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을 읽어야 할 이유
by Mark O’Donoghue2019-05-31

나훔은 구약성경에서 단 세 장밖에 차지하지 않는 분량에 비해 강력한 메시지를 들려주는 책이다. 그런데 설교에서는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다. 나도 다른 교회에 가서 나훔 설교를 하게 되면, 청중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혹시 나훔에 관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있거나, 아니면 최근에라도 나훔을 읽어본 적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실래요?” 이러한 나의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그렇고, 관련 리서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실제로 나훔에 관한 설교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선지서에 관해 묵상하거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 그토록 드물다는 건, 무척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따라서 나는 이 글을 통해 나훔의 일곱 가지 특징을 소개하고 이 선지서를 설교해야 하는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나훔은 요나가 미처 들려주지 못한 하나님의 성품을 전달하는 책이다


성경에는 두려운 앗수르 제국의 수도, 곧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 하나님과 이에 불순종한 요나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는 비록 후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지만, 처음에는 이를 거부했다. 요나가 단번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이유는, 그분이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요 4:1-2).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 마음을 돌이켜서 자신의 민족을 괴롭히던 앗수르를 심판하지 않으실까봐 그 명령에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요나는 하나님이 그런 자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훔은 그로부터 약 100년 후에 등장하여, 요나와 마찬가지로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한다. 이때는 요나 당시의 앗수르인들은 이미 다 사라지고, 요나를 통해 그 세대가 일으켰던 진실한 회개 운동도 더 이상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의 마음을 상실한 채, 잔인한 정복 전쟁과 주변국들에 대한 약탈 및 압제를 다시 이어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니느웨인들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 곧이어 남유다에 대한 습격을 전개했으며, 마침내는 예루살렘에까지 포위 공격을 퍼부었다. 이 끔찍한 고통의 시대에 나훔이라고 하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요나를 통해 은혜와 자비가 넘치는 하나님의 모습을 묘사한다면, 나훔을 통해서느 죄악을 관용치 않으시는 그분의 성품을 보여 준다(출 34:6-7). 


2. 나훔은 하나님에 대한 고정관념을 교정해 주는 책이다


나훔이 1장 9절에서 던지는 질문은 문자적으로 이렇게 번역될 수 있다. “너희는 여호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문장이 대부분의 성경에서는, “너희는 여호와에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라는 표현으로 옮겨져 있다. 그 이유는, 거기서 언급되는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흔히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절은 하나님의 '대적'뿐 아니라 그 '백성'도 함께 다루는 문맥에서 언급된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품으신 생각과 대적에 대해 품으신 생각은 마치 1장 10절에 묘사된 표현처럼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져 있다. 이런 방식으로 나훔은 하나님에 대해 크리스천들이 가지는 통념 내지 일반적인 전제에 도전하며 우리의 이해를 교정해 준다.


3. 나훔은 하나님의 진노를 묵상하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부드럽고 사랑이 넘치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훔은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이로서 그분을 소개한다(나 1:2). 이는 결코 우리가 가볍게 대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그분은 창조주로서 자신에게 속한 영광을 위해 마땅히 품어야 할 질투를 드러내신다.


아마도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앗수르 군대가 거침없이 남유다로 진격해 오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은 두려워 떨며 과연 하나님이 그 순간에 무엇을 하실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는 언제나 자신의 이름과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려는 행위로 나타난다.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라도 그분의 행위를 거스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하나님이 노하기를 더디하실지라도, 그 모습은 무력함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그러나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 인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리하여 심판의 그림자를 앗수르에 드리우듯, 인내하시던 하나님은 마침내 그 제국을 무참히 멸망시키신다. 나훔은 이와 같이 하나님이 심판을 늦추지 않고 질투하며 보복하실 때, 어떻게 그 의로운 분노가 표출되는지를 생생한 야생의 모습과 전장의 이미지를 사용해서 전달한다(나 2-3장).


4. 나훔은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알려 주는 책이다


세상 사람들은 911테러나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느냐고 묻곤 한다. 또 많은 크리스천들도 왜 세계 곳곳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그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지 의아해한다. 하지만 나훔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알려 준다. 그는 하나님의 정의로운 분노가 매우 강렬해서, 바다를 뒤엎고, 비옥한 땅을 메마르게 하며, 산과 언덕을 떨게 만드는 광풍과 같다고 묘사한다(나 1:3-5).


