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
by R. Carlton Wynne2019-09-23

해마다 여름이면, 부모님은 우리들을 자가용에 태우고 여름 방학 연례행사인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나셨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부모님이 방학 여행 중에 느끼셨을 것을 나도 아버지로서 경험하고 있다. 예전에 아버지가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내려가실 때 그분의 귀에 울렸을 똑같은 질문을 나도 이제 내 아이들로부터 종종 듣는다. “아직 다 안 왔어요?” 물론, 대답은 물음 속에 있다. 그래도 아내와 나는 앞 좌석에 앉아서 대답해 준다. “아니, 아직 다 오지 않았어. 도착하면 알려 줄게.”  


가족의 장거리 자동차 여행 중에 자녀들이 반복해서 묻는 질문과는 달리,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성경이 그리고 있는 명확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크리스천의 삶에 관하여 물어야 한다. 예를 들면, 성경은 크리스천의 삶을 반드시 끝까지 달려야 하는 경주로(고전 9:24; 딤후 4:7 참조), 또한 “장차 올” “도성”을 향하여 가야 하는 순례 여행(히 13:14)으로 비유한다.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고]”(마 16:24; 막 8:34), 그리스도와의 교제 가운데 “행[하며],”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도록]”(빌 3:14) 부름받았다.   

 

이 말씀에 따르면, 오늘날 크리스천의 삶이 “목적지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운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여전히 그 여정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온갖 형태의 시련과 죄악된 성향에 직면한다.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는 육체적인 퇴락과 도덕적인 퇴락 모두를 경험한다. 해가 가면서 우리 몸에서 기력이 빠져나간다. 만약 이러한 냉혹한 현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현실은 우리에게 “아니야, 아직은 더 가야 해. 목적지에 다다르면 알게 될 거야”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신비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성경은 크리스천의 삶을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그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천국의 초자연적인 힘이 타락한 세상에 들어왔다고 선언한다. 예수님은 가르치시기 시작하면서, “천국이 가까왔다”(마 4:17)고 전한다. 그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쫒아냄으로 천국이 도래한다고 명백하게 언급하신다(마 12:28; 눅 9:11).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눅 2:38) 연로한 성도들은, 예수님이 선언하셨듯이, 그분의 오심은 곧 구약의 선지자들이 수천 년 동안 기다려 온 것의 성취라는 사실을 알았다(눅 4:21; 24:25–27). 그리스도가 행하신 치유와 귀신 쫒는 사역은 결정적으로 그분이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을 이기심으로써 최고조에 이른다(요 12:31–33; 히 2:14–15). 지금도,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가르치며 누구라도 믿음으로 그것을 받을 수 있다(눅 16:16; 18:17 참조)고 가르친다. 이것이 히브리서 저자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을 “내세의 능력을 맛[본]”(히 6:5)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는 이유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구원을 살펴보면, 크리스천들은 목적지에 이미 도달했다.    


동시에, 성경은 천국이 아직 ‘완전하게 그리고 마침내’ 도래하지는 않았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구속 목적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미래에 남아 있다. 하나님은 교회에게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 즉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기다리라고 하신다(살전 1:10). 이런 이유로,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의 여정 동안 예기치 못한 장애물과 적군을 맞이하더라도, 무엇보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여야 하며(마 6:33),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계속 기도해야 한다(10절). 요약하면, 약속된 하나님의 왕국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지만,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이 땅에 궁극적으로 계시될 그 왕국을 기다려야 한다.    

 

자동차 안에서 “아직 오지 않았나요?”라고 묻는 아이들의 질문에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단순히 대답한다. 하지만 크리스천의 궁극적 목적지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요?”라고 묻는 질문에 성경이 말하는 현실은 좀 더 미묘하다.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는, 실제로 그 대답은 “예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즉시 연합되며, 그분 안에서 미래를 향한 목적지로의 접근을 즐긴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가 기뻐하며 모여 있는 곳에 오게 된다고 말한다(히 12:22). 이와 유사하게, 바울도 크리스천들은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게 된다고 말한다(엡 2:6). 그렇지만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노!”이다. 우리는 아직 기다리고 있고, 찾고 있으며, 믿음으로 걸어가고 있으나 아직 눈으로 보지는 못하고 있다(고후 5:7 참조).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이 목적지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좀 더 정확한 대답은 “예스 그리고 노!”이다. 즉, 이러한 모순적인 대답은 통합적이고도 영광스러운 진리를 담고 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들은 믿음으로 이미 그리스도께 나아왔으며, 그로 인해 그들은 무한한 열정으로 미래를 향해 경주할 수 있고, 또한 그리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기]” 때문이다(빌 3:20).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여, 어떤 장애물이 앞에 놓여 있더라도,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 앞에 놓인 길을 인내로 달려가라(히 12:1). 또한 “말세를 만난”(고전 10:11)사람들처럼 그 경주를 하라.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당신에게 “말세”를 가져다 줄 것이며, 그분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곧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히 9:28).




출처: www.ligornier.org

원제: Are We There Yet?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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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R. Carlton Wynne

칼튼 윈은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직신학 부교수이다. 그는 미국 장로교회 목사로 섬겼다. 데릭 토마스와 함께 'Zeal for Godliness'를 공동 편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