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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이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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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Robert Godfrey  /  작성일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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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ik Shuliahin on Unsplash

성경은 잘못 사용되면, 위험한 책으로 바뀔 수 있다. 지난 교회 역사를 보면, 성경을 오해해서 야기된 수많은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다. 거짓된 교리가 형성되었는가 하면 율법주의적인 관례들이 생겨났고 그릇된 방향으로 인생이 치닫는 경우가 수도 없이 발생했다. 그중 가장 논란이 되는 예가 있다면, 아마도 십자군 전쟁이 아닐까 싶다. 이는 중세 유럽인들이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중동 이슬람 국가들을 상대로 벌인 일련의 전쟁을 의미한다.


누군가는 기독교인들이 그 대의를 위해서라면 칼을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들어 그러한 생각을 정당화하려고 할지 모르겠다.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시 72:11).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시 2:8-9).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시 110:5-6).


혹 기독교의 이름을 빙자한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구절들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각 본문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내용은 하나님 나라가 영적으로 확장되는 역사와 그 역사의 마지막 날에 있을 최후 심판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오히려 비폭력적인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롬 12:17-19).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1-12).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3-5).


십자군 운동은 11세기 유럽에서 일어나 최소한 16세기까지 그 정신이 지속되었다. 이 전쟁을 이끈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이교도의 손에서 되찾는다는 명목 하에, 1096년으로부터 1229년까지 최소 다섯 차례를 원정길에 오르게 된다. 당시 십자군을 선동했던 인물들은, 원래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의 땅이 기독교 인구가 차지하던 지역이었는데 7-8세기에 이르러 이슬람 세력이 정복하게 된 역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실제로 632년 마호메트가 죽은 지 6년 만에 이슬람 군대는 예루살렘을 차지했다. 이후로도 이슬람 군대는 남쪽에서부터 올라가기 시작해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까지 진격했는데, 이러한 북진은 732년에 프랑스 푸아티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세력을 확장한 이슬람은 841년에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약탈했고, 15세기부터 17세기에는 군비를 다시 갖추어 동방에서부터 유럽을 공격해 들어왔다. 그 결과 1451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 이후에는 비엔나까지 그 세력을 확장한다.


이처럼 이슬람 세력이 어떻게 그 시작부터 단기간에 힘을 모아 성공적인 확장을 이룰 수 있었는지는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도대체 그 무엇이 유럽으로 하여금 중동에 있는 이슬람 국가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했는지도 하나의 의문처럼 여겨질 수 있다. 당시 예루살렘은 이슬람에게 장악된 지 이미 4백 년도 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배경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1세기 말, 정확한 사실인지 알기 어려운 어떤 소식이 유럽 사회에 퍼지게 된다. 바로 예루살렘에 성지 순례를 가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은둔자 베드로(Peter the Hermit)는 자신이 환상을 보았다고 하며,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er)에 나타나셔서 그 거룩한 성에서 이교도를 쫓아내라는 사명을 기독교인들에게 주셨다고 말했다. 게다가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도 이슬람 세력을 견제할 수 있도록 유럽에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1095년에 열린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그곳에 모인 성직자들에게 설교를 하며 십자군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촉발시킨다. 이미 예루살렘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기독교인을 정복하고 있는 무슬림과 싸우기 위해 전쟁을 선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사안과 관련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권하노니, 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 그리스도의 사자들인 여러분에게 명하시는 바이다. 이제부터 기사와 보병,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말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설득하고 어떤 포고를 내려서라도 더 늦기 전에 그 거룩한 땅에서 악한 인종을 쫓아내도록 하라. 나는 여기에 있는 여러분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없는 자들에게도 뜻을 전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명령이니, 바로 이 전쟁에 참여하라. 그리하여 육지에서든 바다에서든 혹은 이교도와 싸우는 전장에서든 그 어떠한 결말로 생을 마감하게 되더라도, 나는 하나님께 받은 은총을 따라 그들에게 면죄를 선언하노라.


만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 백성,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빛나는 이 백성이 악마한테 정복당해 능욕당하고 타락하여 노예로 전락한다면, 그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여러분과 같은 신앙을 가진 형제들을 여러분이 돕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죄책을 주님이 여러분에게 물으시겠는가!


그동안 신자끼리 무가치한 싸움을 일삼아 온 자들아, 이제 개전되어 승리로 마치게 될 이 전쟁, 저 불신자를 몰아내는 이 고귀한 전쟁에 참여하라! 지금까지 약탈자로 살았던 자들아,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라! 돈 몇 푼을 위해 일했던 자들아, 이 영원한 상급을 받으라!”


