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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으로 이루어 가시는 구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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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Richard D. Phillips  /  작성일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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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구약성경 다음에 신약성경이 나온다는 정도는 안다. 성경에 대해서 조금 더 아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모세오경이 나오고 따라서 역사서, 시가서, 그리고 선지서가 나온다는 정도를 안다. 신약에 들어서는 가장 먼저 복음서가 나오고 이어서 사도행전, 서신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뒤따른다는 것도 안다. 이런 순서는 교회가 정경을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과연 성경의 구조 자체가 구원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충분할까? 종교개혁 신학자들이 오랫동안 이해했듯이, 성경은 '언약 신학'이라고 부르는 데 필요한 충분한 구조를 제공하고 있다. 언약 신학은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을 통해서 구속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신학이다. 그러나 언약 신학은 단지 종교개혁자들만이 바라본 성경의 이해가 아니라 성경 스스로가 드러내는 구원의 방식이다.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백성의 역사


미국 역사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여러 가지 다양한 접근법으로 바라볼 수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는 과정을 전쟁이라는 기본틀을 통해서 이해할 수도 있고, 또는 대통령 제도, 놀라운 발명품들, 혹은 개인의 자유 확대라는 틀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이해를 위한 이런 기본틀은 미국 역사를 구성하는 많은 데이터를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가? 성경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가? 최근 나는 비행기에서 바로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할 기회를 만났다. 한 젊은 유대인 여자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내게 이렇게 물었다. “기독교인은 뭘 믿나요?” 이 얼마나 놀라운 기회인가? 나는 다양한 교리를 통해서, 그러니까 창조와 죄, 심판 구원 그리고 영생에 대해서 설명할 수도 있었다. 교리를 통한 접근은 꽤나 신선하고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교리 대신 성경 속 이야기를 풀어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언약 신학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내가 이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그녀가 가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기독교 신앙을 연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이 그분의 구원 메시지를 자신의 백성들에게 알려줄 때 쓰셨던 바로 그 방법이기 때문이다. 


먼저, 언약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언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명과 축복을 주겠다고 하신 약속이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이라는 축복 안에서 언약을 맺을 때에도 약속을 한다. 우리가 혼인 서약이라고 부르는 공식적이고 강제적인 계약이 바로 그 약속이다. 혼인 서약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그들을 하나로 묶는데, 이 안에는 그들만이 누리는 특권과 더불어 책임이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그분의 주권적이고 강제적인 조건에 따라 스스로를 인간과 묶으셨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내가 그 유대인 여자에게 한 대답을 살펴보자. 나는 이렇게 시작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온전히 내게 순종하기만 하면 너를 영원히 살게 하시겠다'는 생명의 언약이죠. 그런데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그 언약을 깨 버렸고, 그렇게 죄를 지어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그의 모든 후손도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희생의 피를 통해, 그러니까 오로지 은혜를 통해서만 구원을 주시겠다는 또 다른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후에 하나님이 홍수를 통해 죄악에 찬 인류를 멸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분은 또 하나의 언약을 노아와 맺으셨습니다. 이는 믿음을 가진 인간을 구하고 또한 자신을 위해 그 거룩한 백성을 보존하시겠다는 언약이었죠. 나중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또 언약을 맺으셨어요. 그 언약은 아브라함이 믿기만 하면 그에게 축복의 땅과 별처럼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나는 기독교인이 가진 믿음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것,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세우겠다는 언약을 맺으신 것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 그의 자손을 통해서 영원한 왕국을 세우겠다고 하신 그 언약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 즉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서 그분의 완전한 삶과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 그리고 이를 믿는 이에게 바로 그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 설명은 언약 신학을 떠받드는 성경적 기초를 보여 준다. 다시 말해 이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길을 드러내는 성경의 방법이고,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이야기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언약 신학을 믿는 것이다.


