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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바울은 담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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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Guy M. Richard  /  작성일 20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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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Lachlan Dempsey on Unsplash

많은 사람들이 장미빛 안경을 끼고 역사 속 교회 지도자들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을 높은 받침대에 올려 놓고 보기 때문에, 그들 역시 우리처럼 진흙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고는 한다. 내가 이렇게 언급하는 이유는 과거의 목회자들이 우리의 삶과 인류 전체에 끼친 영향을 축소시켜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 또한 여러 가지 인생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을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장미빛 안경을 쓰고 그들을 바라볼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질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사도 바울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더 엄청난 일을 행하지 않으시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그를 대담하고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그리스도를 증거하거나 그분을 위해 투쟁하는 게 힘들어 질 때면, ‘바울은 나처럼 유약하지 않았을텐데…’라고 쉽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성경은 바울이 유대인들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설교했고(행 13:44-46; 14:1-3, 17:22-32), 용감하게 적과 대적했으며(행 13:8-11), 또한 청중들이 듣기 원하는 설교가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 하는 설교를 힘 있게 전한 사람이었다(행 20:20, 27)고 기록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의하면 바울은 실제로는 그리 담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고린도전서 2장 3절을 예로 들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있을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라고 고백한다. 또한 그는 고린도후서 10장 10절에서 교회에서의 자신의 명성이 다음과 같았다고 썼다.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그리고 최소한 한 번, 그는 자신을 위해 '항상'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복음을 '담대'하게 선언할 수 있도록 중보 기도를 부탁한 것이다(엡 6:18-20). 그리고 최소한 두 번은 주님이 갈등과 대적 가운데서 바울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그를 격려하셨다(행 18:9, 23:11; 또한 27:24 참조).


이 구절들은 어쩌면 바울이 천성적으로 소심한 성격이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그는 그리 대담한 사람은 아니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담대하지 않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셨다는 사실이다. 수세기에 걸쳐서 하나님은 천성적으로 소심한 사람을 가장 많이 사용하셨다. 대표적인 사람이 존 칼빈이다. 우리는 그의 제자 테어도르 베자(Theodore Beza)를 통해서 칼빈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였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그는 칼빈의 제네바 사역을 계승했고, 칼빈의 삶과 사역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을 최초로 남긴 인물이다. 


베자에 의하면 칼빈은 천성적으로 소심했고, 스포트라이트를 싫어했으며, 사람들로부터 떨어진 혼자만의 은둔 생활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칼빈의 삶을 통해 담대한 사역을 행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셨다. 실제로 칼빈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복음을 선포했고, 대적들에 맞서 싸웠으며,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 할 메시지를 증거했다. 


만약에 바울이 천성적으로 소심한 사람이었다면, 도대체 그의 담대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그의 말씀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바울과 총독의 신앙을 방해하려는 마술사 엘루마가 대면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성령이 충만한" 상태임을 볼 수 있다(행 13:9-11). 또한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파한 이유로 유대인과 마을의 많은 지도자에 의해 추방되었을 때에도, 우리는 그의 담대함을 확인할 수 있다(50-52절). 또한 바울은 이고니온으로 이동한 후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반대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하기"시작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주님 그에게 권능을 부여하셨기 때문이다(14:3). 


하지만 우리가 더욱 눈여겨 보아야 하는 부분은 사도행전 20장 32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고하면서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라고 강조한다. 그가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떼를 목양하도록 조언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장로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의지할 때에 비로소 주님이 사역에 필요한 담대함과 능력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성도 중에서도 겁이 많거나 하나님을 담대히 증거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큰 용기가 된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아마도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 담대하지 못한 사람들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복음을 알리 수 있는 기회 앞에서 침묵하곤 한다. 이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반대 의견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반대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고 싶어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이 의미 있기를 바라고 또 궁극적인 의미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주님이 그토록 놀랍게 사용하셨던 바울조차도, 우리처럼 연약함으로 힘들어했음을 말이다.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바울을 채웠던 동일한 성령이 우리 안에 거주하시고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일하고 계심을 말이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걸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 혹은 타고난 자신의 능력을 기댈 것이 아니라, 주님과 그분의 약속에 의지함으로써 다음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5). 용기는 공포의 부재가 아니다. 용기란 두려움 가운데서도 성령의 힘을 믿고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이 고백한 "육체의 가시"가 바로 그의 천성적인 수줍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에게 자신이 담대해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이 약점은 사람들 앞에 섰을 때의 바울과 글을 통해 마주하는 바울이 그토록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고린도 교인들이 그에게 약함과 많은 떨림이 있었다고 평가한 이유 역시 그 수줍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천성적으로 담대하지 못한 성품이 정말 바울의 가시였다면, 고린도후서 12장의 나머지 부분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의 소심함은 그의 사역을 실패하도록 만든 약점이 아니라 도리어 모든 부분에서 그가 주님을 의지하도록 만든 은혜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바울이 타고난 능력과 재능에 의존하지 못하도록 만드셨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가 실제로 바울에게 "족했으며", 오직 그분의 능력을 통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 세상에 증명되었다(9절). 우리는 그 과정을 고통스럽게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분명한 자비이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이 고통스러운 자비에 더욱 감사하게 된다. 그 은혜를 통해 나는 점점 더 자신이 아닌 주님께 의지하게 되고, 그런 나를 통해 세상은 그분의 권능과 능력을 보기 때문이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Was Paul Bold?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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