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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의 불신자 구원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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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Jon D. Payne  /  작성일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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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Felix on Unsplash
전도는 단순한 과제나 방법이 아닌 생활 방식이다. 프로젝트나 시스템이 아닌 삶의 방식이다.

전도를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는 우리의 관점과 이해도를 넓혀준다. 설득력이나 변증법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전도에 대한 시선이 이러하다면, 누구라도 영혼을 전도하는데 있어서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전도에 대한 열망도 생길 수 있다. 전도에 대한 이런 접근 방식은 그리스도의 증인다운 삶의 방식이며, 신자의 독특한 은사와 능력, 지위 등을 통하여 부르심에 맞게 전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또한 삶 속에 있는 모든 어려움과 변화조차도 친구와 이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향하게 하는 기회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모든 기독교인은 이렇게 전도해야 한다. 참된 증인으로서 기독교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두에게 주어진 의무이다(마 5:13-16). 스펄젼 목사는 이렇게 담대하게 말했다. “진정한 신자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길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든,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이든 기독교인은 전도라는 커다란 사명을 받았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마 28:18-20 참조).

영혼을 구하는 전도는 기독교인의 핵심 중 핵심이다. 그러나 전도에 대한 우리의 열정이 항상 충만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직장 동료, 가족 그리고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이웃의 영원한 생명보다 스포츠 경기의 점수나 휘발유 가격에 신경을 더 쓰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더욱이,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안다면, 왜 우리의 삶과 교회에서조차 복음이 빈혈 상태에 빠져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의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열심히 기도하며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데에 있어서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복음적인 생활 양식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놀랍도록 평범한

성경에서 전도 사례의 대부분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사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영혼을 구원하는 놀라운 기록이 담겨있다. 서신서에는 영혼을 구원하는 사도들의 용기 있는 기록이 이곳저곳에 담겨있으며, 복음에 대하여 적대적인 환경에서도 유대인과 이방인을 전도하는 모습이 들어있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전도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성경의 강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우리도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아예 복음을 전하지 말까하는 고민을 할 정도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전도활동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도 많지만, 그들이 감당한 독특한 사역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일반적인 전도사역은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길거리나 시장 광장에서 전도하지 못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보다는(이런 전도에 특별히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따로 있다) 평상시 삶에서 자연스럽게 복음이 흘러나오는 전도가 내게 주어진 전도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복음의 증인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정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며 바로 그 주권에 따라 우리 각 사람을 그가 원하는 곳에 지금 있도록 했다(시 115:3; 행 17:26-27). 당신은 다른 곳에 있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곳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롬 8:28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그 현장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라고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을 발휘하여 삶을 변화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가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데에 필요한 특정한 위치에 지금 우리를 두셨다.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의 주권은 지금 당신을 특정한 공동체에 데려다 놓았고 특정 이웃을 만날 수 있는 집에 살게 하셨다. 그는 또한 당신에게 독특한 직업을 주었다. 왜? 당신이 평범한 삶의 과정을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방문 전도나 특별한 봉사 같은 보다 전략적인 복음 전파 활동이 있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인 복음 전파의 방법으로 입증된 것은 평범한 삶 속에서 말과 행동으로 일관된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믿지 않는 동료와 복음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자녀의 축구 경기에서 옆에 있는 부모에게 복음을 전하고, 젊은 어머니들과 어떻게 복음으로 육아를 할지 토론하고, 위기에 처해서 조언을 구하는 믿지 않는 가족과의 대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는 복음은 어떤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임을 알려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내게 있었던 행복한 방해는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제대로 보여준다. 주님께서는 믿지 않는 친구가 방문하도록 하셨고, 우리는 복음에 관해 따뜻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이런 종류의 전도는 기독교 잡지 표지에 등장할 정도로 대단한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 세계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서 지금도 수많은 영혼을 인도하고 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언제나 발생하는 놀라울 정도로 평범한 일이다. 삶을 통한 전도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그분을 알았으면 하고 바란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예상치 못한 전도의 기회를 우리가 제대로 식별하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할 의지와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여부이다. 우리에게 이런 준비가 부족하다면 그건 아마도 우리가 기도하는 것에서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이 기도하기

잃어버린 영혼을 위한 꾸준하고 간절한 기도는 꾸준한 전도의 원동력이다. 기도 없이는 전도의 열기가 식기 마련이고, 죽음을 향해가는 비참한 영혼의 상태에 관해 무관심해진다. 그러나 불신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할 때, 그 영혼을 향한 열정이 점화된다. 기도는 열정의 연료가 된다. 기도는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을 키운다. 기도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더 의지하게 되고 영적으로 죽은 자를 깨울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도 함께 커진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우리지만 죄인들에게 초자연적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주시고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행 26:18; 겔 36:26; 엡 2:4-5; 골2:13 참조) 이는 오로지 성령님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찢는 간절한 마음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매일 매일의 기도를 회복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을 위한 간구와 더불어 우리의 육체적 건강과 행복을 위한 끝없는 탄원이 포함된 기도 모임을 활발히 가져야 한다.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간절한 기도는 양보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기도야말로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는 우리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의지하려는 겸손한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양보하지 않는 신실함

복음이 없는 전도는 글이 없는 책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도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많은 행위가 복음 속에 당연히 담겨야 할 진리를 사라지게 하고 있다. 고작해야 개인적인 자기 이야기 또는 예수를 통해 세속적인 성취를 이루려는 인간 중심의 호소는 결국 복음을 하나님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축소 시킨다. 그러나 사람들이 들어야 할 것은 우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19세기 중반 고전인 ‘영혼을 구하는 자들에게 하는 말’(Words to Winners of Souls)에서 호래티우스 보너(Horatius Bonar)는 이렇게 썼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의견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진리가 필요하다. [중략]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복음은 문학도 과학도 아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 아들을 통해 거저 주시는 사랑에 대한 지식이다.”

그러므로 올바르고 효과적인 전도의 핵심은 성경의 진리이다. 특히 하나님의 거룩함과 그분의 율법이 요구하는 의로움에 관한 교리(레 11:45; 갈 3:10-11), 타락한 인류, 비참하고 처참한 인간의 상태(롬 5:12; 엡 2:1-3),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율법의 요구 사항을 완벽하게 충족시킴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온 하나님의 아들(요 3:16; 롬 5:18-19),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룬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충족(시 22; 요일 4:9-10), 셋째 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남(롬 4:22-25),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믿음을 통해 은혜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려주어야 한다(고후 5:19; 엡 2:8-9).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모든 사람이 하늘의 영광으로 인도될 것이며, 여전히 그들의 죄 안에 있는 사람은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천사들과 함께 지옥에 던져질 심판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마 25:31-46). 이것이 바로 온 세상이 들어야 할 복음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확실히, 전도는 위협적일 수 있다. 친구와 지인들에게 믿지 않는 사람이 마주하게 될 영원한 심판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전도를 하나의 수행 과제, 이벤트 또는 방법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창조한 삶 속에서 그분의 신실한 약속에 순종하고 기쁨으로 반응하는 모습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 삶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모습으로 전도를 바라본다면 전도에 대한 우리의 부담감은 훨씬 적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인이여, 가장 소중한 복음에 대해 우리가 어찌 마냥 침묵하고만 있겠는가?


원제: Winning the Souls of Unbelievers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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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on D. Payne

존 페인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 위치한 Christ Church Presbyterian (PCA)의 담임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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