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처녀에게서 나셨다는 것!
by Brandon D. Crowe2019-12-21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 예수님이 처녀에게서 나셨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 교리는 보통 이사야 7장 14절의 예언과 연결된다. 그러나 처녀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처녀에게 탄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떻게 구약 성경의 맥락 속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걸까?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 예언을 이루었다는 걸까? 이사야 7장 14절은 처녀 탄생과 관련해서 중요한 핵심 구절 중 하나이다. 그러면 이 구절이 어떻게 예수와 연결되는지 살펴보자.

먼저 여러 각도로 살펴보기 위해 구약적 맥락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사야 7장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의 아하스 왕에게 보냄을 받는다.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는 명령을 주기 위해서이다(10-11절). 이것은 앗수르와 북이스라엘의 침략으로 생길 수 있는 잠재적인 재앙을 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보통 하나님께 어떠한 징조를 구하는 것이 믿음 없는 행동으로 비추어지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이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징조를 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믿음 없는 행동이다(12절). 앗수르와 정치적인 결탁을 하는 대신(왕하 16:1-9) 아하스 왕은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선지자의 말에 대한 아하스 왕의 거절, 즉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는 그의 결정은 결국 앗수르에게 침략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사 7:17-25).

아하스 왕은 징조를 구하지 않았지만, 그는 징조를 받았다. 이사야 7장 14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께서 징조를 주셨는데, 바로 특별한 아기의 탄생이다. 그 아기가 히스기야 왕인가? 아니면 이사야 선지자의 아들 중 하나인가? 여기서 이 아기가 어떤 아기인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다. 단지 그 아기는 아하스 왕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징조라는 것만 명확한 것이다.

아기가 누구인가보다 더 명확하지 않은 것은 여기서 말하는 여인이 과연 처녀인가에 대한 것이다. 혹자는 이사야 7장 14절 속 히브리어가 처녀를 의미하지 않고 단지 지금껏 아이를 낳지 않은 젊은 여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사야 선지자는 처녀 탄생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비약적인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분명히 처녀를 말하고 있다. 젊은 여자를 의미한다는 그 단어는 구약에서 계속적으로 처녀를 의미했던 단어이다. 게다가,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 성경은 이 단어를 분명히 그리스어 “처녀”에 해당하는 단어로 번역했다. 결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약 성경의 저자가 이사야 7장 14절은 분명한 처녀 탄생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마 1:22-23).

여기서 약속된 아이는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의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이고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말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생각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서의 맥락에서 임마누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아하스 왕에게 주어진 경고였다. 그에게 있어서 임마누엘은 축복이 아니라 아하스 왕으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는 경고이자 저주였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복과 저주를 함께 놓는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 안에서 복을 받기 위해서 반응해야 한다.

요약하면, 이사야가 아하스에게 약속한 아이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의 표시이며, 아하스의 믿음 없음에 대한 비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은 우리의 도움과 피난처이며,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곳에 신뢰와 희망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가까운 미래에 그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다. 아이가 자라기 전에 아하스 왕이 두려워한 모든 정치적 위험은 사라질 것이다(사 7:16). 그럼에도 아하스에게 징조로 보여진 그 아이는 보다 더 완전한 성취를 가리키고 있다. 아하스 왕 시대에 이사야 7장 14절이 말하는 임마누엘 아기가 정말로 태어났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분명한 징조였고,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면 저주였다. 이 예언은 틀림없이 아기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이라는 더 위대한 사건을 드러내고 있다. 이사야 7장 14절에서처럼 우리와 맺은 언약적 존재인 예수님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하는 것에 따라 복이 되거나 저주가 된다.

아하스 왕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힘을 주거나 경고의 메시지가 된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할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에 대한 경고가 된다. 아하스 왕은 이방 신에게 제사하는 방식으로 그의 아들을 불에 바쳤던 것 같다(왕하 16:3; 대하 28:3).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원한 축복을 가져다줄 아이를 보내겠다고 약속했으며,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회복을 약속하셨다. 마지막 임마누엘은 희생적인 죽음으로 그 희생의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 임마누엘이 되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찬송하는 “천사 찬송하기를” 속의 가사처럼, 처녀의 자궁에서 태어난 이 아기는 “죄인들을 불러서…영생하게 하시니”를 실현하신다.


원제: Of the Virgin’s Womb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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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Brandon D. Crowe

브렌든 크로우는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신약학 부교수이다. 'The Hope of Israel'과 'Every Day Matters'를 비롯하여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