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기쁨
by Greg Morse2019-08-08

로이할아버지는 몸을 겨우 움직일 정도로 연로하다. 하지만 그는 아내를 향한 사랑 앞에서 아마추어 정원사가 된다.


90세인 할아버지는 새벽마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밤사이 나무 뿌리가 아내의 무덤을 파고들었는지 확인하고 그것을 잘라내기 위해서이다. 그녀가 주님께로 떠난 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로이할아버지는 여전히 아내와 함께하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길을 나섰고, 또한 사람들에게 그녀의 지난 날에 대해 마치 어제의 일인 듯 생생하게 말해 주었다. 그는 평생 아내에게 정성을 다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녀를 아끼기 위하여 자신의 연약한 등을 기꺼이 구부린다.


지난 50년 동안 이어진 로이할아버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내게 감동을 준다. 그는 아내와 교회에 다니던 기억, 아이들을 키우며 함께 늙어가던 추억, 그리고 함께 웃고 울며 기도했던 순간을 내게 말해 주었다.    


또한 아내와 처음 만난 이야기, 그리고 젊은 시절 길 한가운데에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키스한 아름다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대화하는 내내 위아래로 까닥거리는 그의 눈썹과 마치 멜로디처럼 흐르는 억양, 그리고 그리움으로 촉촉해진 두 눈이 모든 이야기의 진실함을 드러냈다. 아내로 인한 그의 기쁨은 아직도 소멸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 즐거움은 할아버지의 미소로 터져나왔고, 그의 말 속에 녹아 있었다. 또한 그 기쁨은 매일 아침 묘지의 흙으로 바지가 물드는 것조차 개의치 않게 했을 것이다.


이제 아내는 손에 닿지도, 그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먼 곳에 있지만, 로이할아버지의 가슴은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노래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은 당연히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감동시킨다.


아내로 인한 넘치는 기쁨은 그에게 분명 천국의 기쁨을 전해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즉 그분께 구속된 자들로 인한 충만한 기쁨을 젊은 남편의 열렬한 애정에 비유하셨다. 로이할아버지처럼 경건한 사람들이 소유한, 갈수록 커지는 열정 말이다.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 62:5).


그리스도는 그분의 신부인 우리로 인해 즐거워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토록 그분이 주시는 사랑의 열정에 빠져 있을 것이다. 잠시, 다른 사람들이 나와 아내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생각해 본다. 하나님이 그분의 신부로 인해 기뻐하시는 것과 같은 사랑의 관계를 우리 안에서도 볼 수 있을까? 주님이 그분의 신부를 기뻐하신다(사 62:4)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도 내 아내를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혹시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이 부족하여,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잘못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러한 생각을 모든 남편들의 상황으로 확장시켜 본다. 당신은 아내를 기뻐하는가? 결혼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열정을 그려 내고 있는가? 어떤 깃발이 그녀 위에서 펄럭이도록 하는가? 아가에 나오는 아내는 “그 사랑은 내 위의 깃발이로구나”(아 2:4)라고 증언한다. 우리의 아내들도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까? 형제들이여, 아내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지 않기를 바란다.   


“무관심, 가혹함 그리고 후회의 깃발이 내 위에서 펄럭이는구나.”


주님, 우리를 도와주소서.


원치 않는 여성과의 결혼


야곱의 첫 번째 결혼 이야기는 아마도 읽는 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야곱이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창 29:30). 성경에 따르면, 라헬은 아름다웠던 반면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덜 매력적이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삼촌 밑에서 무려 7년을 일했지만,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다]”(창 29:20). 하지만 삼촌은 야곱을 속여 그가 라헬 대신 레아와 결혼하게 만들었고, 야곱은 신부인 레아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그가 레아와 라헬 모두와 결혼한 후에도, 야곱은 남은 생애 내내 레아의 머리 위로 라헬이 얻은 것과는 다른 깃발이 펄럭이도록 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모습을 모두 보셨다.


레아로 하여금 자신의 형상과 관심을 소유하도록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그들의 결혼 생활에서 무엇을 보셨을까?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고,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다(창 29:31). 하나님은 그분의 딸이 그토록 괴로워하는 것을 보시며, 즉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그녀의 애통함을 보시며 라헬 대신 레아에게 임신의 기쁨을 허락하셨다(창 29:32).    


그녀는 아들을 얻을 때마다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중략]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창 29:32, 34)라고 소망했다. 이러한 기대를 품으며 레아는 아이를 낳고 또 낳았다. 하지만 네 번째 아들 유다를 낳았을 때, 그녀는 결국 남편의 사랑을 대한 간절한 바람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린다.


비록 이 이야기는 남편의 사랑을 우상처럼 여기는 이들에게 경고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레아의 머리 위에서 업신여김의 깃발을 흔든 자가 야곱임을 기억해야 한다. 레아가 남편의 기쁨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하여, 우리가 그녀를 우상숭배자로 단정할 수 있는가? 오늘날 레아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마도 그녀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마지막으로 한 선언은 그 성화된 표현의 정도만큼 남편에 대한 많은 고발도 함께 담고 있을 것이다.       


레아를 향한 야곱의 모습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남편들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아내는 결코 당신에게 무시당하거나, 멸시받거나, 비교를 당하거나, 혹은 추궁을 당해도 괜찮은 존재가 아니다. 아내는 당신의 살과 뼈이다. 또한 당신의 사랑스럽고 우아한 암사슴이고, 백합이며,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당신이 갈망하는 우물이자 기쁨의 샘이다. 그러므로 아내는 당신에게 사랑받기 위한 간절함 때문에 자녀를 낳아주거나, 당신의 직장 생활을 지원하거나, 또는 매력적인 몸매를 유지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심지어 당신은 사랑하는 여성, 곧 당신은 라헬과 결혼하지 않았는가.


모든 남편을 위한 기도문


예수님은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버려두지도, 무시하지도 않으신다. 또한 예수님은 원치 않는 신부와 결혼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아내에 대한 익숙함으로 처음의 열정을 잃는 분도 결코 아니다. 신부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며, 그 영원은 마치 한 순간처럼 동일하다. 주님의 신부인 당신과 교회는 그분의 포옹을 얻기 위한 어떠한 책략도 꾸밀 필요가 없다. 그분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신부를 위하여 온 힘을 쏟았고, 아내의 죄악으로 인한 죽음의 뿌리를 잘라내기 위하여 찔림을 당하였으며, 그녀를 영원한 무덤으로부터 보호하셨다.  


이것은 놀랍고도 거룩한 사랑이다. 이 땅에서의 삶에 비유하자면, 이는 로이할아버지처럼 경건한 남편이 보여 주는 그러한 사랑이다.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 62:5).


아내로 인한 남편의 기쁨은 곧 우리로 인한 하나님의 기쁨이다. 우리의 결혼 관계는 곧 그분과 교회와의 관계이다(엡 5:32). 우리는 로이할아버지처럼 사탄과 육체 및 세상의 유혹에 용감하게 대면하여,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 위로 ‘그녀는 나의 기쁨’이라는 깃발이 펄럭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모든 신랑의 본이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아내는 나의 요리사이며 청소부”라는 깃발을 세워서는 안 된다. “아내는 내 자녀들의 어머니”라는 깃발도 아니다. “아내는 내가 선택한, 나의 가장 사랑하는, 내게 가장 좋은 사람”이라는 깃발이어야 한다. 신부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선언에서 드러나고, 우리가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를 통하여 울려 퍼질 것이다.

  

남편들이여, 이렇게 기도하자. “주님,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를 더욱 기뻐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May She Be My Delight: A Prayer for Every Husband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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