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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의를 앞세우는 목회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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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Dave Harvey  /  작성일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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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Fabrizio Verrecchia on Unsplash

목회자와 리더로 부름 받은 우리는, 교회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바울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성도들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어야 하는 여정에 들어섰기 때문이다(고후 12:15).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이다.


하지만 굳은 각오에도 불구하고, 목회를 이끌다 보면 아무렇지 않게 고통을 주고 떠나는 성도를 보며 상심할 때가 있다. 심한 경우, 그들은 죄악의 자국을 남긴 채 사라지기도 하여 그 자리에 남겨진 리더는 남모르는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어려운 상태의 리더는 주어진 상황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거나,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칠 수도 있다. 또한 떠나가는 성도를 보며, 그를 마치 하나님의 뜻마저 저버린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그 생각이 비약되는 상태에 이르면, 자신의 입장만 방어하며 떠난 자를 악인과 같이 언급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상대로 죄를 짓고 쉽게 떠나간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비방과 불화를 일으켜 공동체에 불을 놓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교회는 당연히 상처를 입는다. 이런 상처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쓰라림이 있으며, 헝클어진 교회의 모습은 여러 성도에게 아픔이 된다. 이러한 감당하기 힘든 결과에도 불구하고, 떠남을 결심한 이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세로 불 같은 비난을 쏟아 놓는다. 그리고 타고 들어가는 그 불길이 목회자에게 옮겨 붙어 그의 명성에 해를 입히기를 바라기도 한다. 바울이 이렇게 탄식했듯이 말이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노라]”(딤후 4;14).


우리는 상대의 폭언을 되받아치고 싶고, 그들의 비난에 강경하게 대응하며 나를 변호하고 싶다. 


분명 바울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딤후 4:14). 그는 자신이 맡은 리더십을 발휘할 때, 장기전에 임하는 태도로 지도력을 사용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꼭 변호해 주셔야 한다거나,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여 명예를 회복시켜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의 모습을 따를 뿐이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3).


아마도 겪어온 아픔이 컸을 텐데도, 바울은 이처럼 심판을 주님께 맡기고 알렉산더를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로 여겼다.


나 역시 30년이 넘도록 목회하면서, 이러한 사람을 여러 명 만났다. 그들이 교회를 떠날 때면, 내 마음은 늘 똑같이 반응했다. 언제나 무엇이 옳은가를 밝히는 일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 자신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렇게 사태를 바로 잡기 위해 싸우며, 나에 대한 비방에 맞서 변호하고자 했다. 결국 내겐 누가 옳으냐 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기 의를 내세우려는 그런 태도는 결국 쓸데없는 말만 쏟아 놓게 만들었다. 그래서 괜한 말로 그 사람이 이미 건너간 다리를 불태우고 말았다. 잠잠히 있었으면, 떠난 자가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들은 복음을 떠나지 않았다


백발이 다 된 선배 목사가 이런 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젊은 목회자들에게 주는 조언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당신의 교회를 떠났다고 해서, 복음까지 상실한 것으로 착각하면 결코 안 된다. 그리고 복음에 대한 진지한 열정이 당신이 섬기는 교회나 당신이 꿈꾸는 사역에만 부어지게 해서도 안된다. 나는 이제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바로 내 자신의 의로움이, 한때는 나를 주님과 분리시킨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말이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 64:6). 그러니 자기를 변호하고 싶은 집착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단,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사실이 있다. 바울은 알렉산더에 대해 개인적인 앙갚음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디모데와 그 편지를 읽게 될 다른 성도들의 영적 안전을 위하여 이런 경고를 했다.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딤후 4:15). 그는 이처럼 짤막한 이유와 함께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남겼는데, 바울이 보기에 신실한 목회란 유사시에 양들로 하여금 늑대를 주의하도록 경고하는 일까지 포함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르다 보면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고난을 피할 수 없기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디모데가 그 핍박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약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딤후 3:12-13).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공격을 받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주님이 그 지침을 분명히 제시하였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우리가 이렇게 반응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바로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기 때문이다(눅 6:35). 


그러나 때로는 알렉산더와 같은 자들의 악행이 개인적인 공격 수준을 넘어, 복음을 가리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악행을 모른 척하거나 거기에 순순히 따라가면 문제가 고착화되어 결국 양들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주저하며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즉 바울의 예를 따라 간단한 설명과 함께 분명하게 경고함으로써, 양들이 해를 입거나 병균이 확산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지금 다 해결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갈등이 완전히 끝나기는 어렵다. 디모데후서를 읽어보면, 바울 역시 죽기 전까지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결말을 보지 못했음을 예측할 수 있다. 그가 경험했던 고통과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문제들, 그리고 부조리한 일들을 하나님이 깨끗하게 정리해 주시지 않았다. 혹 당신은 자신의 믿음이 완벽한 결말을 보장해 주리라고 바랄지도 모르겠다. 바울 역시 그러한 믿음을 가졌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신앙의 영웅들도 다 그런 믿음을 소유했다. 그런데 본문은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히 11:13). 이 믿음의 선배들은 온전히 성취되지 않은 약속, 이뤄지지 않은 꿈, 답변을 얻지 못한 물음 등을 안고 죽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죽었다. 오히려 그런 결말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세월을 버텼다.


그러니 혹시 복잡하게 얽매인 갈등이 그대로 남아 있고 또 그 상황이 끝날 기미조차 안 보이는 상태에서 일하고 있다면, 다윗도 바로 그런 상황에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시 55:12-14).


다윗뿐만 아니라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목회는 그렇다, 매우 복잡하다. 때로는 화평을 바라며 최선을 다한 노력이 원하던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모든 일을 끝까지 밝혀 따지려 하지 않는다. 또 인생의 문제가 다 해결되어 심리적으로 만족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믿음은 그저 하나님이 보여 주신 일만을 신뢰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보이신 가장 중요한 사건에서,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결말의 모습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온 세상이 안고 있는 가장 중대하면서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결론은 복음 안에서 나타난다. 우리 모두에게 위기를 몰고 온 이 죄의 문제를 과연 하나님이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결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우리는 모든 문제가 비로소 해결될 저 마지막 날을 소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 고통을 안겨다 주는 상황이 다 해결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잠시 눈을 돌려 골고다 언덕에서 일어난 그 일을 돌아보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에게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을 떠올리자.


그렇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며 할퀴고 간 자리를 바라볼 때, 우리는 반드시 부활하신 주님께로 달려가야 한다. 오직 그분 안에서만, 양들에게 상처 받는 목회 여정에도 우리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결말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라는 바울사도의 고백처럼(고전 13:12), 그날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혹 오늘은 아니어도 말이다.


사람들이 떠나서 마음이 무너지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 당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우리와 함께하리라는 약속 외에, 버림 받은 목자에게 주어진 복은 없다. 그리고 그 약속이면 충분하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Pastor, There’s Something More Important Than Being Right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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