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는 경건의 열쇠다
by Amy DiMarcangelo2019-07-01

세상은 우리에게 “비교하지 마라! 너는 너일 뿐이다. 진정한 만족은 네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달콤한 그 말은 죄성 가득한 우리의 귀에 매우 듣기 좋은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그 속삭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감’만 있다면 ‘성령의 열매’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유혹하며 신앙적 결핍을 외면하도록 부추긴다.


우리는 그 달콤함이 주는 유혹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과 나의 모습을 견주어 보는 일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비교는 두려워하거나 피할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 주님은 종종 이 방법을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경건한 비교’는 다른 누군가의 기준을 따르거나, 그 삶을 모방하거나 혹은 더 나은 자기만족감을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다. 자기 발전을 위해 런닝머신에서 힘들게 뛰는 것도 아니고, 헛되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애쓰는 것도 아니다. 경건한 비교의 목적은 타인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데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을 위해 비교를 사용하신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두 형제가 드린 제사를 비교하셨다. 우리가 잘 알듯이, 주님은 아벨의 제사를 기쁘게 받은 반면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가인이 이에 완악한 마음으로 화를 냈을 때, 하나님은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양떼 중 가장 좋은 것을 드린 동생 아벨의 모습을 가인 역시 닮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에게 배우는 대신 동생을 죽여 버리고 만다(창 4:1-8).


이 이야기를 들으며 당신은 어쩌면 “그건 예수님 오시기 전 일이잖아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은 제사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가능하다. 다시 말해,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그 ‘의로움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의 성취가 한 순간에 예수님을 닮은 성품으로의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사람들을 제시하셨다. 그 중 회당에서 헌금을 많이 한 부자와 두 렙돈만을 바친 가난한 과부를 떠올려 보라. 주님은 부자보다 가난한 과부가 더 많이 드렸다며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선언을 하셨다. 하지만 이는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가진 모든 것을 드린 과부의 마음이 더 높이 평가받을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그 과부의 가장 큰 보물은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이다(막 12:41-44).


계속해서 예수님은 두 자매를 비교하여 가르치신다. 식사 준비로 바쁜 마르다가 동생 마리아가 전혀 돕지 않는다고 예수님께 불평했을 때, 그분은 당신의 발 아래서 말씀을 들은 마리아가 더 좋은 것을 선택했다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의 반응은 분주함으로 지친 마드라가 계속해서 혼자 일하도록 부담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마리아가 품은 마음의 의도, 즉 말씀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는 그 마음의 중요함을 보여주려 하셨던 것이다(눅 10:38-42). 예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자세도 물론 소중하지만, 그분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 역시 중요한 일임을 가르치신 것이다.


하나님이 비교의 방법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망가뜨리거나 비난하려 함이 아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분은 우리의 마음이 더욱 하나님께 사로잡히기를 원하기 때문에 거룩한 비교를 사용하신다.


우리의 경건함을 위한 비교 

 

예수님께서 교회를 한 몸으로 설명하신 것처럼 크리스천들은 각각의 지체로서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교회는 각각의 기능을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다(롬 12:4-5). 그 속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영광은 크리스천들에게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 주님은 서로 다른 성향과 재능, 배경과 사연, 그리고 강점과 약점을 가진 우리가 그분의 영원한 선하심의 일부가 되어 이 세상에 빛으로 드러나기를 바라신다. 획일적인 것으로는 이룰 수 없는 그 빛이 다름의 조화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또한 주님은 우리를 거룩하도록 부르셨다. 걸을 때 몸 전체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 또한 다양함을 품고 예수님 한 분을 향해 함께 나아간다. 주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신 방법 중 하나는, 그분을 모범으로 삼는 여러 기독교인들과 어울리며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순종의 방식으로 살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건한 비교는 우리를 그분의 아들처럼 만들기 위한 자비로운 계획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다른 모범 사례들을 통해 우리를 다듬어 가신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가 예수님을 본받은 것처럼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한다(고전 11:1). 또한 바울은 디도에게 좋은 일의 모델이 되라고 가르치며(딛 2:7), 디모데에게 말과 행동, 사랑, 믿음 그리고 순결의 본이 되라고 강조한다(딤전 4:12). 바울이 환난에 처한 자신에게 마게도냐 교회가 보인 관용에 대해 널리 소문을 낸 것(고후 8장) 역시 그런 이유에서다. 경건과 겸손, 소망으로 비교하는 것, 그리고 모범적 삶을 따르는 발걸음이 없다면 몸은 결코 거룩함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자기중심적인 신앙의 추구는 당장 멈추어야 한다.


가인이 아벨에게 그리고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배워야 하는 것처럼, 또한 고린도 교회가 마게도냐 교회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배워야만 한다.


어떻게 비교해야 할까?


경건한 비교를 위해서는 기본적 원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성경적인 섬김에 대해 고민한다면, 섬김을 잘하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닮아 그렇게 하는지를 관찰하고 따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와 같이 행하다 보면, 섬김의 여러 방식을 스스도 확장시키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어머니는 명절마다 가족이 없는 친척들을 초대하신다. 또 우리 가족은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고 있다. 최근에 모임에서 만난 한 친구는 몰몬교 선교사를 초대해 믿음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 주님은 나에게 그런 본보기들을 마주하며 주눅들기보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배우기를 원하신다. 그들 안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확인하면서 말이다. 그분은 내가 약점을 외면하기보다는 성장하고, 순종하며, 심지어 기꺼이 섬기는 일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는 분야조차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겸손히 배워야 한다. 나는 자비를 베푸는 일에 조금은 남다른 재능이 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시간과 자원 혹은 인력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에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역에서 여전히 성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까운 친구가 이웃에 사는 사회적 약자에게 품은 깊은 연민을 소유하고 싶다. 또한 중독자들을 향한 남동생의 헌신 및 그가 희망이 없는 지역을 찾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도 본받고 싶다. 성령님은 우리가 담대함과 기대를 가지고 비교의 경건을 누리도록 인도하신다.


주변의 누군가가 예수님을 더욱 소중히 섬기도록 당신의 마음에 도전하고 주고 있지 않은가? 당신에게 없는 경건함을 가진 자가 누구인가? 선교를 위해 열정을 쏟는 이웃이 있는가? 여러 모범 사례들을 떠올리며 그 길을 닮아 가기 위한 방안을 찾아보라. 그 신실한 노력의 시간 동안, 주님은 그들을 강력하게 이끄시듯 나의 약점까지도 단련하시고 꾸준히 변화시켜 가실 것이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Comparison Is a Key to Godliness

번역: 송유희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