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심장을 따르라'는 시대에 교회 시작하기
by Matt Hodges2019-08-23

문화적 상대주의가 사고를 지배하는 현대 문화에서 진리는 곧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진리는 ‘어디인가’ 존재하겠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그것만을 유일한 진리로 혹은 가장 좋은 진리로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문화적 상대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간 사회 현상을 마주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는 상대주의를 넘어 ‘표현적 개인주의’라고 알려진 새로운 문화의 지배 아래에서 살아간다. 상대주의는 진리의 고정불변을 말하는 주장을 꼬집으며 이를 교만 혹은 아집으로 간주하지만, 표현적 개인주의는 그러한 주장을 억압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만약 상대주의자가 “진정 참된 것이 무엇인지 누가 정의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면, 표현적 개인주의자는 ‘나’라고 대답할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라. 표현적 개인주의에 둘러싸인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제 힘과 자유는 부여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 발견하는 가치가 되었다. 팀 켈러(Tim Keller)는 이와 관련하여 이렇게 언급한다. “우리 문화에 여전히 남아 있는 영웅적인 이야기는 자신의 내면에 관한 스스로의 이야기뿐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스스로 정의하며, 사회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모습을 집중적으로 추구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상대주의로부터 더 나아간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진리는 개인이 정의하기 나름이며, 그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장소는 다른 어느 곳이 아닌 바로 자신의 내면인 시대가 되었다.


교회에 스며드는 표현적 개인주의를 경계하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상대주의를 인지하고 심지어 이에 저항한다. 현대 기독교는 진리를 주관적인 대상으로 간주하는 상대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변증법과 추론적 접근을 충분히 다루어 왔다. 하지만 표현적 개인주의는 상대주의에 비하여 좀 더 은밀하다. 그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면서도 마치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목표와 열망을 위하여 예수님의 능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유혹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확신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마음이 곧 그 진리의 원천인 것으로 여기도록 부추긴다.


교회에 이러한 이념이 스며드는 것을 생각만 해도 정신이 번쩍 든다. 회중은 개인주의를 밀어내기보다는 종종 미묘하게 이를 조장하고 또한 즐긴다. 주일 예배에서부터 소그룹 모임에 이르기까지, 만약 당신이 교회에서의 모든 삶을 개인주의적인 방향으로 이끈다면 이는 자기 자신을 경배하는 행위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다. 개인주의가 교회에 침투하는 상황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입으로는 “그리스도가 왕”이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네가 왕”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


성경에서 살펴보자면, ‘자기’와 ‘교회’라는 단어만큼 서로 상반되는 용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예수님이 우리를 그분의 교회로 부르실 때 부여하신 임무는 바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 ‘부인’하는 것이다(마 16:24-25).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들을 열거하실 때, 그 목록에 진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주님이 언급하신 것은 오직 우리의 그릇된 증거와 사악한 생각이다.


또한 바울의 서신서를 살펴보라. 우리는 거기에서 바울이 타인과의 온유한 연합, 그리고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겸손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교회에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경의 관점에서 찾는다면, 교회는 표현적 개인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진리는 상대적이지 않고 또한 자기 생성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 진리는 인간의 형태로 존재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또한 우리의 자아 역시 그분을 위해 죽도록 하신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묻힐 때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은 바로 거짓을 믿고, 자신이 바라는 결과를 열망하며, 진리를 모른 채 황야를 헤매는 자아이다. 우리를 위해 그분이 죽으신 것과 같이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자신의 자아를 죽여야 한다. 예수님이 성취하신 새 생명은 자신을 부인하는 거듭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 거듭남은 스스로의 마음이 갈망하는 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 개척은 반문화적이다


교회 개척은 예수님이 주신 사명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 안에서 이러한 사명을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공동체의 연합을 향한 극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헌신은 표현적 개인주의를 저해한다. 왜냐하면 공동체를 위한 헌신은 자기의 신념, 개인적인 선호, 스스로의 욕망을 교회의 중심에 두도록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를 세우며 마주하는 여러 어려운 도전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행위를 내려놓도록 훈련받는다. 그리고 이는 비록 고통스럽고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우리로 하여금 진리와 선함의 결정권자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교회를 개척할 때, 본질적인 가치만을 추구하고 불필요한 것은 제거하라. 프로그램 제작과 운영 자체가 중심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교회를 개척할 때에는 단순성이 요구되며, 또한 자기 부인이 뒤따라야 한다.


성도가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태도를 버릴 때, 그들은 비로소 복음이 주는 아름다운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설교자가 신실한 순종을 바탕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전할 때, 설교자와 성도 모두 설교의 ‘스타일’이 아닌 그 안의 복음에 집중하게 된다. 교회를 개척하려면 복음의 진리를 삶의 핵심으로 여기는 생각과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복음의 메시지와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 앞에, 변덕스러운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보다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교회가 개인주의에 잠식되는 이때, 우리는 건강한 교회를 개척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게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의 기회와 장을 제공해야 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진리란 자기 마음속의 무언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사실을 배워갈 것이다. 또한 우리가 참 진리를 앞세울수록, 표현적 개인주의가 말하는 진리는 가짜임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Starting Churches in a ‘Follow Your Heart’ Age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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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Matt Hodges

매트 호지스는 Dallas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하고 텍사스주에 위치한 Bridge Point Community Church의 개척을 도왔다. 저서로 'A Living Hope: Examining History’s Most Important Event and What It Means for the World'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