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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권위를 다시 확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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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Stephen Nicholas  /  작성일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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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있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사건들이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문 앞 광장 사건도 그중 하나이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먼저 광장에 동틀 녘,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등장한다. 그리고 두루마리를 펴서 읽기 시작한다. 그 시간이 정오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로 운집된 군중은 일체 넋을 잃고 집중한다. 그 자리에서 율법은 낭독되고, 해설되고, 가르쳐진다. 바로 이 사건을 기록으로 남긴 느헤미야 8장은 그 행사가 곧 예배로 이어지는 장면까지 보여 준다. 사람들은 겸허한 마음으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를 올리게 되는데, 그날의 모든 일은 그 거룩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그분의 말씀은 안타깝게도 주변부로 밀려나고 심지어 회중 속에서도 강력한 능력을 보이지 않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구약의 선지자들은 말씀의 기근이 있으리라고 예언한 바가 있다. 실제로 성경과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그와 같은 기근의 때가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기근이 실로 심각했던 시절이 바로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원래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발행에 대해 항변을 전개하고자 했다. 그런데 95개 논박문을 게시한 여파로 갖가지 논쟁에 휘말리게 된 그는 결국 라이프치히에서 제대로 된 토론회를 갖게 된다. 바로 수개월 동안 로마 가톨릭의 일급 신학자인 요한 에크(Johann Eck)와 담판을 벌이게 된 것이다.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루터는 종교개혁의 강령인 ‘오직 성경’을 선언하게 되는데, 이는 성경의 절대 권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담은 사상이다. 그런데 이 토론회에서 일어난 논쟁의 기록과 루터의 저술들을 살핀 교황 레오 10세(Pope Leo X)는 결국 루터가 이단자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심문하기 위한 회의의 일자와 장소를 1521년 4월 17-18일, 보름스 제국의회장으로 정한다. 


회의장인 보름스는 앞서 언급한 수문 앞 광장과 같이 ‘그 현장에 있었으면’ 하고 바랄 만한 또 다른 장소이다. 4월 17일, 루터는 그가 수도원에서 입던 단촐한 복장을 하고 나타나서는 다들 화려하게 차려입은 왕과 귀족 및 추기경과 사제들 앞에 섰다. 왕좌에는 스물한 살밖에 안 된 카를 5세(Charles V), 즉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앉아 있었고, 루터의 저서들은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었다. 이내 명령이 내려졌다. “철회하라!” 이는 책들에 쓴 내용과 ‘오직 믿음’만이 칭의의 수단이 된다는 사상, 그리고 ‘오직 성경’에 대한 그의 견해까지 모두 다 철회하라는 명령이었다. 이에 루터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으로 하루를 요청했는데, 그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그날 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다음날 그 자리에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답변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내가 인용한 성경이 나를 붙들고 있고, 내 양심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을 거스르는 행위는 안전하지도, 올바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도우소서, 아멘.”


이 사건 이후 우리로 하여금 ‘그 현장에 있었으면’ 하고 바랄 만한 또 다른 장소가 이어지는데, 그 장소란 바로 루터가 수개월을 칩거하며 은신처로 삼은 바르트부르크 성이다. 거기서 루터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고, 쉼 없는 연구 끝에 ‘교회 설교집’(Kirchenpostille)이라고 불리는 저작을 남겼다. 당연히 신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교회 설교집은 그 말씀을 해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분의 말씀은 선포될 뿐 아니라 해석되고 가르쳐져야 하기 때문에 루터의 결과물은 큰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는 마치 앞서 묘사한 느헤미야 8장의 전례를 잇는 것과 같다. 즉 루터는 어떤 새로운 일이 아니라, 매우 오래된 모범을 따르고자 했을 뿐이다.


이처럼 ‘오직 성경’에 충실한 태도는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성경 자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 사상을 좀 더 풍성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개혁자들의 신념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데, 그중에서도 루터가 그의 비판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큰 도움을 준다.


