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로 가득한 우리의 내면
by Jonathan Parnell2019-07-17

그 형태로만 볼 때, 사람에게 하나도 좋은 게 없는 게 바로 분노이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분노의 감정은 심장병의 가능성을 현저하게 높이는데, 분노가 폭발하고 2시간 이내에 심장마비 또는 뇌졸중이 발병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고 한다. 한마디로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화는 잘 내는 것은 건강뿐만이 아니라 관계의 면에서도 아주 위험한 약점이 된다. 하지만 분노는 결코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그건 나와 당신을 모두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분노 문제를 논할 때, 그 대상을 분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격한 분노를 분출하는 성향을 갖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느긋하며 모든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는 시각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 세상에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뿐이다. '왜 화를 내는 것이 당신에게 해로운가?'라는 글에서 신경학자인 네리나 라믈라캄(Neerina Ramlakham)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분노하는 사람들을 분류할 때,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과 화를 마음속에 품고만 있는 사람, 그렇게 두 부류로 나눠야 한다.” 자, 이제 던져야 할 질문은 '누가' 화를 내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모두 다 화를 내는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는 사랑과 관련이 있다.


분노 뒤에 숨은 사랑


분노가 이유없이 생기지 않는다. 먼저, 분노라는 감정은 우리가 아끼는 무언가에 위험이 닥쳤을 때 따라오는 반응이다. 팀 켈러는 그의 책, ‘분노의 치유’(The Healing of Anger)에서 이렇게 말한다. “분노 속 타락한 부분만 제거하면 분노는 실제로 사랑의 한 형태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대상에게 위협이 가해졌을 때 발생하는 사랑의 한 형태가 바로 분노라는 그의 진단은 여러 면에서 일리가 있다.


집 앞에서 노는 아이들 옆을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는 차를 향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차가 아이들을 위험한 상태에 처하게 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무장 단체인 보코 하람(Boko Haram)의 끔찍한 악행을 향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정말로 그들이 저지르는 만행은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위험에 처한 아이들 때문에 또는 세계 어디선가 일어나는 악행 때문에 분노하는 것처럼 우리의 분노가 올바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리고 무고한 희생자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에 화를 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 많은 경우 우리의 분노는 타인을 향한다. 팀 켈러(Tim Keller)가 말한 것처럼 이는 바로 '조절되지 않는 사랑'이다.


과도한 애정


'지나친 애정'으로 불리는 이 조절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해야 하는 당연한 어떤 대상에 너무 지나친 가치를 부여할 때 생긴다. 이는 인간의 삶 속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자녀를 향한 사랑이 도가 지나쳐서 그들에게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거나, 더 나아가서 그들의 번영이 없다면 내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에까지 이르는 부모가 있다. 이처럼 과도한 애정은 누구나 쉽게 엎어지는 위험이며 축복할 대상을 우상으로 바꾸어 버리는 사악한 변화이기도 하다. 


사랑이 조절되지 않을 때, 우리의 분노 또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런 경우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나중에 보면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것에 화를 낸다. 이에 대하여 팀 켈러는 이렇게 반문한다.


"누군가가 당신의 명성을 떨어뜨릴 때 어느 정도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왜 당신의 그러한 분노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향한 끔찍한 폭력을 볼 때보다 10배, 아니 100배나 더 강하게 일어날까?"

그 이유를 아는가? 만약 당신의 가치와 안전을 위해 정말로 바라는 것이 사람들의 승인이나 좋은 평판 또는 지위 같은 것이라면, 당신 자신과 당신이 마땅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의 화가 일어난다. 당신은 가져야 할 것을 가져야만 하는 사람이니까. 당신은 최고이니까. 당연한 내 것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누군가에게 조롱당한다고 느낄 때, 운전 중 누군가가 끼어들었을 때, 회사에서 내 아이디어가 묵살될 때, 또는 배우자가 나의 고생을 몰라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화를 낸다면 그건 바로 우리가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문제에 빠져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분노에서 탈출하는 세 가지 단계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분노가 어떤 특정인이 아닌 모두의 문제라면, 우리 모두가 종종 이런 조절되지 않는 사랑을 분출한다면, 어떻게 해야 이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여기 세 가지 탈출 단계가 있다.


1. 분노를 분석하라


먼저, 분노의 세부 사항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분노의 감정이 솟구쳐 오를 때 바로 멈추고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이처럼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반응할 만큼 지금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 나에게 발생하고 있는 것인가?” "마음에 이런 분노가 일어날 만큼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켈러는 이렇게 말한다. “화가 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런 질문을 한 번이라도 던진다면, 그래서 당신이 이런 분석을 할 수만 있다면, 대부분의 경우 화를 내는 진짜 이유가 다름 아닌 자존심과 자존감을 방어하기 위함임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2. 죄에 대한 애통함을 느껴라


이런 질문을 던진 후 우리는 당황할지도 모른다. 우리 내면을 덮고 있는 뚜껑을 열고 죄악으로 부패한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끔찍한 일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썩은 냄새가 난다고 해도, 우리는 아프지만 담대한 마음으로 그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와 당신은 내면의 부패한 것들이 결코 스스로를 정죄하거나 패배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의 조절되지 않는 사랑을 위해서 이미 대가를 지불하셨다. 우리가 져야할 진노를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모두 지셨고, 그 죽음의 사역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를 죄책감에서 해방시키셨다. 그리고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써 우리에게 죄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이 모든 사랑을 떠올릴 때, 우리에게는 슬픔이 따라온다. 나의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데에 얼마나 느린지를 깨달을 때 우리는 당연히 슬픔을 느낀다. 도시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살인보다 상처받은 나의 자존감 때문에 분노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상한 영혼을 돌보기 위해 손을 내밀기보다 나를 비난하는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을 흔드는 자신을 볼 때, 말할 수 없는 약자의 권리를 대변하기 보다는 나와 의견이 다른 누군가를 경멸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이러한 자신 때문에 슬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은혜를 받은 사람의 내면이라면 있어서는 안 되는 부패 때문에 우리의 더욱 깊은 애통을 느낀다. 나와 당신은 이제 이러한 슬픔을 안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고후 7:9-10). 우리는 그 회개의 자리에서 자신을 돌이켜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더 이상은 아닙니다. 주님, 더 이상은 아닙니다."


3.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라


조절되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가장 분명한 해결책은 당연히 사랑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쉬운 게 아니다. 어떤 대상을 잘못 사랑하던 방식에서 한순간에 벗어나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사랑해야 할 대상을 온전하게 사랑할 수는 없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세상 모든 지식을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밖에 없다(엡 3:14-19).


눈을 열어 예수님의 빛을 보고(고후 4:6) 그의 은혜에 압도될 때(고후 8:8-9), 비로소 우리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진정으로 중요한 대상을 향하게 되고, 가치 없는 것을 향한 내면의 분노는 잠잠하게 될 것이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What Our Anger Is Telling Us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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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nathan Parnell

조나단 파넬은 미국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 위치한 Cities Church의 선임 목사로 최근 'Never Settle for Normal: The Proven Path to Significance and Happiness'를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