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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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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Peter A Lillback  /  작성일 2019-10-08

본문

Photo by Warren Wong on Unsplash

14세기에 꽃을 피운 신비주의는 지금까지도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비주의는 인간의 영혼이 이 땅에 있는 동안에도 얼마든지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개인적으로 또 즉각적으로 연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비주의는 무엇보다 특별한 체험을 통해 수준 높은 영적 상태에 도달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신비주의가 기독교에만 있는 건 아니다. 세계 도처에 흩어진 각종 종교와 철학 속에서도 신비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 신비주의는 그 기반을 성경에 두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디오니소스 위서(Pseudo-Dionysius)를 쓴 저자와 8세기에 디오니소스 위서를 번역한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John Scotus Erigena)와 같은 신플라톤주의(Neoplatonic philosophy)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신비주의의 전성기였던 14세기는 도미니크회 소속 신학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요한네스 타울러(Johannes Tauler) 그리고 하인리히 수소(Heinrich Suso)와 같은 신비주의 신학자들을 배출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에 나온 신비주의 저서, ‘독일 신학’(Theologica Germanica)이 마르틴 루터에게까지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신비주의자인 게르하르트 그루테(Gerhart Groote)는 공동생활형제단(Brothers of the Common Life)을 세웠는데, 그 단체가 종교 개혁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신비주의자 중에는 여성인 노리치의 줄리언(Julian of Norwich)이 있다. 그녀와의 동시대 여성 신비주의자로는 또 시에나의 캐더린(Catherline of Siena)과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등이 있다.


원인들


교회사의 이면에는 “마술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비현실적인 특징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매우 의심스럽고 비정통적인 전통이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기독교 신비주의가 출현했다. 금욕주의, 성례적 미신주의, 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 등이 바로 여기에 포함된다.


기독교 신비주의의 시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금욕주의이다. 금욕주의는 물리적 세계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사상인데, 다른 기독교 신비주의와 마찬가지로 신플라톤주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두 번째로, 미신주의는 그레코-로만(Greco-Roman)에 뿌리를 둔 신비 종교의 영향 속에서 발전하였으며, 미트라(Mithras)와 이시스(Isis)를 섬기는 사교(Cult)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사교들은 특별한 의식(rituals)을 통해서 신비적이고 마술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강조함으로 사실상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믿음은 결국 성례, 순교자의 성물, 교회의 영웅들 등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에까지 그 손길을 뻗쳤다. 


세 번째로,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은 성경을 4중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 중심의 역사적인 관점 대신, 성경에는 비밀스러운 의미가 숨어 있다는, 그리고 그것은 형이상학적이며, 또 종말론적인 지식이라는 주장이다.


그럼 특별한 체험을 통해 의식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하려는 욕망을 부추긴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성경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베드로후서 1장 4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로 만들었다고 말씀한다. 글의 전체 맥락에서 벗어나서 이 구절을 읽을 때, 얼마든지 지나치게 영적으로 해석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또한 변화산에서의 변화 사건(마 17:1-13), 바울의 삼층천 경험에 대한 묘사(고후 12:2), 계시록에 나오는 요한의 환상 등을 잘못 해석하게 되면, 부지불식간에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비기독교 신앙, 이교의 신비적 체험 및 철학 등과 혼합하는 위험에 빠진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맥락은, 기독교 신비주의가 출현한 시대가 중세라는 사실이다. 당시에 만연하던 페스트와 그에 따른 높은 사망률, 이단 박해, 십자군 전쟁과 부유한 교회 등은 신비주의를 더 부추기는 요인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기독교 신비주의는 위압적이고, 적대적이며, 또 무엇보다 혼란스런 세상에서 한발 벗어나도록 하는 “도피처”(retreat)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신비주의는 주관적이고 내적인 체험을 강조함으로 외부 세계로부터 아예 벗어나게 하거나 또는 외부 세계를 아예 무시하도록 만들었다.