당시 루터가 가장 많이 받았던 비판은 결국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모아진다. “너는 천오백 년의 교회 역사를 저버렸다.” 여기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된다. “너는 교회를 저버렸다. 네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너는 스스로를 교회도 전통도 필요 없는 사람으로 자처했다. 그리고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성자들의 가르침이나 다른 성도와의 교제도 경시했다.”


루터는 싸움에서 뒤로 물러서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비판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그런 비판에 대응했는지를 살펴보기 전에, ‘오직 성경’이라는 사상이 오늘날 잘못 주장되는 경우가 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일부에서는, '오직 성경'이 그 당시의 비판자들의 주장처럼 마치 다른 교사들도 필요 없고 이천 년의 교회 역사도 저버릴 수 있다는 식의 의미로 잘못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이 선언한 ‘오직 성경’은 그렇게 급진적인 개인주의를 조장하거나 교회의 권위를 부인하기 위해 표방한 사상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하여 참고해 볼 수 있는 문헌으로는 루터가 쓴 ‘공회와 교회에 관하여’(On the Councils and the Church)가 있다.


1539년에 저술된 이 책에서 루터는 앞서 이십 년 간 계속되었던 비판에 대해 답변을 제시한다. 여기서 그가 특별히 강조하는 내용에는 교회 역사의 가치, 건전한 전통의 가치, 그리고 공회의 가치가 포함된다. 그러므로 루터가 자신의 견해를 지나치게 신뢰하여 다른 이들의 견해를 무시했다고 보는 해석은 심각한 오해이다. 그는 전통 자체를 최종적인 권위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그 필요성과 유익성을 인정했다. 다만, 무오한 성경과는 달리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권위로 간주했다.


성경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성된 사람들을 훈련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하라고 당부했다. 그 사람들은 신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신실한 사람들을 말한다. 바울은 디모데를 가르쳤고, 디모데는 그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쳤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에서 “부탁하라”라고 번역된 단어는 ‘전수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마치 유산을 물려주는 행위를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역에서 그 단어는 ‘전통’을 의미하는 용어로 번역되었다.


이처럼 건전한 전통이 분명 있는가 하면, 부패한 전통도 있다. 루터는 부패한 전통의 특징으로서 외형과 형식을 내면의 실재보다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보다 더 높이는 행위를 들었다. 이런 행위가 1세기에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사이에서 행해졌고, 16세기 당시에는 잘못된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전통은 하나님 말씀의 중심성과 우월성을 지지하는 한에서만 그 내용이 건전하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신조들이 그러한 전통에 해당한다. 또한 역사적 공회들과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 정립된 교리가 그 전통에 해당한다. 간단히 말해, 건전한 전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바른 교리를 높이는 반면, 부패한 전통은 그러지 않는다.


루터는 분명 자신의 사상에 전통을 위한 여지를 남겨 두었고, 교사의 중요성도 확신했다. 신약성경 역시 교사의 직분을 명시하고 있다. 루터의 고백처럼, 오늘 우리의 양심도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가르칠 교사들을 허락하셔서 그 말씀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전통과 교회를 거부하고 성도의 교제를 무시하는 자들이 아니다. 나의 동료인 키스 매디슨(Keith Mathison)은 우리가 주장하는 신념이 ‘솔라 스크립투라’(즉 성경만이 오류가 없는 최종적 권위라는 사상)이지 ‘솔로 스크립투라’(즉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라는 사상)가 아니라고 간결하게 표현한 바가 있다.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이라는 표어로 주장한 성경의 권위이며, 우리도 동일하게 고백해야 할 권위이다.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대해 믿을 수 있는 가르침을 제시하는 오류 없는 권위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그분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가르침에 순종해야 한다. 또한 그 말씀이 우리 삶에서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앞서, 우리는 성경이 제자리를 찾았던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았다. 곧 느헤미야 8장이 전하듯이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유배지로부터 예루살렘에 귀환했을 때 일어난 사건, 그리고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일어난 사건을 확인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와 같은 역사를 바로 이 시대에 일으켜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모시고 널리 전파함으로써 우리가 그 말씀이 결실을 맺는 영광을 목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Biblical Authority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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