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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설교를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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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David Mathis  /  작성일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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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iguel Henriques on Unsplash

유기농(organic)재배, 방임형(free-range)사육 등 생산되는 먹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 호르몬제를 잔뜩 먹인 닭이나 소를 장기간 섭취하면 어떻게 될까? 유전자 조작(GMO) 먹거리를 먹으면 해롭지는 않을까?


사람에 따라서는 도가 지나칠 정도의 질문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문제이다. 특히 자신의 먹거리뿐만 아니라 자녀들과 다른 사람들의 양식까지 책임지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육체의 건강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딤전 4:8), 영적인 양식에 대해서 우리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한주 또 한주, 그리스도인들은 예배 중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우리가 취하는 그 양식이 영적 건강에 좋은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 영혼의 건강에 대한 장기적 영향은 어떤 것일까? ‘내가 계속 이 설교를 들으면 내 영혼이 성장할까, 아니면 훗날 이 시간을 뒤돌아보며 후회하게 될까?’


결정 요인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매주 듣는 설교뿐만 아니라 늘 접하는 묵상집, 기독교 서적, 팟캐스트, SNS 포스팅, 실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대화들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접하는 기독교 컨텐츠가 모두 유익한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성경 전체의 내용을 더 잘 숙지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평생에 걸친 과제이지만, 우리가 읽고 공부하는 부분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어떤 기독교적 교훈이나 교리가 유익한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지표’나 ‘결정 요인’이 있지 않을까? 어떤 교훈이 ‘건전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건강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나 시금석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바울은 포괄적인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디모데전서 1장 10-11절에서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제시한다.


기준선


10절 끝에 나오는 “바른 교훈”은 문자적으로 “건강한 교훈”이라는 뜻으로 ‘목회 서신’인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이다. 바울은 좋은 교훈과 악한 교훈, 건강한 교훈과 건강하지 못한 교훈, 건강한 영적 삶, 즉 “경건”을 고양하는 교훈과 그리 하지 못하는 교훈을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다른 교훈”은 영적인 병을 일으키나(딤전 1:3; 6:3-4), 바른 교훈은 영적 건강을 가능케 한다(딤후 4:3-4; 딛 1:9; 2:1).


디모데전서 1장 10절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바른 교훈”이 특별히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바른 교훈”이나 “건전한 교리”의 핵심적인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답을 준다는 사실이다.


바른 교훈


바울은 “바른 교훈”에 대해 “복음을 따름이니라”라고 말한다. 얼핏 보면 진리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단순해 보이는 말일 수 있다. 기독교 신학의 진수, 핵심, 중심, 그리고 구성 원리는 ‘복음’이다. 15절에 나온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라는 좋은 소식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이다. 바른 교훈은 기독교 복음을 설명하고, 받들며, 보완하나 다른 교훈은 복음을 흐리게 하고, 복음을 막고, 복음의 빛을 가린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고,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셨다. 그리고 승천하여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으로서 보좌에 앉으신 것은 인류의 모든 시간과 역사의 정점이었다.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신다’라는 복음의 좋은 소식을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고백하며, 모든 삶이 복음과 연결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처럼 우리가 좋아하고 우리를 위로하는 진리뿐 아니라, 어둡고 난해하며, 우리가 숨기고 싶은 죄, 하나님의 진노하심, 지옥에서의 영원한 형벌 같은 것까지 모두 복음과 연결되어 있다.


바울은 “바른 교훈”은 “복음을 따름이니라”라고 말한다. 기독교의 교훈은 모든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이 메시지에 의해 좌우된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끌어내는 바르고 건강한 교훈은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다. 교훈은 예수님의 인성과 사역을 주제로 하여 그것을 설명하고 드러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구체화한다. 영양소 표시 라벨이 없는 교훈을 만나거든 복음의 리트머스지로 시험해보라.