훈련과 기법


세속을 떠나 수도원 생활을 하는 수도원 운동은 14세기까지도 그 영향력이 줄지 않았다. 이런 수도원 운동이 확산되면서 수도원은 수행자들에게 명상과 같은 엄격한 경건 생활을 강조함으로 신비적인 체험을 더 증진시킬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신비주의자들은 종종 금식과 순례를 행했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급진적인 형태로 극단적 금식, 수면 금지, 자기 태형 등을 시행했다. 종교적 황홀경을 추구했던 신비주의자들은 정상적인 정신 활동(primacy of the mind)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기도를 통해 정신을 비우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신비주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알기 위해 종종 다음의 두 가지 방식을 취했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의 ‘아니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시도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그러하심’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두 방식 모두 다 본질적으로 사색, 명상을 통한 방식이었고, 그 어떤 것도 성경 말씀에 기초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 자신의 내적이고 비이성적인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찾으려 했기에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알려는 행위는 종종 가설에 그쳤고, 더욱이 성경 말씀에 기반을 두지 않았기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신학자들


14세기 신비주의자들은 신비주의에 대하여 자신들만의 고유한 접근법을 갖고 있었다. 동방의 그레고리 팔라마스(Gregory Palamas)는 하나님을 찾는 방법으로 기도를 통한 내적 잠잠함(withdrawal)을 주장했다. 그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말한 금언을 참고했다.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 그러므로 인간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 이 금언 속에는 범신론(pantheism)과는 다른, 인간 신성화의 형태가 담겨있다고 팔라마스는 주장했다. 한마디로, 팔라마스의 주장은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그대로 계시고, 인간이 하나님의 신적 에너지에 동참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특별한 자세를 취하고 신비한 문장을 암송하는 등, 여러 신비주의적 수행 형태를 발전시켰다.


반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가 생각한 하나님에 대한 즉각적인 지식관에 의하면, 인간은 처음부터 신성을 가질 수 있는 존재였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영혼의 불꽃”(spark of the soul)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믿었다. 그 불꽃은 인간으로 하여금 얼마든지 영원한 진리를 명상하게 함으로 그 결과, 인간의 “영혼 속 하나님의 탄생”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자아와 이 세상을 포기할 때에만 이런 신성을 소유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나님과의 연합이 이루어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생명과 그 신적 본성이 주는 영광을 체험하게 되고, 그 연합을 통해서 영혼은 신적 본성에 참여하여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식은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오로지 신적 연합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에크하르트는 주장했다. “황홀한 체험”(beatific vision)은 언제나 아주 짧았고, 영원한 상태가 되어야만 비로소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고 에크하르트는 주장했다. 교황은 나중에 이런 에크하르트의 범신론적 주장을 정죄하였다.


중세 신비주의의 유산


신비주의 신학은 중세기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이후에도 교회 역사를 통해서 끊임없이 다시 나타났다.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Loyola), 오시그의 카스파르 슈벵크펠트(Caspar Schwenkfeld von Ossig), 그리고 일부 영국 청교도들도 신비주의적 주장에 동참했다.


신비주의는 다양한 개신교 전통 속에서도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신교는 종종 신비적인 체험에 대해서 개방적인 모습을 취하기까지 했다. 경건주의, 퀘이커, 오순절 운동, 은사주의 운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개신교 자유주의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슐라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는 종교적 체험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등이 주도하는 20세기의 신비주의는 종교적, 철학적 경계를 뛰어넘는 양상을 보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14세기 기독교 신비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위험에 대비한 안전장치


기독교인이라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신비적인 체험에 자리를 내어 주도록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말씀만이 우리에게 계시된 유일한 진리이며, 누군가가, 설혹 그가 14세기 사람이든지 아니면 오늘날의 사람이든지, 어떤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무아지경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마음과 뜻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인격을 통해 예배를 받으시는 존재이다. 


과도함, 범신론, 인신 공양적 미신주의, 범신론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신비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친 성령과 말씀 간의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연결성, 말씀과 성례의 성경적 결합, 그리고 겸손한 순종과 믿음 안에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길 외에는 없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인간의 타락한 품성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거짓 가르침이기에, 성경은 영을 시험하라고 경고한다. 구원은 인간 중심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 선택, 사상과 환상은 결코 구원으로 이어질 수 없다. 모든 진리와 지혜는 오로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자 한다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하고, 오로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만 기초를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적 기독교, 특별히 종교 개혁적 의미에 근거해서 신앙을 회복한다는 것은 무절제한 신비적인 체험을 거부하고, 오로지 성령님의 능력을 통한 그리스도의 정경적 계시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본성이 타락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내적 충동을 영적 안내자로 삼는 대신, 오로지 말씀과 성령님을 겸손하게 의지하는 훈련에 매진해야 한다. 묵상은 오로지 성경만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어떤 특별한 체험을 찾고자 한다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이미 행하시고 또 말씀으로 기록된 특별한 이적들을 참고하면 된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 주는 성경을 알아야 하고(요 5:46), 사랑하는 아버지께 기도해야 하며, 예배와 성례에 참여해야 한다.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눅 10:27), 예수님이 주신 큰 계명을 마음에 품을 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감정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에 뿌리를 둔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인해 “내적으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없음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Into the Mystic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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