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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을 완성한 성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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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Fred Sanders  /  작성일 201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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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enjamin Wong on Unsplash

삼위일체론은 한 분의 하나님 안에 세 위격이 존재하며, 각 위격은 모두 동등하고 영원히 공존하며 또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기독교 교리이다. 즉 삼위일체론은 크리스천에게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을 동등하게 인식하고 섬기도록 촉구한다.


하지만 기독교의 가르침은 또한 성령을 삼위의 세 번째 위격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사실, 성령론은 오랜 기독교 역사의 흐름 안에서 다른 교리들이 먼저 세워진 이후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고 이전의 주된 기독교 교리에 오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에 관한 교리가 추가됨으로써, 기독교 교리는 오히려 더욱 깊고 견고해졌을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구원론은 그 의미를 더욱 밝히 드러내게 되었다. 즉 변한 것은 없지만, 모든 것이 더 나아졌다.


몇 개의 예를 들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 보자.


1. 니케아 신조


성자에 대한 믿음을 확증한 니케아 신조(The Nicene Creed)는 단지 그 말미에 “그리고 성령을”(and then the Holy Spirit)이라는 어구를 추가하는 것으로 성령에 대한 언급을 마감한다. 하지만 이후 56년 동안 이어진 격변의 시기가 지나고 381년 콘스탄티노플 제1차 공의회에서 이 교리가 확장되었을 때, 소소하게 보였던 이 세 번째 조항은 오늘날까지 우리가 외우는 니케아 신조 신앙 고백문으로 꽃피게 되었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오시어,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비록 니케아 신조는 성령에 관한 최소한의 고백을 포함하지만, 바로 이 고백이 초석이 되어 그 위에 풍성한 성령론이 세워졌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론은 니케아 신조를 시작으로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제1차 공의회를 거쳐 제대로 평가 받게 되었고, 이를 통해 더 많은 기독교 진리가 선포되었으며 또한 전체 선언문은 보다 깊고 풍부하게 완성되었다. 물론 이에 대해 콘스탄티노플의 사제들이 한 발 뒤로 퇴보했다고 평가하는 대조적인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바는, 성령에 대한 인식과 논의가 처음부터 작으나마 존재했기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늘의 결과에 이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더 깊이 살펴보기 위해, 성령에 대해 조금이라도 언급하는 신학의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성령을 전혀 포함하지 않는 사례를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논리는 정통 기독교 교리에 저촉되거나 혹은 부분적인 수정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경우이든지, 성령을 제외한 채로 기독교 교리를 논할 수 없다. 내가 이와 관련하여 특별히 집중하는 부분은, 기독교 교리가 형성되던 초창기에는 성령에 대한 언급이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에 대한 고백과 중요도가 점차 확대되었다는 사실이다.


2. 아타나시우스


니케아 신조와 그 사제들을 지지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성령에 관한 교리를 발전시킨 사제 중의 한 명이다. 사실 그는 신학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성자 하나님의 온전한 신격, 즉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동등한 신격을 끊임없이 강조하였고 또한 이를 니케아 신조의 발원지인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 받도록 하는 데에 집중했다. 비록 그는 가끔씩 성령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에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 이론을 이단으로 공격하며 투쟁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트무이스의 세리피온과 여러 차례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는 상대의 요청으로 성령의 위격과 그 사역을 설명하는 작업에 헌신하기 시작한다. 아타나시우스는 이 서신들을 통해 성령은 곧 하나님이라고 강력하게 선포한다. 성령에 대한 강하고 확신에 찬 고백은, 그가 아리우스 사태를 겪으면서도 내적으로는 성령에 대해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는 성령을 좀 더 본격적으로 논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론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행했고, 이를 통해 삼위일체론의 윤곽을 명확하게 다듬는 업적을 이루었다. 어쩌면 윤곽이라는 용어는 그의 성취를 설명하기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은유일 수 있다. 왜냐하면 성령론을 견고하게 세우는 과정에서 아타나시우스 신학의 모양과 형태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령론의 확대는 그 신학의 변형이 아닌 심화를 이루었다.


3. 칼빈의 기독교 강요


존 칼빈(John Calvin)의 ‘기독교 강요’(Institutes)가 만들어진 역사도 이와 유사한 흐름을 보여준다. 다양한 이유들로 인하여,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3권을 저술하기까지 성령에 대한 논의를 깊게 진행하지 않았다. 칼빈은 성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이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지를 주로 논했고, 이는 믿음에 의하여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기독교 강요 제3권을 저술한 이후의 시점부터, 그는 성령의 신비한 사역을 언급하며 성령론의 권위를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4. 신약성경


성령에 대한 성경 속의 언급도 이와 유사한 흐름을 보여 주기 때문에, 성경의 자료와 기록을 따라가면 기독교 역사에서 성령론이 세워진 경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아들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고 또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 부분에서 기독교 신론은 첫 정점에 도달한다. 하지만 마태복음은 같은 장에서, 성령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역을 이어 가기 위해 그리고 우리 곁에 여전히 함께 하기 위해 보내신 분이라고 사실을 암시하고, 또한 성령을 세 번째 위격으로 성부와 성자의 두 위격에 포함시킨다. 이로써 기독교 신론은 삼위일체론으로 다듬어진다. 요한복음 역시 유사한 흐름을 따른다. 14장은 말씀과 하나님,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양자 관계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16장은 성령에 일관되게 집중한다. 또한 로마서도 이와 동일한 패턴을 보여 준다. 즉 로마서는 먼저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속죄를 다룬 후, 8장에서부터 성령을 자세하게 언급하며 영광의 찬가와 복음 전도에 대한 논의를 정점으로 이끈다.


5. 언약의 성취


구원에 대한 섭리의 관점에서 이 글의 논의를 마치고자 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초기 사역에서 결코 부재하지는 않았지만, 명확하게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령의 성품과 그분의 일하심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선포와 가르침이 뒤따르는 상황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이 또렷하게 성취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마이클 호튼(Michale Horton)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령론의 주요한 두 가지 축은 언약과 종말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성령을 도외시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태도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성령론을 왜곡시키거나 혹은 성령론을 조직신학의 기초이자 선두로 앞세우는 것도 잘못이다. 성령론이 명확하게 확립되기 이전에 신학의 주요 교리들이 세워진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역사이자 흐름이다. 또한 청교도 신학자들은 교회 사역에 대해 교훈할 때에 이러한 가르침의 순서를 신중하게 따랐다.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은 자신의 저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The Knowledge of God the Father and His Son Jesus Christ)에서 양자론에 경종을 울린다.


“성부와 성자 그리고 하나님의 세 번째 위격인 성령이 있으며, 나의 초점은 그분을 향할 것이다. 그분은 다른 두 위격과 함께 오직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성령에 관한 연구에 전념했고, 이 책을 포함하여 성령론에 대한 다른 저서들도 집필함으로써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기독교 교리가 세워진 역사 속에서 우리는 성령론의 시작과 확장을 볼 수 있고, 또한 이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견고해진 기독교 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 . . And Then the Holy Spirit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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