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회를 무엇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by 고상섭2019-06-07

목회자의 마음을 항상 따라다니는 질문은 “내가 목회를 잘 하고 있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목회를 돌아보지만, 자칫 잘못된 기준으로 돌아보면 열등감이나 무기력에 빠질 위험이 있다. 팀켈러는 ‘센터처치’ 사역을 시작하면서 두 가지의 잘못된 목회 기준을 지적하고, 건강한 평가를 위한 제 3의 길을 제시한다. 


잘못된 평가 기준 1: 성공(Success) 


우리는 목회의 기준을 ‘성공’ 또는 ‘성장’에 두는 경우가 있다.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Anderson McGavran)의 책을 필두로 실용주의에 기인한 미국의 ‘교회 성장학’이 들어오면서, 국내 목회 현장에서는 교회의 성공과 성장을 '수치'로 계산하고 또 평가하기 시작했다. 교인의 수, 헌금 액수, 건물의 크기 등으로 목회의 성공을 가늠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도 ‘성공'을 수로 정의하는 교회에서는, 매주 당회가 시작되면 출석 통계와 헌금 액수를 평가하고 분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성공이 평가의 기준이 될 때, 목회자의 관심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하는 일에 집중된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는 물론 긍정적인 결과지만, 반면 전체 사역의 초점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일에 맞춰질 위험이 따른다. 또 “꿩 잡는 것이 매”라는 말처럼 양적으로 부흥할 수만 있다면, 목회자의 성품과 하나님의 주권 같은 중요한 요소들은 무시되기도 한다. 더불어 성공이라는 잣대가 목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면, 양적으로 부흥하지 않는 교회와 그 목회자는 큰 스트레스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잘못된 평가 기준 2: 충성(Faithfulness) 


목회를 교인의 수나 돈으로 계산하는 것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다른 평가의 조건으로 '충성'을 말한다. 그러나 이는 또 하나의 극단적인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목회에 있어서 ‘충성’ 이라는 요소는 무척 중요하다. 바른 목회자는 교리에 충실하고, 성품은 경건하며, 설교와 목양에 신실해야 한다. 그러나 충성만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게 되면, 열정적이지만 성공적이지 않은 모델에 대한 반성이 사라지게 된다. 즉 정말 열심히 충성스럽게 목회를 함에도 불구하고, 기술이 부족해서 능률이 오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된다.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은 사역자가 되려면 충성됨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학교에 지원하는 사람들을 불합격으로 처리하면서 이렇게 언급했다. 


“그들은 정말 진지하고 또 가장 고된 일이라도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정작 아무것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지원서를 대부분 불합격으로 처리했다.” 그는 지원자들이 충성스럽고 헌신적이지만, 정작 그들을 통해서 “아무일도 성취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즉 목회에는 충성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전 10:10). 


전도서에 기록된 위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지혜’없는 충성이 부르는 효과적이지 못한 결과를 떠올릴 수 있다. 팀켈러는 목회 평가의 기준을 오직 ‘충성’에만 둘 때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 “사역자의 책임을 경감시키고, 목회자가 반드시 던져야 하는 어려운 질문을 던지지 않게 한다”라고 말했다. 비록 이 모델은 성공이라는 잣대보다 신실해보이지만, 목회자로 하여금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게 만드는 위험성을 가질 수 있다. 


바른 평가의 기준: 열매(Fruitfulness)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궁극적 평가의 기준이 ‘열매’라는 뜻이다. 성경에서는 이 ‘열매’라는 단어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먼저, 위에서 언급한 성공과 충성의 뜻으로 사용된 예를 살펴보자.


첫째, 열매는 회심한 사람을 의미한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롬 1:13).


 둘째, 열매는 경건한 성품을 의미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 5:22).


셋째, 열매는 선한 행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롬 15:28).


이 구절에서는 가난한 자를 향한 자비와 구제 같은 선한 행동을 ‘열매’라고 표현했다. 위의 예들을 통하여, 우리는 성경 속 ‘열매’라는 표현이 성공과 충성의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열매’는 그 이상의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를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원예의 비유’이다. 바울은 목양을 원예에 빗대어 표현하면서, 고린도의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밭’이라 말했다. 이때, 어떤 사역자는 씨를 뿌리고, 어떤 이는 물을 주며, 또 어떤 이는 열매를 거둔다. 원예의 비유는 성공과 충성이 사역을 평가하는 최선의 기준이 아님을 말해 준다. 원예사는 반드시 충성되게 일을 감당해야 하지만, 어떻게 일하는지도 중요하다. 즉 충성과 함께 최고의 실력으로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수의 결과는 원예사의 손을 뛰어넘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먼저 열매의 성취는 ‘흙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어떤 집단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딱딱한 마음 밭을 갖고 있다). 또한 ‘기후 상태’도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날씨는 주권적인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 11:14). 


사역이라는 밭에서 풍성한 추수를 거두려면 최고의 기술과 최선을 다하는 삶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성실과 기술만으로 추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는 흙의 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한 이른비와 늦은 비 그리고 햇빛의 적절한 제공이 없다면, 풍성한 추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목회 사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8-29). 


목회란 ‘각 사람’, 즉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자신도 힘을 다해 수고해야 하지만, 바울은 그 수고를 이끄는 분이 바로 자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목회의 평가 기준이 성공과 충성을 넘어 열매가 될 때, 우리는 분명한 책임 의식을 갖게 됨과 더불어 내 힘으로 성도의 삶을 급격히 변화시켜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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