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불평 금지!
by Larry Osborne2019-11-12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당회 모임 하나를 기억한다.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한 대형 교회 목회자의 강연을 들은 후에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로 막 돌아왔을 때였다. 그 목회자는 목회 사역에 동반되는 고유한 도전과 어려움에 대해 열변을 토했었다.


그 강연을 요약하자면, 목회 사역은 가장 힘든 일이며, 위태로운 일이 끝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의 적은 악의 전형이며, 음흉하고, 사나우며, 궁극적으로 속이는 자이다. 우리는 오해받기 쉽고, 우리의 메시지는 인기가 없다. 우리의 보상은 대부분 나중에 온다. 그리고 우리는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베풀기를 요구받는다.


그때 나는 목회의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기에, 그의 말은 내 관심을 끌었다. 시편 73편의 아삽처럼, 목회 사역 자체가 가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당회에서, 나는 그 강연자가 한 말을 당회원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기도를 요청하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다. 실제로 나는 그저 약간의 공감과 이해를 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연민을 구하는 부분에 이르기도 전에, 당회원들 중의 한 명이 내게 이야기를 그만하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 장로는 베트남 전쟁이 있을 때 세 번이나 복무하고 은퇴한 해병이었다. 그는 용맹스럽게 싸웠고 전쟁의 공포와 대학살을 직접 경험했다. 더군다나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서 비웃음과 조롱을 당했다. 영웅에 대한 환영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내 말은 연민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내 말을 멈추게 한 것은 옳았다. 나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불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목회의 난관과 중압감에 대하여 불평할 권리도 없었다. 물론 목회 사역에 나름의 도전과 어려움이 있지만, 베트남이나 팔루자 전장에서의 복무와 비교하면 식은 죽 먹기이다. 사실, 원죄가 인간에게 생긴 이래로, 모든 일은 난관과 어려움 투성이였다. 잡초가 없는 정원은 없듯이 말이다.  


나는 재빨리 사과했다. 그는 나의 사과를 잘 받아들였다. 


그날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목회가 마치 훌륭한 특권이라기보다 짐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목회의 난관과 짐에 대한 불평을 다시는 공적으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불평하지 않기”라고 부른 규칙을 만들어 스스로 지키기로 했다. 그것은 다음의 성경 말씀과 지침을 기억하는 것에 근거한다. 


1. 리더십은 선택 사항이다


하나님은 모든 신자들을 평생의 제자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자로 부르셨다. 하지만 공적 리더십은 선택 사항이다. 나는 공적으로 목회 사역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도 이 사역을 공적으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할 수 없다면, 물러나거나 잠시 중단하면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그 책임을 맡을 수 있다면, 하나님 나라는 더욱 잘 섬김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목회는 “즐거움으로” 그리고 “근심으로 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히 13:17).   


그것은 난관이 어렵지 않은 척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이고 우울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겨도 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러면 그분이 섬김을 제대로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감독자의 자질을 나열할 때, 디모데에게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적용하라고 말했다(딤전 3:1-7). 그리고 예수님이 섬김의 리더십의 길을 가르칠 때, 그것이 모든 사람에 해당된다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크고자 하는 자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호소하셨다(마 20:25-28).   


이것을 놓치지 말라. 리더십 역할에서 섬기는 것이 선택 사항임을 이해하는 한, 나는 불평할 것이 없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2. 섬김의 리더십은 종처럼 취급받는다는 의미이다


나는 섬김의 리더십 개념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종처럼 취급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좀 다른 문제가 된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에 대해 진정으로 말씀하셨다. 진정한 섬김의 리더십은 종처럼 취급받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이다.


종이 주인을 위해 하는 일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주인은 드물다. 사실, 대부분의 주인들은 특권 의식을 가지고 종들을 대한다. 그래서 성도들 중 누군가가 나를 소유한 것처럼 행동하거나 내가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으면 놀라지 말아야 한다. 목회 사역은 섬김의 영역과 함께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내가 살고 섬기겠다고 선택한 영역이다. 


3. 우리의 보상은 오고 있다


나는 육상 선수로서 ‘지옥훈련’(hell week)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할 수 있었다면 그 주간을 건너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간은 한 시즌 전체 게임의 전초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그리고 간절함으로 해마다 계속 참여했다.   


같은 방식으로 나는 목회의 일부인 ‘지옥훈련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웠다. 현재의 고통이 아니라 내일의 약속으로 평가하는 법을 말이다. 주님은 그분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셨다(히 12:2). 바울은 다가올 영원한 영광의 빛에 비추어서 그의 난관과 박해를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으로 여겼다(고후 4:17). 그리고 강박에 눌려서나 혹은 이기적인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그리고 간절함으로 양 떼를 돌보는 목자들은 목자장이 나타날 때에 영원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벧전 5:1-4).    


4. 고난은 특권이다


목회 사역의 난관을 매우 웅변적으로 토로한 그 목회자의 강연은 부분적으로는 맞다. 목회는 종종 힘든 소명이며, 위험한 일들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목회는 소심한 사람이 감당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난관들은 한탄해야 하는 문제가 아님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안에는 영광을 돌릴 무언가가 있다. 예수님에게 고난은 저주가 아니었다. 수용되어야 하는 귀한 영예였다. 그 의미는 예수님이 우리를 가치 있게 여기셨다는 뜻이다(빌 1:27-30).


목회 리더십에 기쁨이 없고 그것이 점점 짐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의 영적 패러다임이 잘못되었다는 표시이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리더십은 짐이 아니다. 목회 리더십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특권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이 나의 죗값을 지불하셨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다. 그분이 나를 아들로 그리고 상속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은 내가 상상하거나 요구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돌보고 먹이는 일을 나 같은 사람에게 맡기셨다는 사실은 완전히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하셨다. 그리고 그러한 과분하고 설명할 수 없는 특권에 대해 내가 타당하게 응답하는 길은 목회의 가장 캄캄한 계곡을 지나는 중에도 기쁨과 감사로 가득찬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말했듯이, “더 이상 불평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고 이를 잘 지키는 것이다. 




출처: www.desiringgod.org

원제: Leading with Joy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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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Larry Osborne

레리 오스본은 캘리포니아 비스타에 위치한 North Coast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대표 저서로 'Accidental Pharisee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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