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겪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종말론
by Ryan Martin2019-08-21

나는 전쟁으로 파괴된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지역에 위치한 작은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친다. 지난 여름, 특히 불안정하고 폭력이 만연하던 그 계절에 나는 종말론에 대한 연구를 지도하고 있었다. 연구의 주제는 이스라엘의 미래 희망이라는 맥락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찰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분이 선택한 민족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은 그분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멀리서 터지는 포격의 천둥이 방을 흔들기 시작했고, 바로 그때 읽던 미가 선지서를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미가서 4장 3절, 모든 민족이 시온 산에 모여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마지막 때’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만약에 AK-47과 RPG를 다 녹여서 말이야, 그걸 가지고…” 나는 어떻게 해야 이 은유를 더 멋지게 완성할지를 고민했다. “그 총을 다 녹인 철을 가지고 말이야, 농구 골대를 만든다면, 그럼 어떨까?” 물론 농구 골대보다 더 나은 것을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말을 들은 학생들은 모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


현대 콩고와 고대 이스라엘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콩고 동부의 언덕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평생을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산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있게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공부하러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고통받는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이곳을 더 밝은 미래로 인도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정치, 경제적 현실은 평화와 발전을 바라는 모든 사람을 좌절시킨다. 지금 이런 콩고의 현실처럼 미가 선자자가 그리던 미래의 모습과 동떨어진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전쟁으로 고생하는 콩고의 기독교인은 도대체 미가서의 이런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스라엘도 미가 선지자의 시대에 전쟁의 공포를 겪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칼과 창으로 다스리는 제국의 억압 아래에서 살았다. 평화는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미가서 4장 3절의 주님은 지금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말씀하신다. 파괴의 도구를 녹여서 생산과 번영의 수단으로 만드시겠다고! 이것은 마치 혼돈 속에 말씀을 불어넣어 우주를 창조한 신(창 1:2), 포로가 된 민족을 해방시킨 신(출 14:30),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은 신(겔 37:10),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는 신인 하나님을 떠오르게 한다. 미가 선지자를 통해 주신 이 우주적인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뤄졌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콩고 동부의 희망이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를 새롭게 만들어 가신다.

 

이미 그러나 아직


약속을 지키실 하나님을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압박하는 질문이 남아 있다. 미가가 예언한 그 영광스런 미래가 이미 도래한 것인가? 신약학자들은 지난 수 세기 동안 이 질문을 놓고 씨름했다. 도대체 신약성경은 이미 실현된 종말을 어느 정도까지 보여 준다는 것인가?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되었다고 본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실 그때를 기다렸던 것인가?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이미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그리스도가 오셨음을 믿는다.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에,’ ‘너희 가운데에,’ 심지어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은 ‘성취’와 ‘완성’이라는 말을 사용할 뿐 아니라, 종종 선지서를 인용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날’이 왔다고 분명하게 언급한다.


하지만 오늘의 상황 앞에서 나와 당신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는가? 우리의 현실이 미가 선지자가 본 환상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기 위해 굳이 전쟁터로 향할 필요는 없다. 진정으로 이러한 현실이 이미 도래한 ‘주의 날’이라면, 그건 참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고난당하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교회는 싸움 끝에 갈라지며, 세상의 권력은 점점 더 기독교에 저항하는 모습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다. 세상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은 듯하다. 폭력과 불확실성 속에 서 있는 콩고인들 중에 과연 누가 이렇게 외칠 수 있을까? “여러분,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미 도래한 그러나 아직은’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바로 그 사이의 긴장 상태에서 살고 있다.


주님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오늘날 콩고의 동부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새로운 세대와 영혼들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모든 폭력과 죽음이 중단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이 안겨 줄 평화의 그날을 말이다.


종말론의 중요성


나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야말로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하늘과 땅의 모습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하곤 한다. 그러므로 죄와 죽음으로 훼손되지 않은 새로운 창조물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미리 보여주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스스로여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 즉 타락한 피조물을 창조의 목적에 맞도록 영광스럽게 변화시키시는 그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 우리가 부여받은 이 사명이 얼마나 고귀한가?


종말론은 왜 중요한가? 이는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 맡은 자들로서 선교할 때 동기를 주고, 방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선교의 목적까지 알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타락한 세상에서 겪는 가장 큰 괴로움은 무엇인가? 당신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가 선지자의 예언과 우리의 현실이 가장 동떨어져 보이는 현장은 어디인가? 하나님의 왕국이 온전하게 도래했을 때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를 상상해 보라. 칼과 창이 쟁기와 갈고리가 되는 그 세상을 상상해 보라.


우리 주변에 가득한 어둠, 그 아래에서의 좌절과 불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세상을 다시 만드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 좌절과 불만은 당신이 죄악을 싫어하고 또한 죽음으로 처참해진 이 세상이 당신의 본향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생겨난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에 대한 굶주림은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도래할 그분의 왕국을 향해 더욱 충실히 봉사하도록 만든다. 성령께서 변화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이 부서진 현실에 하루라도 빨리 완전한 미래를 가져다주시기를 기도하라.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종말론이자 그 종말론을 향한 우리의 자세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그 약속이 온전히 성취되는 날까지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종말론이고 이를 믿는 우리의 태도인 것이다.


낙담과 갈등의 종식


2017년 말, 내가 사는 지역에서 전투가 더욱 격렬해졌다. 그리고 우리 공동체는 그 전쟁의 무게에 짓눌렸다. 그때, 내 친구는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편지를 썼다.


“이날 당신은 갈등과 투쟁의 세대를 지나 마침내 아주 오랫동안 지연된 평화가 찾아온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 무거움과 폭압이 사라지고 희망과 기쁨이 회복된 그 지역의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폭탄과 총성으로 가득하던 그곳은 이제 조용하고 평화롭다. 드디어 아름답게 조화되는 삶이 회복되었다. 이날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안전한 가운데에 거하는 사람들, 각자의 생업에 충실하며 가족을 돌보는 사람들, 더 이상 공포와 절망에 젖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단순한 삶을 위협했던 폭력과 부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한 미래의 희망일 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말씀의 약속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그들이 사랑하는 나라를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칼을 쟁기로 바꾸시는 그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Eschatology in an Age of Artillery Fire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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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yan Martin

라이언 마틴은 Beeson Divinity School에서 석사학위(MDiv)를 받았으며, 현재 Université Chrétienne Bilingue du Congo (UCBC)에서 신학과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