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시대가 우리를 장님으로 만든다
by A. Trevor Sutton2019-07-25

우리는 하루 중 평균 얼마나 되는 시간을 미디어와 함께 보낼까? 스마트폰, 태블릿, 텔레비전 그리고 노트북에 쏟는 시간이 하루 평균 11시간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는 2살 미만의 아이들은 스크린을 봐서는 안 되고, 2살에서 5살 사이의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 시간을 하루에 한 시간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권고 내용을 발표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스크린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이라는 사실이다. 한 최근 보고에 의하면, 성인은 하루에 평균 150번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한다. 스크린에 쏟는 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스크린 보는 시간을 추적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까지 출시한 회사가 있을 정도이다.


우리가 스크린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과도하다는 것은 아주 명확한 사실이다. 디지털 기술은 중독성이 강하기에 무려 하루의 반 이상을 반짝거리는 스크린을 보면서 보내는 것은 이제 우리가 그만두어야만 한다.


그럼 대신 뭘 봐야 할까?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봐서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다시 보도록 배워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이폰을 가진 적 없는 한 철학자로부터 들을 수 있다.


20세기 독일의 가톨릭 철학자인 조세프 피퍼(Josef Pieper)는 보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사람이다. 피퍼는 이 세상 속에 있는 ‘시각 소음’이 우리로 하여금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각의 과잉’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 디지털 시대의 70인치 텔레비전 스크린, 인스타그램 사진, 그리고 엄청난 메가픽셀 화면들이 우리를 장님으로 만들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노래할 수 있다’(Only the Lover Sings)에서 피퍼는 이렇게 썼다. “나는 지금 인간의 눈이 가진 생리적 민감성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가시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보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진짜, 진실,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는 우리의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막혀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유명한 실험은 이런 피퍼의 주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하얀 셔츠를 입은 세 명과 검은 셔츠를 입은 세 명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비디오를 보여준다. 실험 주제는 하얀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몇 번이나 패스를 하는지 세는 것이었다. 비디오가 중간 정도 진행되었을 때, 고릴라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가슴을 치고는 곧 다시 사라졌다. 그런데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중 무려 반이 이 이 고릴라의 등장을 아예 기억하지 못했다. 패스 숫자를 세는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고릴라가 나왔는데도 그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시각 소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보지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 하루에 151번이나 전화기를 확인하고 있으니, 나무에서 싹이 움트는 그 조용하지만 희망에 찬 순간을 간과하고 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스크린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우리의 눈을 태양빛의 아름다움과 대지의 푸르름에서 스크린으로 빼앗아 버린다. 페이스북의 끊임없는 알람은 우리 앞에 있는 이웃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장님이 되면 심각한 후유증이 따라온다. 피퍼가 말했듯이, “어느 정도의 한계 수준을 지나 바닥에 내려가면 영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완전성이 위태롭게 되는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요즘 우리가 바로 그 위험한 바닥에 도달한 것 같다.”


참으로 주변에 가득한 ‘시각 소음’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의 의미를 가진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 119:37).


어려운, 그러나 불가능하지 않은


디지털 시대에 다시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도 않다.


비록 스마트폰 시대 이전에 살았지만 어떻게 해야 제대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피퍼의 충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도움을 준다. ‘시각 소음의 시대’에서 보다 잘 보기 위해서 그는 다음 두 가지 행동을 권고한다.


첫 번째로 ‘시각 단식’은 다시 보는 데에 도움을 준다. 피퍼에 따르면, “금식과 금욕 의식을 통해서 일상 속 의미없는 시각 소음을 멀리 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요즘으로 말하면 ‘디지털 단식’이다. 하루 또는 일주일 중 시간을 정해서 스크린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 의미없는 시각 소음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와 비슷하게 스마트폰을 꺼두는 것도 과도한 전화기 사용을 줄이는데 도움을 주는 또 하나의 ‘시각 단식’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로 예술은 디지털로 인해 손상된 우리의 시각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술 창작에 몰두하거나 또는 감상하는 것은, “보다 깊이 있고 수용적인 비전, 보다 강렬한 인식, 보다 선명하고 명확한 이해,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한 끈기 있는 개방성, 달리 말해서 이전에 간과되었던 것들을 보는 눈”을 갖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피퍼는 강조한다. 예술가라면 표면에 있는 아주 사소한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보는 능력과 함께, 여유를 갖고 감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예술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이야말로 급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스크린을 옮겨 다니며 도파민 호르몬을 자극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레트(René Magritte)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The Treachery of Images)은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다시 보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지를 알려준다. 마그레트의 이 작품은 파이프 그림과 함께 이런 불어가 쓰여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 당연히 그림은 파이프가 아니다. 그림은 그냥 파이프의 이미지일 뿐이다. 마그레트는 이렇게 우리의 눈을 열어준다. 비록 작지만 다시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그림은 파이프가 아니라는 그림의 본질에 관심을 기울이게 함으로, 그림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파이프의 실재를 보도록 만든다. 이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파이프와 더불어 그림까지, 이 두 가지를 다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


시편 저자는 건강하게, 그리고 주의 깊게 보는 법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하나님의 창조가 가진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비록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디지털 시대에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다시 보기 위한 노력’은 가치 있는 싸움이다. 우리 모두 ‘시각 소음’을 제거하고 갇힌 우리의 눈을 열어야 할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눈앞에서 다시금 펼쳐지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Is Our Visual Age Making You Blind?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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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A. Trevor Sutton

A. 트레버 서튼은 미시건 랜싱에서 루터교 목사로 사역하고 있으며 Concordia Seminary에서 박사학위 과정 중이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저서로는 'Clearly Christian과 Authentic Christianity'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