경에서 가르치는 죄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다. “마약, 섹스, 락 같은 거 아냐?”


여기서 친구가 놓치고 있는 사실은, 성경적인 관점에서는 단순히 나쁜 행위나 비행을 죄의 핵심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은 오히려 인간의 마음속에 죄가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 죄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내면에서부터 비틀어 놓는다. 그 결과, 우리 자신과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혼합시켜 마치 스스로가 하나님인 것처럼 자기 자신을 다스리며 살아가게 만든다.


이때 죄는 이중적으로 작용한다. 즉 하나님을 주인으로서 예배하며 신뢰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게 만들고, 그와 동시에 우리 인생에 대한 권리를 교만한 마음으로 주장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죄는 불신앙과 우상 숭배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대상에 의존함으로써 인생의 정체와 의미를 스스로 창조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죄는 언제나 하나님을 대항한다. 즉 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곧 죄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낳은 결과는 무엇일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반역하며 그분으로부터 등을 돌렸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따라 그들에게 정의로운 심판을 선언하셨다. 그리하여 고통과 사망이 인류를 찾아왔다. 이처럼 아담과 하와의 반역이 낳은 결과는 참혹했고, 인류는 비참하게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부터 분리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초의 인류가 하나님과 더불어 누린 그 완벽했던 신뢰와 따뜻하고 친밀했던 교감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 대신 인간은 죽음의 심판 아래서 살게 되었다.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졌고, 그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관계의 단절이 일어나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이처럼 타락한 인류가 처하게 된 곤경은 너무나 심각하고 중대할 뿐 아니라 안팎으로 모조리 잘못되어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바로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과연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타고난 죄성을 변화시켜 내면에서부터 그 본성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탄을 무찌를 수 있을까? 혹은 사망을 정복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건져내어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까? 누가 이 끔찍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분명 우리 자신보다 강력한 능력을 가진 자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하나님의 개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타락한 세상을 위한 소망


우리는 바로 이 하나님의 개입이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비록 아담과 하와를 동산에서 쫓아내셨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 몸을 가리기 위해 만들었던 옷보다 더 나은 옷을 지어 그들에게 입히셨다. 이는 곧 동산 밖에서 살게 될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창세기 3장 14-15절에서 사탄에게 선전 포고를 하시며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리하여 성경에서 이어지는 모든 이야기는 말씀대로 사탄을 무찌르게 될 약속된 그 후손에게 초점을 맞추고 진행된다. 바로 마리아라고 불리는 여자에게서 태어날 구원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대적 마귀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가운데 이야기를 완성해 가신다. 이로써 최초에 주어진 복음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이다.


성경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인류의 반역이 있기 전, 심지어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구원하실지를 미리 계획하셨다고 가르친다(딛 1:2; 엡 3:11). 바로 당신의 거룩한 아들이자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고통과 사망을 대신 겪게 하심으로써 죄인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다는 것이다. 이 계획 때문에, 인간의 반역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이 처음부터 제시되었던 것이다.


이 복음은 우리에게 죄와 심판이 이야기의 결말이 아니라는 소식을 들려 준다.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를 베푸셔야 할 책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그 거룩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속함과 더불어 만물의 회복에 이르는 역사를 펼쳐 가신다. 곧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는 것이다(엡 1:10).


이 빛나는 복음의 영광과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쟁취하신 승리, 그리고 그 우주적 사건에서 드러나는 의미를 깨닫게 된다면, 어찌 그 아름다운 소식을 고통받는 세상에 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가서 이 소식을 전하자. 주님이 우리에게 가라고 명하신다(마 28:19).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Evangelism Must Explain What’s Wrong with the World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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