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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을 떨쳐버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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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Matthias Lohmann  /  작성일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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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Pexels from Pixabay

“나의 믿음 약할 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이다. “나의 믿음 약할 때, 주가 붙드네”라는 가사가 언제나 큰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음을 크게 흔드는 인생의 풍파 앞에서, 우리는 종종 그리스도가 나를 붙드신다는 그 확신을 잃어버린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의심 때문에 힘든 싸움을 벌인다. 우리가 잘 아는 기독교 지도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은 최초의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예수님을 향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선언했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다]”(34절). 또한 요한이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36절)라고 선포함으로써, 처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선언 이후,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27-30).


이처럼 세례 요한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의심을 품은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자신이 소망대로 삶이 흐르지 않던 때였다. 나사렛에서의 설교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61장 1-2절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중략]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18-21). 하지만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적어도 그 예언의 일부는 자신에게 실현되지 않는다고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헤롯궁전에 갇혀 있는 동안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그리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는 말씀이 언제 실현될지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부분은 이처럼 소망하는 바와 현실 사이의 고통스러운 간극을 느낀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크리스천은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소망하는 기쁨 속에서 그분께 모든 것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의 여정 속에서, 한때 매우 가깝고 깊던 주님과의 관계가 새삼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또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 나를 붙잡아 달라고 주님의 이름을 아무리 외쳐 보아도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성적으로 순결하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이 알맞은 배우자를 보내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들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당신은 가족을 꾸리고 싶은 열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홀로 남아 있다. 이처럼 주님이 당신의 인내와 순종에 아무 보상도 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또 다른 예로 당신은 주님을 섬기듯이 타인을 섬기는 온유한 크리스천이며, 직장에서는 맡겨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는 부지런한 직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가족과 교회를 섬기는 일로 인해 당신은 점점 더 피곤함을 느낀다. 주님께 큰 힘을 달라고 기도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정반대의 현실이 이어지고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당신이 정서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고갈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많은 크리스천은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과연 그분은 내 기도를 들으실까? 주님은 나를 돌보시는 않는 것 같은데, 내가 진정 그분의 자녀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도 이러한 의심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름을 느꼈을 것이다.


오늘날의 문화는 의심하는 것을 마치 멋진 행위처럼 여긴다. 다시 말해, 현대 문화에서는 의심이 매우 이성적이고 성숙한 사고로 인식된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의심이 증가하는 만큼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에도 힘쓰고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은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은 의심이 들 때, 노력 없이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요한으로부터 바로 이러한 차이를 배워야 한다.


그는 감옥 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일에 관하여 모두 듣고 있었고, 마음속의 의심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그는 곧 두 명의 제자를 예수님께 보냈는데, 이는 자신이 메시아라고 가르쳤던 그분이 바로 예수님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눅 7:20)라고 물었다. 


처음에는 예수님이 그들을 못 본 체하시는 듯 보였다.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21절). 하지만 이는 그분이 주신 일종의 대답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곧이어 그들에게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22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메시아를 예언하는 구약성경의 몇 구절을 가리키며 자신이 그 예언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셨다. 그분은 포로된 자들의 자유함과 모든 사악한 것에 대한 심판의 때가 왜 아직 임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시지 않았다. 또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품었을 법한 질문에 대해 모두 답하시지도 않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분은 요한에게 그가 아는 모든 것을 확실히 기억하고 이를 통해 그의 의심을 극복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의심이 생기기 시작할 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확실한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 없이 그저 의심만 하지 말라. 대신 의심을 잠재우고 확신을 얻게 하는 증거를 찾아보라. 다시 말해, 확실한 것을 찾으라. 의심이 계속 증폭되도록 놔두는 것은 마치 자라나는 잡초를 그냥 두는 것과 같다. 잡초는 작은 잎에서부터 시작하지만 뽑아내지 않으면 정원 전체를 차지하는 성향이 있다. 의심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희미하게 시작된 의심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그 희미함이 결국 당신의 영혼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  


확실한 것을 찾으려는 노력에 덧붙여,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은 가능하면 반복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대신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당신이 확실하게 아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보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요한의 제자들에게 그분의 사역을 먼저 보게 한 후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그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들로 하여금 의심을 떨쳐내도록 이끈 것은 물론이다. 이렇듯 그분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우리의 메시아이다.


예수님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혹은 즉각적으로 우리의 기대에 답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의 바람과 다른 응답이 결코 그분을 의심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의 기대치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분이 요한이나 다른 많은 사람들의 소망에 따르시지 않았음에 감사해야 한다. 만약 그들의 기대에 응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러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분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명백하게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분이 진정한 메시아임을 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오직 그리스도가 행하신 희생으로 우리는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았다. 오직 그분이 행하신 사역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오직 그로 인하여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그분의 자녀인 우리들은 언젠가 영원한 영광의 자리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모든 슬픔과 고통 그리고 눈물을 뒤로하고 말이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함으로써 말씀을 마치신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눅 7:23).


의심하는 자들이여, 예수님이 하신 이 약속을 믿기 바란다. 그분이 주신 영광스러운 진리를 확신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의심을 풀도록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라. 당신에게 확실한 진리를 가르치고 이를 기억하도록 인도할 교회를 찾아보라. 교회는 찬송과 예배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진실로 그분의 모든 자녀를 붙잡으신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줄 것이다.


맷 머커(Matt Merker)가 작사한 “나의 믿음 약할 때”의 세 번째 가사를 들어 보라(가사 원본-역주). 


“피를 흘려 죽기까지 주가 나를 붙드시네

나의 죄를 지심으로 주가 붙드네

주가 오실 때에 우리 확신할 때까지

영원 생명 주심으로 나를 붙드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he Way Out of Doubt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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