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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넘어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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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Dan DeWitt  /  작성일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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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Carolyn V on Unsplash

나는 어거스틴(Augustine)의 그림들 중에 17세기 플랜더스파 화가인 필립 드 샴페인(Philippe de Champaigne)이 그린 그림을 가장 좋아한다. 이 그림에서 어거스틴은 서재에 앉아 한 손에는 깃털 펜을 쥐고 다른 손엔 불이 붙은 그의 심장을 들고 있다. 그는 상단의 밝은 빛을 응시하고 있으며, 그 빛은 어거스틴의 머리와 심장 두 군데 모두를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 빛의 중앙에는 진리라는 뜻의 라틴어 'Veritas'가 쓰여져 있다. 


이 작품의 의미는 온 몸과 마음을 다하고 또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는 온 율법과 예언서를 통해 예수님이 전하고자 하신 메시지이다(마 22:36-40). 또한 바울 역시도 그의 사역 내내 이를 핵심 내용으로 전하고자 애썼다. 우리는 유창한 설교자, 관대한 자선가, 또는 숭고한 순교자가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패한다면 우리의 행위는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고전 13:1-3). 그 어떤 행위를 더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당신은 어쩌면 삶을 낭비하고 있을 수도 있다. 바로 오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가? 혹시 그분을 사랑하는 것보다 신학을 정교하게 분석하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지는 않은가? 


불타는 떨기나무


그날,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한 날이었다. 당시 나는 청소년 집회에서 유황고 지옥불에 관한 설교를 듣고 있었다. 설교자는 수백 명의 학생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를 열정적으로 전했고, 그 설교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 나는 크리스천이 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초신자였다. 집회 바로 전날, 이제 막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아들인 차였다. 그리고 내 인생의 첫 집회 주제가 바로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집회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설교자는 학생들에게 각자 원하는 장소를 찾아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권면했다. 또한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때까지 그 자리에 머무르라고 격려했다. 넘치는 열정과 기도할 생각으로 들뜬 채, 나는 조용한 수풀 사이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땅에 손을 짚은 후 그 위에 이마를 대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소리 높여 기도했다. "주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마법 같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각각의 단어에 더욱 힘을 주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날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게 되고, 하나님의 웅장한 목소리를 듣기 원했다 . “그래, 네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한단 사실을 안단다. 그러니 이제 그만 일어나서 네가 좋아하는 치즈 버거를 먹어도 괜찮단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에 결국 기도를 멈추었다. 그때 나는 겨우 열다섯 살이었고, 장담컨대 십오 분 이상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 잠깐의 시간이 그토록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적잖이 실망했다. 마치 기도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을 가리는 것


아마도 이와 같은 기억을 가진 크리스천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지만, 또 어떤 때는 치즈버거와 같은 다른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두기도 한다. 사소해 보이는 많은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그처럼 쉽게 가리고는 한다. 


지난 삶을 되돌아 보았을때, 과연 무엇을 보게 될까? 하나님을 알고자 지금보다 더욱 노력했고, 더 많이 그분을 사랑했던 때를 보게 될까? 전심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때가 언제인가? 마음을 다해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더라도 그것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었을까?


종종 어린 시절의 집회를 떠올리며 웃을 때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진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 진리는 바로 예수님께서 다른 어떤 것보다 내 마음을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때의 나에게도 진리였고, 지금의 우리 모두에게도 변치 않는 진리이다. 즉 바른 믿음, 그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


지식을 넘어 사랑으로


올바른 신앙은 정통 교리와 함께 형성되고, 예수님과의 관계는 진리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그들은 사도 요한, 엘리야, 혹은 선지자 등 마을 사람들로부터 들은 몇 가지 호칭을 말하였다(막 8:27-28). 여기서 예수님은 다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심으로써, 이를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셨다(막 8:29).


베드로는 바로 대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막 8:29). 만약 이 질문이 정통 교리에 관한 시험 문제였다면, 베드로는 최고의 점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역사적인 오순절 설교를 전해야 하는 자였고, 또 그 설교는 약 삼천여 명의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끌 예정이었기 때문에(행 2:14-41), 베드로에게 정통 교리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교리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으신다.


반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세 번이나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17). 베드로는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순교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그를 순종의 자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올바른 신앙을 갖게 하는 정통 교리는 믿음의 시작이지 끝이 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향한 사랑 역시 커질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제대로 앎으로써 바른 믿음을 형성하는 일은 크리스천에게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위험하게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그대로이면서 그분을 아는 지식만 점점 방대해질 수 있다. 마음이 그분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지식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을 순교자로 내어 드리는 중에도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 맺는 일에 실패할 수 있다. 


신학 전공자의 고백


내 사무실에는 학위 증서가 놓여 있다. 바로 신학 석사 학위증이다. 이는 내가 성경과 하나님에 관한 수많은 수업을 들었음을 의미한다. 나는 분명 신학에 통달하였다.  


그러나 과연 학위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당치도 않다. 아마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애썼던 열다섯 살 소년에게 하나님은 더 크게 감동하셨을 것이다.


오래 전 그날,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이것이 바로 꼭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주님의 영광이 나를 통해 드러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진리가 내 머리와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사로잡힌 상태에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 삶을 낭비하고 있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Why Good Theology is Not Enough

번역: 송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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