또한 여기서 그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나 1:6). 이에 대한 답변은 너무나 명백하다. 누구도 그 앞에 설 수 없다. 아무도 맞서 상대할 수 없는 대상은 그 어떤 제국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니느웨는 인간적인 힘으로 이루고자 했던 제국의 꿈이 결코 성취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나 3:8-10). 하나님이 죄악을 심판하시기로 한 이상, 아무리 겉모습이 그럴듯하더라도 그분의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나 3:12-19).


5. 나훔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평안의 메신저가 전하는 책이다


나훔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만이 아니라, 그분의 백성을 향한 평안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히브리어로 ‘나훔’은 평안을 의미한다. 이는 저자의 이름만을 의미하기 보다는, 그 책의 특징을 문학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비록 전개되는 이야기와 메시지는 평안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참된 평안을 찾게 하는 성경의 장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1장 1절에서 언급되는) “엘고스”라는 지명조차 격분하신 하나님을 일컫는 히브리 식의 언어 유희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나훔은 그처럼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평안의 메신저가 전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혹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중동과 같은 지역에서 겪는 박해라든가, 좀 더 일상적으로는 다양성을 강요하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또는 복음을 전하면서 마주하는 적대 등,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하나님이 알지 못하신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훔은 그분이 자기 백성이 당하는 고통에 민감하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대적의 능력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심판하고자 하신다(나 1:7-2:9).


더 나아가 나훔은 그 모든 장면을 생생히 묘사하여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를 통해 그는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 백성이 처한 현실을 알고, 그들을 돌보시며, 고난 속의 유일한 요새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즉 앗수르 대군과 같이 거대하게 밀려드는 고난 앞에서,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안전한 피난처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6. 나훔은 구원에 대해 더욱 감사하게 하는 책이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법적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이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음을 가르친다. 그 한분은 바로 아버지의 뜻에 온전하게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분이 하나님께 대적하던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달려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예수님 안에만 구원의 소망이 있음을 본다.


이처럼 나와 당신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 피난처를 마련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정의가 회복되리라는 사실을 믿게 된다. 또한 우리와 끝 날까지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신 그분의 약속을 즐거움으로 붙들 수 있으며(마 28:20), 더 나아가 그분이 우리의 적군, 곧 사탄과 죄악 및 죽음을 물리치셨다는 소식을 들으며 기뻐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승리가 모든 이에게 알려질 그날을 대망한다.


나훔의 이야기를 통해 만군의 여호와를 자신의 대적으로 삼은 니느웨의 무모함과 그 심판을 떠올리며(나 2:13; 3:5),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며 겪은 고통과 수치를 깊이 묵상할 수 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라고 절규하실 때, 그분은 대체 어느 만큼의 고통을 견디고 계셨을까? 이렇듯 나훔은 하나님의 대적이 느끼게 될 괴로움과 수치를 계속 상기시킴으로써 내게 허락된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그 결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게 된다.


7. 나훔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날을 향해 전진하게 만드는 책이다


결국 주전 612년, 나훔의 예언이 기록된 지 이십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바벨론 제국의 침략으로 앗수르는 완전히 멸망한다. 그리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난공불락의 수도였던 니느웨도 역사의 저변에 묻혀 모든 이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 흔적은 1842년, 고고학자들이 이라크 모술에서 잔해를 발견함으로써 다시금 우리에게 회자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니느웨의 소멸에 대해 우리는 경탄하며 찬양해야 할 것이다. 마치 요한계시록 19장에서 바벨론의 무너짐을 보며 하나님의 백성이 그 정의로운 심판에 기뻐 찬양하듯이 말이다. 나훔은 이러한 종말이 모든 이에게 분명히 임하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곧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최종 승리를 확정하실 그날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까지, 지금의 걸음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출처: www.9marks.org

원제: 7 Reasons You Should Preach through Nahum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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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ark O’Donoghue

마크 오도너휴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Christ Church Kensington의 교구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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