복음과 영광


“바른 교훈”을 ‘복음’으로 끝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바울은 “바른 교훈”은 “복음을 따름이니라”라고 말하지만 ‘복음’에서 멈추지는 않는다. 바울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라고 말한다. 이는 정말 탁월한 선언이다. 뒤에 나오는 말씀으로 인해 좋은 소식이 왜 좋은지를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라는 말은 그다지 특별한 것처럼 들리지 않지만, 이는 사도 바울이 한 번 쓰고 버리는 말이 아니다. 이 문구에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세 단어, 온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실제,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듣고 하는 말이지만 그 깊은 의미를 놓치고 있는 세 단어 ‘복음,’ ‘영광,’ 그리고 ‘복되신’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등장한다.


‘복음’은 이미 보았듯이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죄와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원 얻을 수 있는 길을 그의 아들 안에서 내셨다는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말이다. 우리 믿음의 핵심은 복음이지 율법이 아니다. 좋은 소식이지 좋은 충고가 아니다. ‘영광’이라 함은 하나님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리키거나 무한한 가치의 외적인 표현을 말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위대함을 세상에서 보여주도록 디자인하셨다는 뜻이다. 창세기 1장 27절에서 말하듯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음을 기억하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역사 가운데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에베소서 1장 6절에 의하면 우리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이시는 것의 극치는 “그의 은혜의 영광”이다. 복음은 예수와 그가 행하시는 구원이며,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이 복음 안에서 가장 명료하고 밝게 빛난다.


행복 그 자체


‘복되신’은 여기서 가장 어려운 말일 수 있다. “복되신 하나님”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복되신’은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므로 우리가 그를 찬양함으로 “복되시게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당연히 그는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그러나 “복되신 하나님”이라 함은 그가 본질적으로 “행복한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 붙은 ‘행복한’이란 형용사는 우리가 늘 쓰는 진부한 의미가 아니다. 그는 무한하고, 어떠한 부족함이나 변화도 없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시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 115:3). 그는 무한히 행복하시다.


최근에 올랜도 개혁 신학교(RTS-Orlando)에서 “하나님의 복되심”에 대해 행한 키스티메이커 강좌(Kistemaker Lectures)에서 프레드 샌더스(Fred Sanders)는 디모데전서 1장 11절 말씀으로 강의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복되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복음이라는 것은 영광 가운데 빛나시고, 복되심 안에서 고요히 거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성품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시는 주권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광을 나타내시는 왕이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것에 더해 하나님은 더 이상 향상될 수 없는 극치의 지점에 계시는 분으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복되십니다.


그의 피조물들이 진실로, 깊이, 영속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의 근거는 바로 이 복되심이다. 모든 영광 가운데 존재하는 하나님 자신의 행복하심이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흥과 즐거움을 깨고 빼앗아가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낙담해 계시거나 슬픔에 빠져 있지 않으신다. 불평하지도 않고 괴롭히려는 마음을 갖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복되시다.’ 그가 소유한 행복은 무한하다. 그분 자체가 무한한 행복이시기에 자신의 끝없는 행복을 ‘나누어 주신다.’


아빠가 행복할 때


무한히 행복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적 한계를 뛰어넘는 충만하심으로, 창조와 구속 안에서 그의 무한한 가치와 무게, 즉 영광을 통해 공적인 자리로 나오신 것이다. 그의 영광의 극치는 자기 백성들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신 것에서 보인 그의 충만함에서 드러났는데, 이를 복음이라 한다. 본성적으로 불법을 행하는 우리 같은 이들에게 이 얼마나 놀랍고 좋은 소식인가! 하나님이 단순히 죄인을 구하신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 자신이 영광스러운 분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그는 영광스럽도록 행복하신 분이다.


아빠가 행복하면 그 행복은 온 가족에게 퍼진다. 그런 가정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실수와 아픔을 정직하게 나눌 수 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 말씀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즉 하나님의 백성이요 가족이다. 이 가족의 아버지께서 행복하다는 사실은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그런 교회에서는 치유가 일어나고, 기쁨이 회복되며, 우리 모두의 고통을 변화시키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Am I Sitting Under Healthy Preaching?

번역: 이정훈

작가 David Mathis

데이비드 매티스는 desiringGod.org의 주필이며,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Cities Church의 목사이다. '은혜받는 습관'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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