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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신 ‘그날’까지 견뎌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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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Eric Landry  /  작성일 20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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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브라운 목사는 이십 년이 넘는 목회 기간 동안 교회가 겪어 온 풍파를 한번 돌아보았다. 언젠가는 예배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로 성도 간에 불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 사역 현장에 최신 기술을 도입하여 이전에 없던 파장이 교회 안에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정한 잘못을 저지른 사역자들로 인해 큰 폐해가 일어나 이로부터 회복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교회에 새로 온 한 가정을 통해 공동체에 왜곡된 가르침이 퍼지면서 야기된 악한 영향은 그야말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게 된 뜻밖의 문제였다.


스미스 부부는 어떤 사역자라도 꿈꿀 만한 그런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친절했을 뿐 아니라, 경건한 자녀들을 키우며 흔들림 없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고, 교회 사역에도 언제나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교회에 온 지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남편은 주일 학교 교사가 되기로 자원했고, 부인은 육아실에서 봉사하겠다고 신청했으며, 청소년이었던 자녀들은 예배팀에 들어가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다름 아닌 이혼과 재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그 부부가 왜곡된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혼 후에 재혼을 하는 일은 신자에게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런 종류의 결혼은, 어떤 이혼 사유를 막론하고 ‘간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남편 스미스는 교회 안에서 그와 같은 견해를 계속 주장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며 염려하던 일부 교인들이 브라운 목사에게 상황을 보고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예배 후에든 그 중간에든 스미스가 다른 부부에게 접근하여 마치 그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결혼 생활이 어떠냐고 묻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부부가 재혼한 관계이면, 그들에게 이혼을 하라고 권하면서 간음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에 결코 그분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스미스의 이러한 행동은 실제로 몇몇 사람들의 삶에 신앙의 위기를 초래했고, 이에 브라운 목사는 그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두 사람이 만나게 되자, 스미스가 브라운 목사를 향해 자신이 이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들과 똑같다며 비난을 했다. 사실 스미스는 과거의 여러 교회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결코 진리를 대변하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브라운 목사는 스미스 부부를 쫓아내진 않았지만, 그들의 견해가 공동체의 화평을 깨뜨리고 교회의 가르침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알려 주었다. 그리고 교회 안에 그런 견해를 더 이상 퍼뜨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결과 긴장 어린 몇 주의 시간이 흘렀고, 결국 스미스 부부는 교회에서 섬기던 일을 그만두고, 자신들의 견해에 공감하는 몇몇 지체들을 데리고 나가 가정 교회를 세웠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교회 안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 목회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수고에 더하여 이 적대적인 세상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생존할 수 있도록 그들을 무장시켜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된 가르침에 대항하며 싸울 수밖에 없다. 간혹 그 가르침이 복음의 핵심을 위협하지 않을 때에도 교회의 화평과 순결은 그로 인해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장 22-23절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셨듯이, 그리고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바울이 설명하였듯이,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함에도, 그릇된 가르침의 타격을 받으면 교회는 동요하다 분열을 겪게 되기도 한다.


물론 우리는 잘못된 가르침이 야기하는 위협에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교회의 문을 단단히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기회만 있으면 몰래 들어와 무엇인가를 노략질하려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양 떼를 해치는 이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교회의 리더들은 그런 문제가 들이닥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교회의 화평과 순결을 지키기 위해 파수꾼보다 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주의 사항이 있다. 화평과 순결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서로 대립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화평을 지키는 데 너무 치중하여 교리적 순결성을 소홀히 여길 수 있고, 또 순결을 지키는 데 너무 몰두하여 성도들을 의심과 불안의 눈초리로만 살필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의 화평과 순결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교회에 침입하는 모든 적군을 막아 내기는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거짓된 가르침이 교회 안에 미치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실천하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첫째로, 사역자이든 일반 성도이든 교회에서 리더의 자리를 맡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높은 기대치를 유지해야 한다. 바울은 교회에서 지도자를 세울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기준이 무엇인지를 디모데와 디도에게 각각 알려 주었다. 곧 장로나 집사는 올바른 신학과 경건한 성품을 지녀야 할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딤전 3:1-7; 딛 1:5-9). 그렇다면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과연 중직자 후보로 거명된 사람들에 대해 성경이 제시한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는지 분명히 확인하고 있는가? 슬픈 현실이지만, 많은 교회에서는 성공적인 사업가라든가 유력한 인사 또는 교회에 상당한 액수의 후원금을 기부하거나 기부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며, 성경이 제시한 자격 요건은 무시하기도 한다. 분명 교회는 그와 같은 세상의 기대치가 아니라, 성경이 제시하는 기대치에 맞는 리더십을 요구해야 한다.


