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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좋은 충고가 아니라 좋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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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고상섭 목사  /  작성일 201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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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싱클레어 퍼거슨 교수의 ‘온전한 그리스도’는 18세기 초 일어났던 매로우 논쟁(Marrow Controversy)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싱클레어 퍼거슨은 팀 켈러 목사가 이 책을 쓸 것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왜 팀 켈러 목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18세기에 일어났던 매로우 논쟁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매로우 논쟁은 스코틀랜드 교회 안에 만연했던 율법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총회파들로부터 ‘반율법주의자들’이라고 정죄되었던 ‘매로우파’들은 ‘현대 신앙의 정수’(The Marrow of Modern Divinity)라는 책을 읽고 ‘은혜의 복음’을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토마스 보스턴을 필두로 하는 매로우파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당시 교회가 율법주의의 색채가 강하게 퍼져있었음을 이야기 한다.


이 책이 오늘날 다시 대두되는 이유는 오늘날 현대교회가 18세기 초 매로우 논쟁 당시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팀 켈러 목사는 복음을 잃어버려 율법주의로 향하는 현대교회를 향해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책의 대부분에서는 가장 먼저 ‘복음’을 이야기 한다. ‘센터처치’의 시작도 ‘복음’이고, ‘팀켈러의 설교’의 시작도 ‘복음’이다. 또 많은 설교에서도 복음을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럼, 팀 켈러 목사가 그렇게 외치고 싶었던 ‘복음’이란 무엇인가?


팀 켈러는 ‘센터처치’를 시작하면서 복음을 정의하기를 “복음은 좋은 충고가 아니라 좋은 소식이다.”라고 말한다. 좋은 충고(good advice)와 좋은 소식(good news)의 차이는 무엇인가? 좋은 충고는 내가 무엇을 행해야 하는 것이고, 소식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듣고 믿으면 되는 것이다. 즉 “복음이란 우리가 행해야 하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행해진 무엇이다.” 여기서 ‘우리를 위해 행해진 무엇’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말한다. 복음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하신 것을 믿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단순한 복음을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열심히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더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아니다: 죄인 됨에 대한 인식 


먼저, 복음은 ‘내가 행하는 무엇이 아니다.’ 이 말은 내가 행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존 스토트 목사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자기주도적인 일 중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행동하셨다고 말했다.


왜 하나님이 말씀하셔야 했는가? 인간은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지 않으시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전적 무지’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말씀해주셔서 깨우쳐 주시면 되는데, 왜 행동을 하셔야 하는가? 인간이 무지하기도 하지만 말씀을 깨달았다고 해결되지 않는 ‘전적 타락’의 존재이기에,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행동을 해주셔야지 구원이 가능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즉 복음의 시작은 내가 죄인이라는 깊은 깨달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서 인간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즉 인간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강요 1권의 제목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고 2권의 제목은 ‘구속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다. 하나님이 ‘창조주’이며, ‘구속주’라는 말은 인간이 ‘피조물’이며 ‘죄인’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인간이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지식의 출발이다. 복음이란 인간에게 어떤 소망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2. 우리를 위해 행해진 무엇이다: 사랑받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 됨의 인식  


팀 켈러 목사는 복음을 바로 깨달을 때 사람 안에 두 가지 감정이 생겨나는데, 첫째, “나는 내가 감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죄인이고 허물 많은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고, 둘째, “나는 감히 바랐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용납되었습니다.”라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감정은 순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는 감정이다. 죄인 됨을 깨닫는 동시에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시편 85편 10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잘 표현해 주는 구절이라 생각한다. 십자가에서 의와 화평이 서로 하나가 된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게 된다. 이 상반된 두 가지가 하나가 되는 것이 ‘십자가의 신비’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죽으셔야할 만큼 우리의 죄가 심각하고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동시에 그렇게 큰 죄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의 죄인 됨과 또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팀 켈러 목사는 ‘당신을 위한 갈라디아서’에서 “복음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면서 동시에 담대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겸손과 담대함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가? 이것은 태어나면서 가지는 자질이 아니라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정체성이다. 태어나면서 성격이 온유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싸워야 할 때, 분노해야 할 때 화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로서의 ‘온유’는 인간의 타고난 성품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실수를 하고 죄를 저지를 때가 있다. 반대로 말을 잘 하지 않는 과묵한 사람은 반드시 말해야 할 말을 하지 않음으로 죄를 저지를 수 있다. 즉 인간의 본성적 성품은 절대로 균형있는 삶을 우리에게 제공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겸손할 수 있다. 그러나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다. 자기 자신을 죄인과 괴수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우울과 절망가운데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고백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또한 모든 것을 가진 자라 말한다. 어떻게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는데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복음이 주는 정체성 때문이다.


3. 복음의 정체성을 가져라! 


많은 사람들이 우울하고 좌절하는 이유는 자기가 무엇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자신의 죄인 됨을 인식하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행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팀 켈러 목사는 복음의 정체성을 가졌는지, 여전히 자신의 의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인간적인 정체성을 가졌는지를 알아보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비판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는 것이라 말했다.


누군가의 비판 앞에 좌절한다면 자기 자신을 죄인이라는 정체성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자기 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사람이 말한 것보다 더 괜찮은 사람인데, 그가 나를 더 낮은 사람으로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복음의 정체성은 비난 앞에 힘들지만 씨름하며 그 비난을 거룩의 과정으로 삼을 수 있다. 나를 깊이 돌아보면, 사실 나는 그 사람이 비난하는 것보다 더 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악하고 무능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좌절하지 않는 이유는 나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나의 무엇에 근거한 정체성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해주신 사랑에 근거한 정체성을 가짐으로 극복해갈 수 있는 것이다.

팀 켈러 목사는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에서 이렇게 말한다.


“종교적인 사람은 비난을 받을 때 격노하거나 무너진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으로서의 자아상은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미지에 위협이 되는 것은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없애야 한다. 반면에 복음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비난을 당할 때 씨름한다. 그러나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있기 때문이다.”


“복음은 좋은 충고가 아니라 좋은 소식이다.” 이 말은 내가 행하는 무엇에 나의 정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해주신 변하지 않는 그 사실에 나의 정체성이 있다는 말이다. 내가 무엇을 애쓰지 않아도,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행해주신 그 일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모든 정죄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 주는 선물이며 자유이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해주신 그 아름다운 일들을 잊어버리고 여전히 자기 자신이 무엇을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복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속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충만한 사랑을 누리는 것이다.


팀 켈러 목사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늘 명심하라고 말한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연약함으로 넘어질 때 마다 ‘이것도 못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런 죄인 된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한다. 그 사랑이 결국 우리를 기쁨으로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복음은 내가 무엇을 성공하고 잘했을 때도 우리를 교만하지 않게 해준다. 나 같은 죄인이 이런 일을 했다면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이기 때문이다.


기억하라! 복음은 좋은 충고가 아니다. 좋은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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