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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여, 수고하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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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David Mathis  /  작성일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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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aulette Wooten on Unsplash

그리스도는 목회자를 부르셔서 올바른 가르침으로 양무리를 먹이는 일에 힘쓰라고 명하신다. 그에 따라 우리는 말씀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전달하려 하지만, 이는 그리 쉬운 사역이 아니다. 사역의 결과가 괜찮다고 하더라도 힘든 일은 힘든 일이다.


열심을 다하는 자를 향한 존경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 5:17). 이 구절은 흔히 그렇게 인용되듯, 단지 말씀과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이 존경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는 말씀과 가르침을 전하는 일에 ‘수고하는’ 자들이 존경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목회자가 숙련된 교사여야 하지만(딤전 3:2; 딤후 2:24; 딛 1:9), 그중에서도 다른 이들보다 설교하고 가르치는 사역에 특별한 실력과 소질을 갖춘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바울이 위의 구절에서 강조하려는 바는 그와 같은 은사가 아니다. 그는 ‘수고’에 초점을 둠으로써, 교회가 그렇게 애쓰는 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말씀과 가르침에 헌신하는 일은 목회 사역의 중심을 차지하는 수고이다. 교회는 성도들을 돌보는 모든 목회자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해야 하지만, 특별히 말씀과 가르침에 집중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역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땀 흘리며 그 뜻을 연구하지 않는 목회자는 소명에 합당치가 않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훌륭한 가르침은 절대로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깨어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딤전 4:16).


진리의 사슬에 매인 가르침


목회 사역이 결코 쉽지 않은 이유는 말씀을 전하는 자가 진리의 사슬에 매여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설교와 양육은 단순히 성도들 앞에서 머릿속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가르치는 행위가 아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야 한다(딤후 2:15). 따라서 매주일 성도들을 먹이기 위해 전하는 말씀은 어떤 문제에 대한 우리 자신의 생각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한 권의 책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훌륭한 목회자는 분명 이 책에 매여 있기를 기뻐하는 자이다. 이 책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데 쓰임 받았다. 따라서 좋은 목회자는 필시 이 책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이 책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성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즉 정신적인 노동을 지속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한다. 이 책의 언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익히고 그 의미를 수시로 확인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적용하기에 앞서,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고 또 무엇을 의미하지 않는지를 놓고 씨름한다. 또한, 이 책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슴이 뜨거워야 한다. 그 내용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가르침을 받아 믿음과 회개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무거운 사명


우리는 설교를 위한 원고를 작성하거나 그 메시지를 강단에서 전할 때, 판단의 도마 위에 설 수밖에 없다. 특히 설교는 원고 작성보다 더 힘이 드는데, 사람들 앞에서 한 말은 수정하거나 되돌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대중 앞에서 말하기를 무척 불편해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죽기보다 두렵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단지 말을 해야 하는 부담에서 더 나아가, 예배의 인도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메시지를 전하는 일은 어떠할까? 이보다 더 무거운 사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1-2).


설교자라면 ‘십자가 뒤로 자신을 감추기’ 위해 힘써야 하겠지만, 강단에서 자신을 감출 수는 없는 법이다. 설교는 사람을 노출시킨다. 우리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삶을 보여 주며,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해야 할 메시지를 증언해야 하는 자로 강단에 서게 된다. 그리고 청중에게 판단 받는 일에 더하여,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약 3:1) 마지막 날에 대한 부담까지 지게 된다.


수고할 때 느끼는 마음


따라서 바른 목회자는 게으를 수 없다. 아무리 현대 사회가 지나친 노동을 비판하고 나태함에 이르는 환경을 조장한다 하더라도, 목회자는 수고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겉으로만 열심히 일하는 태도는 내면의 죄성에서 나오는 모습일 수 있다. 목회자를 포함하여 누구라도 그릇된 이유 때문에 수고할 수 있다. 가령 이기적인 야망 또는 자신의 명성이나 타인의 칭찬 때문에 열심히 일할 수 있고, 혹은 정서적인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목회 사역을 위해 열심히 수고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시기를 바라고 일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이미 우리를 받아주셨기 때문에 일하는 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속에 다른 무엇이 아닌 복음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복음에 대한 넘치는 감사함으로 수고해야지,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고 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정신이 바로 노동에 관한 개신교 윤리의 핵심이다. 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그 가르침이 달랐던 중세 시대의 노동 윤리와는 눈에 띄게 구분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래야 하지만, 특히나 목회자가 첫 번째로 새겨야 할 말은 ‘내가 일한다’가 아니라 ‘그분이 일하셨다’이다. 그분이 다 마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하신 그 수고를 보아야 한다. 얼마나 일찍 일어나 기도하며 중보하셨는지, 날마다 몰려드는 무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제자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얼마나 인내하셨는지, 아버지가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지칠 줄 모르게 일하셨는지, 그리고 아픈 자와 장애인과 소외된 자의 간청을 어떻게 다 받아 주셨는지, 그 수고를 기억해야 한다.


수고할 수 있는 자유


이와 같은 정신으로 영혼의 궁극적인 안식을 추구한 개신교의 회복 운동은 전혀 다른 사람들, 즉 새로운 유형의 목회자들을 양산하게 되었다. 결코 게으르거나 냉담한 일꾼들이 아니라, 새로운 활력과 자유, 장래를 내다보는 비전과 소망, 그리고 역사를 주도하는 정신을 지닌 자들, 또한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타인의 유익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냈다. 즉 그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일꾼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잘 아는 사람이야말로 수고로운 일에 자유롭게 자신을 드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목회자는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최고는 아닐지라도 탁월한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 일에 있어 복음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와 내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그 결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 그리고 기술과 창의력을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게 된다. 내면뿐 아니라 외적인 행동까지 변화된 삶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이 되는 훌륭한 목회자는 이 새로운 윤리가 무엇인지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지체에게 몸소 보여 주는 모델이다(엡 4:28).


바로 이러한 마음과 함께 우리는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라는 사명을 받는 것이다. 이는 특권이 아니라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부르심이다. 명예로운 직분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기쁘게 수고하라는 명령이며, 안일한 삶 대신 열심히 수고하라는 소명이다.


더 큰 기쁨을 위하여


우리가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올바른 말씀과 가르침을 위해 수고할 때 깨닫는 교훈이 있다. 바로 열심히 수고하며 산 하루는 더 행복한 저녁을 안겨 준다는 가르침이다. 그 행복은 산만하고 게으른 채로 보내는 날에는 결코 얻지 못하는 깊은 즐거움이다. 즉 열심히 일한 하루를 통해 우리의 영혼은 더 큰 기쁨을 만끽하게 되고, 그 기쁨은 다시 나를 통하여 교회에까지 전달된다.


우리는 헛된 수고의 떡을 먹기보다(시 127:2), 영혼을 살리는 참된 양식인 그리스도 자신을 누려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 안에서의 수고가 부담이 아닌 하나의 기회, 즉 게으를 때는 알 수 없는 깊은 만족의 기회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그 흡족함을 수고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다른 시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존 파이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이 다른 이들에게 가져올 유익을 기뻐하며 수고하지, 그 일이 실패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수고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과연 소파에 누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자일까? 당신이 목회자라면, 강단에서 수고하는 그대의 모습을 보는 자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저기 있노라고 생각하게 만들라.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The Plague of Lazy Pastors: Real Ministry Requires Hard Work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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