두 개의 언약 이야기


성경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 죄와 구원이다. 성경은 이 두 가지를 각각 다른 두 가지의 언약과 연결시킨다. 하나는 언약을 깨뜨린 인간이고, 또 하나는 언약을 충족하신 그리스도이다. 이 두 가지 언약, 즉 행함에 의지하는 언약과 은혜에 의지하는 언약은 성경의 가르침이 제대로 세워지는 데 필요한 구조를 제공하며, 또한 우리가 구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내가 유대인 여자에게 말했듯이,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그의 후손이 이 언약 조건에 근거하여 에덴동산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셨다. 그 언약 조건은 다름 아닌 “완벽하고도 개인적인 순종”이다(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7.2). 바로 그 언약에 관한 하나의 테스트는 나무와 관련된 것이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하나님은 이렇게 명령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순종을 통해서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계속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언약을 깼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다. 개혁 신학은 이것을 “행함의 언약”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아담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그가 살지 죽을지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행함의 언약을 파기한 아담의 불순종은 커다란 문제가 되었고, 성경의 나머지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대답을 기록하고 있다. 파괴되어 버린 행함의 언약에 대한 처방으로 하나님이 들고 나오신 대답은 은혜의 언약이다. 악마를 상징하는 뱀이 첫 번째 인간을 죄에 빠지게 한 이후, 하나님의 은혜는 뱀의 패배라는 장면을 통해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신학자들은 이것을 최초로 제시된 원시복음(Protoevangelion)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이에 이어서 은혜의 언약이 어떻게 이어질지를 보여 주셨다. 즉 죄인을 대신해서 죄 없는 자가 희생될 것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의로움이 죄인들에게 주어지며 그들이 져야 할 형벌은 그의 피로 대신 치르게 될 것을 보여 주셨다. 창세기 3장 21절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은혜의 언약은 그 이후 이어진 세대를 통해 드러나는 복음의 이야기에 놀라운 통일성을 제공한다.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은혜의 언약이다. 그 언약 덕분에 인류는 멸망하지 않고 구주가 탄생할 때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단지 많은 후손만을 약속한 게 아니었다. 그건 언약을 온전히 성취할 단 한 명의 후손에 대한 언약이기도 했다(갈 3:16). 모세 시대가 되어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한 나라를 이루었고, 모세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죄 용서를 위해 희생 제사를 집례할 제사장을 제공했다. 하나님 왕국도 통치를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신 언약은 결코 실패하거나 죽지 않는 왕을 약속했다. 


그러나 파괴된 행함의 언약은 길고 긴 세대를 통해서도 여전히 충족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아담과 그의 후손은 여전히 완벽한 순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의로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이 구절이야말로 언약 신학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분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마 5:17). 다시 말해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서 행함의 언약을 완성하러 오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심으로써 죄인들이 은혜의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초를 놓았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새 언약”을 세운다는 의미이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은혜의 언약이 온전히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자신의 대속 죽음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언약 신학은 구약과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서신서에 실린 사도적 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나님은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라고 하실 수 있을까? 언약 신학은 이에 대한 대답을 제공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서 성취하신 행함의 언약뿐 아니라 은혜의 언약에 의해 바쳐진 그분의 피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은 의롭게 된다. 여기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있다. 우리가 하는 행함과 별도로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어떻게 의롭게 만드는가? 이에 대하여 언약 신학은 성경의 대답을 들려준다. 예수님은 우리가 행함의 언약을 어김으로 하나님께 진 빚을 대신 갚으셨고, 그 결과 우리는 이제 은혜의 언약에 따라 오로지 믿음만을 통해서 의롭다함을 받는다. 


역사는 결국 그분의 이야기이다


언약 신학은 그 자체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역을 드러내어 구원에 필요한 성경의 구조를 잘 드러낸다. 바울은 이렇게 썼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고후 1:20). 이 기록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언약 약속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은 은혜의 선물로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그 답은 그의 언약 속에 다 들어 있다. 이는 바로 생명, 지키심, 약속의 땅, 영광스런 백성, 선지자, 의로운 왕, 그리고 속죄양이다. 이 모든 약속들은 우리가 언약의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온전히 '예'와 '아멘'으로 받을 때에만 주어진다. 그러므로 언약 신학이 말하는 성경의 역사는 실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Redemptive History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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