둘째로, 문제의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가르치기 위해 폭넓은 독서를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올바른 신학으로 구성된 영적 양식을 꾸준히 제공하려면, 그 다양한 책들 중에서도 청중이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붙들어 줄 수 있는 작가와 저서를 규칙적으로 인용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표준적인 견해에서 벗어난 문헌이나 학자로부터 신학적인 설명을 굳이 취하는 일은 청중에게 혼란만 야기할 뿐이다. 한번 교회 도서관에 들어가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를 보라. 또 교육관 탁자 위에 널려 있는 책들도 검토해 보라. 과연 그 자료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정통적인 신학을 떠올리게 만드는가? 아니면 급진적인 신학을 소개하며 그릇되고 낯선 사상으로 그들을 이끄는가? 목회자는 세상의 주변적인 지식이 아니라 검증되고 신뢰할 수 있는 진리를 교인들이 배울 수 있도록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셋째로, 모든 사역은 주일 설교의 메시지와 조화를 이루는 선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평신도 리더들과 정기적으로 만나서 주간 모임이라든가 성경 공부 수업이 지난 주일 예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각 소그룹이 교회의 전체 사역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모임으로 바뀌기 쉽다. 그러면 그 모임의 리더가 사역자들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어 교회 안에 그릇된 가르침이 소개될 수 있는 빌미를 주게 된다. 이런 위험성은 교회 안에서 공식적인 모임을 인도하며 가르치는 리더만이 아니라 그 모임에서 사용할 교재까지도 신중하게 선별함으로써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또 이 외에도 소그룹 리더들과 성경 공부 교사들이 서로 훈련하고 기도하며 격려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모임을 가져야 한다. 이때 목회자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가르치는 내용이 주일 설교의 대척점이 아니라 연장선에서 이뤄지고 있는 게 맞는지를 확인시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목사와 장로와 집사 그리고 일반 리더들이 모두 하나님이 각자에게 은사를 주어 섬기게 하신 사역 현장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사랑 안에서 자랄 수 있다(엡 4:16).


넷째로, 교회를 지키고자 하는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가르침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된 사실을 발견하면, 그 문제를 직면해서 다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가상의 공간에서 익명성을 띠고 타인과 소통하며 서로에게 끔찍한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으면서도 정작 ‘상대를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a nonconfrontational age)를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누군가를 만나 어려운 대화를 나누는 일은, 그저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려는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는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신앙의 지혜를 갖춘 성도라든가 인생의 선배가 되는 지체들이라면, 혹 공동체의 화평과 순결을 깨뜨릴 만한 자들이 있을 경우 그들에게 다가가 인격적으로 훈계하고 권면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앞서 소개한 브라운 목사의 사례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교회의 입장이 어떠한지를 스미스에게 설명했다. 상황이 저절로 나아지기를 바라면서도 문제를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또한 스미스를 공개적으로 질책하거나 교회에서 쫓아내며 그 문제에 지나치게 반응하지도 않았다.


교회에서는 언제나 오류에 빠진 사람들이 사역을 할 수 있기에 우리는 공동체의 화평과 순결을 지키기 위해 늘 힘써야 한다. 특별히 직분을 맡은 자들이 거짓된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힘써야겠지만, 실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베뢰아 사람들처럼 그들이 배운 가르침을 확인하며(행 17:1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살전 5:21). 하나님은 그와 같은 우리의 노력을 통해 건강한 교회를 세우신다. 또 그 안에서 우리는 매주일 예배를 드리며 그분이 우리를 돌보실 뿐 아니라 설교 사역을 통해 직접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화평과 순결을 위해 힘쓰는 일은 그리 매력적인 일이 아니다. 그렇게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늘 수고롭게 돌아보며 한결같은 성품을 지녀야만 하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절망하며 포기하고 싶은 때도 찾아온다. 그럴 때면 기억해야 한다. 비록 교회의 화평과 순결이 언제든 깨지기 쉬운 상태처럼 보일지라도, 그 모습을 지키려는 우리의 노력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장래의 소망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약속된 날이 다가오고 있다. 새 예루살렘의 성문이 닫힐 필요 없는 날, 하나님의 백성이 아무 위험에도 노출되지 않는 날,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계 21:25-27). 그날에 예수님은 순결하고 흠 없는 신부로 교회를 맞이하실 것이다(엡 5:27). 그러므로 하나님이 정하신 때 바로 그날이 도래하리라는 확신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교회가 화평하고 순결하도록 우리는 힘을 다해 수고한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False Teaching and the Peace and Purity of the Church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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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Eric Landry

에릭 랜드리는 텍사스주 어스틴에 위치한 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부목사이며, Modern Reformation의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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