이처럼 우르바누스는 기독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대적을 죽이기 위해 칼을 뽑으라고 명령했다. 그것이 영적 의무이자, 영적 보상을 위한 일이라고 선언했다. 이 설교는 교회 역사상 기독교의 관심사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을 선포한 최초의 경우일 것이다. 우르바누스는 십자군에 참여해서 목숨을 잃은 자들에게 면죄를 약속했지만, 이후 등장한 교황들은 전쟁에 참여하기만 하면 면죄를 누리게 된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기독교는 거대한 군대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일어난 첫 번째 전쟁은 놀랍게도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 1096년에 출군된 유럽의 군대가 1099년에 이르러 예루살렘을 탈환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왕국(The Latin Kingdom of Jerusalem)이 그해에 세워져 1187년까지 존속하게 되었다. 또 그와 함께 다른 십자군 도시들도 건설되었다. 하지만 이 성공에 따른 폐해는 그야말로 막대했다. 전쟁으로 인해 수십만 명이 죽었으며,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자행한 끔찍한 대학살은 이슬람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기독교에 대한 평판이 그후로도 회복되지 않았다.


1189년에서 1192년에 걸쳐서는 세 번째 십자군 전쟁이 진행되었는데, 그에 앞서 빼앗긴 예루살렘을 다시 찾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이 전쟁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1세, 프랑스 왕인 필리프 2세, 그리고 (사자의 심장을 지녔다고 일컬어진)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 1세처럼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력한 왕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모두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였던 살라딘과 전쟁을 벌였다. 바로 이 십자군을 배경으로 하여 (존 왕자와 싸운 로빈 후드 이야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낭만적인 설화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네 번째 십자군 전쟁은 1200년에서 1204년 동안에 일어났는데, 이는 유독 결과가 안 좋았던 전쟁으로 기억된다. 당시에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로 방향을 돌려 진군했다. 거기서 비잔틴 제국의 왕좌를 둘러싸고 경쟁자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1204년에 십자군은 동방 기독교를 대표하는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하게 된다. 이에 엄청난 파괴 행위가 뒤따랐다. 위대한 예술과 문학 작품이 손실되었고, 십자군이 약탈한 수많은 유물이 배에 실려 서유럽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특히 베니스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그 물건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 전쟁을 통해 유럽인들은 콘스탄티노플 라틴 제국(the Latin Empire of Constantinople)을 세워 1204년에서 1261년까지 군림하게 되었으며, 교황은 로마에 종속된 라틴 교구를 그곳에 창설하였다. 이런 사건은 동방 정교회를 격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결국 비잔틴 제국은 1261년에 다시 회복되었지만, 이 십자군 전쟁의 여파에서 완전히 헤어나지를 못했다.


다섯 번째 십자가 전쟁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가 주도했다. 그는 기독교인, 유대인, 이슬람교인 모두에게 예루살렘에 올 수 있는 권한을 약속함으로써 그 성지에 대한 통치권을 거머쥐게 된다. 이로써 기독교인은 1229년부터 1244년에 걸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장악하게 되었지만, 교황 그레고리 4세는 프리드리히가 이교도와 타협했다는 이유로 그를 파문에 처한다.


이후로는 프랑스의 루이 9세가 1248년과 1270년에 각각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매우 경건한 마음을 지녔던 그는 군대를 지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리더였다. 결국 루이 9세는 1270년에 이집트에서 사망하게 되었고, 로마 교회는 그를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이는 십자군으로서는 유일하게 성인의 반열에 오른 예였다.


이와 같이 십자군은 예루살렘에 대한 기독교의 통치권을 영구적으로 쟁취하는 일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 대신, 여러 가지 결과들을 남기게 되었다. 가령 유럽 교회에 대한 교황의 권위와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또 비잔틴 제국은 반대로 쇠약해져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때까지 계속해서 이슬람 세력에 영토를 빼앗기게 되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결과는, 기독교와 서구 세계에 대한 폭력적 이미지가 이슬람 사람들의 의식 속에 각인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에는 모종의 아이러니가 있다. 분명 처음에는 이슬람 세력이 기독교의 영토를 침략하며 전쟁을 일으켰다. 그때 그들은 이후에 일어난 십자군만큼이나 잔인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역사에서 십자군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들은 서구 기독교를 상대로 여러 차례 난폭한 전쟁을 벌였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많은 무슬림들은 여전히 기독교를 폭력적인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독교가 국가와 분리되지 않은 체제를 과거에 갖추었던 것처럼, 자신들도 유럽에서 정교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을 내비치고 있다.


이러한 십자군의 역사가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이 있다. 바로 이 전쟁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영광에 얼마나 큰 손실이 가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군’(Crusade)이라는 용어는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 지 한 세기 후에 등장했는데, 이는 ‘십자가의 길’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로부터 유래한 말이었다. 그렇게 보면 십자군은, 자신을 대적하는 원수를 품기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쏟으신 분, 그리하여 세상의 불의를 몸소 감당하시며 평화를 이루신 분,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얼마나 상반되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그분의 대의를 널리 추구하되, 언제나 폭력이 아니라 사랑과 자기희생을 동반한 진리를 통하여 그리해야 한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he Crusades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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